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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남․북․러 3자 협력의 첫 단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남․북․러 3자 협력의 첫 단추”
  • 블라디보스톡/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6.0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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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석탄의 지정학’을 꿈꾸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통한 변화’의 축 될 수 있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았다. 지금도 굴러가고 있다. 다만 한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참여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올래그 키리야노프 모스크바국립대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 연구원)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적으로 주도한 사업이다.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업이다. 중단되거나 포기되는 일은 절대 없다.”(이반 통키 라손콘트란스 대표)

지난 6월4일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 두 번째 날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끌어가는 주체인 라손콘트란스 대표를 맡고 있는 이반 대표를 포함해 러시아 쪽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지지부진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면서도, 한국의 참여 없이도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흔들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라손콘트란스는 러시아와 북한의 합작기업이다.

이반 대표의 말을 더 들어보자. “라손콘트란스가 수출하는 러시아산 석탄은 1t당 9달러 수준이다. 현재 한국은 다른 곳에서 1t당 20달러 정도에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라손콘트라스를 통해 석탄을 수입하면 한국에 매우 이득이다. 이 석탄은 현재 중국과 베트남이 수입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이 수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참여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큰 지장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진과 하산 항구가 컨테이너 물동량을 소화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부산에서 나진과 하산으로 철도가 연결될 경우 발생하는 물동량을 감안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설명이다. 라손콘트란스의 사업 영역이 단지 석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석탄이 강조되는 것은 “현재 석탄이 유엔 대북제재의 예외이기 때문일 뿐”이라는 부연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98800km에 이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톡 역사의 뒷모습. 사진: 이코노미21
98800km에 이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톡 역사의 뒷모습. 사진: 이코노미21

실제로 한국으로서도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석탄은 남․북․러 3국의 교류․협력의 상징 징도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의 ‘에너지 믹스’(조합)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러시아산 석탄의 수입을 재개한다고 해도 그 양은 늘어나기보다 그대로이거나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오히려 석탄 대신에 같은 화석연료라고 해도 남․북․러 가스관 연결을 통해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값싸게 수입하는 게 한국의 에너지 믹스에서 차선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시베리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 가스관과 송전선 건설과 연결 등 향후 펼쳐질 수 있는 남․북․러 3자 협력의 일부이다. 이런 남․북․러 3자 협력에서 러시아와 협력은 관건을 이룬다. 3자 협력에서 한국은 한쪽의 끝단, 러시아는 다른 한쪽의 끝단에 있다. 양 끝단의 연결은 일시적인 요구와 필요에 따른 유행의 산물이 아니다.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강태호 전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러시아와 협력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나 우리 기업의 극동 진출이나 투자를 넘어 좀 더 큰 틀에서 유라시아의 변화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를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핵심 파트너로 바라보는 적극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얘기에 함께 토론자로 나선 올레그의 의견을 교차시켜 보자. 그는 “북한의 행위를 보면 이 나라는 당분간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동북아의 나라들과 직접적 분쟁, 경쟁, 압박 등의 관계에 있다”는 상황 진단 속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동북아 교류․협력을 위한 일종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심각한 도발 행위를 재개하는 경우 복귀한다는 조건을 달아 한국이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제재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문제를 한국이 검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를 보여주는 행위는 2014~15년처럼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산 석탄 수입의 시범적 재개라고 그는 본다.

결국 ‘러시아산 석탄의 지정학’은 현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축인 ‘제재를 통한 변화’ 이외에 이를 무시하는 게 아닌 ‘협력을 통한 변화’의 축을 세우는 것에 해당한다. 대결정치와 과잉 이념화한 한국의 착잡하고 심란한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언감생심(焉敢生心)’으로 다가온다. 국내에 널리 퍼져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인식은 ‘러시아산 석탄을 값싸게 들여오는, 이 과정에서 북한도 이득을 보는 사업’ 정도다. 여기에 ‘러시아산 석탄=탄소 배출 과다의 화석연료’일 뿐이라는 박제화한 인식이 덧붙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머리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꿈꾼다. 지난해 러시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38만명이다. 그 중 61%인 23만명의 발길은 극동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2017년보다 무려 126% 증가한 규모다. 상당수가 한국의 20대 젊은층이다. 러시아 연해주 관계당국도 궁금해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러시아산 석탄의 지정학’에 그리 나쁘지 않게 다가온다. 일말의 낙관을 위한 기자만의 희망 섞인 주관일지도 모르겠으나, 비빌 언덕이 됐으면 하는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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