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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최저임금 첫 단추 잘못 끼우며 ‘짜깁기 2년’
[커버] 최저임금 첫 단추 잘못 끼우며 ‘짜깁기 2년’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16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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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확대 통한 총수요 부양, 취업자 증가폭 급감으로 반감
향후 5년간 복지 지출에서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비전 부재
취업자 증가폭 25만명 안팎을 유지해야 고용상황 나아졌다고 볼 수 있어
예타 면제는 기존의 양적 성장 개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커버스토리 -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경제정책은 성공하고 있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평가 ① - 총평>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경기 하락 등 대외환경은 문재인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또한 혁신성장 정책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없는 부분이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일정한 합의를 통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펼쳐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변수를 빼고 반환점에 다가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세 가지 단면을 통해 짚어본다. 두 가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과 관련된 문제이고, 한 가지는 혁신성장과 관련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의 역량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문제다.

보편적 증세를 향한 중장기 로드맵과 복지국가 비전 결여

장면1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이 조금 지난 2017년 7월2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장관은 “국민들에게 증세 필요성을 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전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 청와대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비과세․감면 정비 등을 빼곤 별도의 증세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건 것이다. 김 장관의 발언은 이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었고, 같은날 여당은 초대기업․초고소득자에 대한 이른바 법인세․개인소득세 ‘핀셋’ 증세 방안을 내놨다. ‘증세 없는 복지’에서 ‘족집게 부자 증세 통한 복지 확대’로 한 발 물러선 셈이다(물론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소득세와 소비세 위주의 증세를 했다. 2015년 담뱃값 인상을 통한 서민증세(연 세수증가 3조 효과), 2013, 2014년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연 ″ 0.4조원 효과),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개선(연 ″ 0.2조원 효과), 2014년 투자세액공제율 차등적용(연 ″ 0.2조원 효과), 2015년 토지 등 양도소득 과세 강화(연 ″ 0.1조원 효과), 미환류소득 추가과세(연 ″ 0.1조원 효과), 2016년 영업용 승용차 과세(연 ″ 0.3조원 효과) 등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는 연 세수증가 4~5조원 규모의 증세를 했다.

장면1은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노선에서 증세가 비집고 들어설 공간이 없음을 상징한다. 홍장표 경제수석의 말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의 3대 축은 △가계소득 증대 △지출비용 경감 △안전망 확충이다. 여기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일 수 있는 증세는 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겨우 핀셋 증세 정도만 용납된다. 이는 사회복지학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복지국가 비전에 야박한 평가를 내놓는 배경을 이룬다. 소득주도성장 노선의 하위전략으로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몇 가지 사회서비스와 소득보장 정책을 한 데 묶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보편적) 증세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 없이 향후 5년에 걸쳐 복지 지출에서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비전이 처음부터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총 재원은 178조원이다. 2017년 8월2일 ‘족집게 부자 증세’ 세법개정안의 세수 증대 효과를 포함해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7~2021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총조세 수입은 국세수입 64조원, 지방세 수입 30.3조원으로 94.3조 증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세법 개정안으로 인한 누적 세수 효과 23.6조원을 빼면 70.7조원이다. 이것이 세수자연증가분이다.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재원 178조원 중 40%를 세수자연증가분으로 충당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의 달성 여부는 매우 불확실하다. 실제 세수가 세입예산을 웃돈 이른바 초과세수 행진이 마침표를 찍는다. 초과세수는 2017년 14조3천억원, 2018년 24조4천억원으로 합계 37조7천억원이다. 세입예산을 축소하는 ‘꼼수’를 없앤 올해 예산부터는 초과세수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럴 경우 2018년 실제 세수 대비 올해 늘어나는 세수는 9조원, 많아야 10조원 미만이다. 2019년 경제성장률이 기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2.4~2.5%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연 세수증가분이 9~10조원에 그치는 셈이다. 이는 2017년, 2018년과 견줘 급격히 줄어든 규모다. 부동산 호황과 반도체 법인세수 증가 등이 겹치며 2017년 경제성장률(실질)이 3.1%일 때 실제 세수증가분은 26조6천억원, 2018년 경제성장률이 2.7%일 때 실제 세수증가분은 35조7천억원이나 됐다.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경상성장률(명목)

5.4%

3%

4.8%

4.8%

5.0%

경제성장률(실질)

3.1%

2.7%

2.4~2.5%

(한은, KDI)

2.5%(KDI)

?

실제 세수 증가액(전년 대비)

26.6조원

(2016년 세수 410.8조)

35.7조원

(2017년 세수 437.4조)

9~10조원

(2018년 세수 473.1조))

?

?

앞으로 상황은 이런 세수 호황이 더 이상 벌어지기가 어렵게 돼 있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의 세수전망은 여전히 ‘장밋빛’이다. 2020년과 2021년 국세 수입은 각각 13조4천억원, 2022년 14조6천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계산한다. 2020년 이후에도 경제성장률 전망이 2.5%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대부분의 전망에 비춰보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국세 수입 추계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명목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뜻하는 경상성장률을 2019년과 2020년 4.8%, 2021년 5.0%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실질)로 환산하면 3.4~3.5% 수준이다.

최저임금 급등, 가계소득 격차 확대와 취업자 증가폭 둔화에 영향

장면2

2018년 5월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 … 고용근로자들의 근로소득은 전반적으로 증가했고, 그 가운데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해 개인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개선된 반면, 고용에서 밀려난 근로 빈곤층의 소득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하위 20% 1분위 가구의 소득은 곤두박질치고 상위 20% 5분위 가구의 소득은 용솟음치면서 가계소득 격차가 2003년 이후 최대로 벌어지자 대통령이 직접 ‘16.4% 급등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방어에 나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취업한 근로자에게서만 나타난다’는 식의 함의를 담은 이런 궤변은 6월3일 등장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입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장면2는 소득주도성장에서 가계소득을 늘리는 핵심 축으로 설정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2018년 16.4%, 2019년 10.9%)이 낳은 가계소득격차 확대, 취업자 증감폭 둔화 등의 후유증을 보여준다.

통계청이 2018년 11월22일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결과’를 보면, 소득 상위 20%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분기 대비 8.8% 증가한 973만6천원이었다. 반면 하위 20%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0% 줄어든 131만8천원이었다. 가구별 인원 차이를 바로잡고 조세 등을 제외하고 계산한 균등화 처분가능소득도 5분위는 459만6700원으로 5.3% 늘어난 반면, 1분위는 83만3000원으로 -1.1%였다. 이에 따라 1분위와 5분위 가구소득 격차를 뜻하는 5분위 배율은 5.52배로 커졌다. 3분기 기준으로 가계동향조사를 실시한 2003년 이후 최대치이자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과 동일한 수준이다.

왜 이렇게 벌어지는지 원인에 대해 1분위 고령가구주 증가를 지적하던 통계청은 “가구주와 기타 가구원을 중심으로 취업 인원 수가 16.8% 줄어들며 근로소득이 22.6% 줄어들었다 … 지난해 3분기 1분위 가구의 가구당 취업자수는 0.83명이었는데 올해는 0.69명으로 감소했다. 상용직 비율이 8.2%에서 5.1%로 많이 줄어들다보니 고용의 질도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고령가구주의 취업인원이 줄어든 것이 원인임을 인정한 것이다. 왜 줄었는지를 따져보면, 경기둔화와 함께 최저임금 급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림> 1분위 가구와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 증강률 추이(자료: 통계청)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10만개 추가 확대 등의 재정지출에 힘입어 2019년 1분기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83만29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0.4% 늘었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482만9500원으로 2.1% 감소한 것으로 나오면서 5분위 배율도 줄어든 것으로 나왔지만 일종의 착시 효과 성격이 강하다. 2017년 노사합의 지연으로 주요 기업의 상여금이 지난해 1분기에 지급된 데 따라 2018년 1분기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는 역(逆)기저효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 대비 2017년 연간 31만6천명, 2018년 9만7천명을 기록했다. 2018년 9만7천명은 글로벌 대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8만9천명 이후 최저 수준이다. 취업자 증가폭 급감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1월9일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생산가능인구 감소 전환, 온라인화·무인화 확산 등 인구·산업구조 변화”를 지적했다. 통계청도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전체 인구 증가폭 축소, 자동차 등 제조업 부진, 자영업 부진에 따른 서비스업 부진 등이 겹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경기둔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최저임금 영향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설명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구 증가 둔화가 취업자 수 감소가 갖는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규모가 줄면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취업자가 줄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업자 수가 감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원인 설명은 2018년 실업자가 107만3천명으로 5만명 늘어나고 취업자 증가폭도 2017년보다 21만9천명 줄어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학원 등 교육서비스업 부문의 취업자 수 감소를 빼면 인구 증가 둔화와 취업자 증가 둔화를 연결할 수 있는 논리는 한 가지밖에 없다. 기업들이 채용하고 싶은 인재풀이 줄어 취업자가 줄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최저임금 급등이 취업자 증가폭 둔화에 준 영향에 눈을 감아오던 청와대와 정부는 2019년 5월22일에서야 이를 인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부터 4월 말까지 5개월 간 외부용역을 의뢰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중소 제조업 △자동차 부품 제조업 등 4개 업종 사업장 94곳을 상대로 벌인 집단심층면접(FGI)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핵심 결론은 ‘도소매업은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기업이 상당수 존재했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확대됐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자영업 부문에서 사람과 근로시간을 줄였고, 주휴수당(한 주를 개근하면 추가로 지급하는 하루 치 임금)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쪼개기‘ 아르바이트를 늘렸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취업자 증가폭 목표치는 15만명 안팎이다. 겉으로 보기엔 지난해 평균인 9만7천명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보다 올해 추가로 늘어난 노인 일자리 사업이 10만개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0살 이상 연령층의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은 23만4천명이다. 반면 올해 4월까지 이 연령층의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은 33만5천명이다. 늘어난 노인 일자리 10만개만큼 취업자가 증가한 것이다. 15만명에서 10만명을 빼면 단 5만개다. 지난해 평균 9만7천개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증가된 노인 일자리 10만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식의 수치 놀음으로 심각한 고용상황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취업자 증가폭이 25만명 안팎을 꾸준히 유지하지 않는 한 고용상황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나빠졌다고 보는 게 옳다. 올해 2월, 3월, 5월 취업자 증가폭은 25~26만명 수준을 보였다. 문제는 6월 이후에도 이런 추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15만명 목표치를 수정하지 않는 한 추세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 속에서 형해화한 예타 면제는 국가의 중․장기적 경제조정 능력의 약화, 임무와 과제 설정 역량의 약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2019년 1월29일 사회간접자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발표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 속에서 형해화한 예타 면제는 국가의 중․장기적 경제조정 능력의 약화, 임무와 과제 설정 역량의 약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2019년 1월29일 사회간접자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발표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SOC 투자 위해 예타 면제까지 동원, 혁신성장 위한 국가 역량의 한계 노출?

장면3

2018년 12월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김동연 부총리의 후임으로 새로 취임했다. 김 전 부총리가 물러난 이유는 석연치 않지만, 취업자 증가폭 급감에 최저임금 급등이 일정한 영향을 줬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새로 들어선 홍 경제부총리는 12월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모든 공공시설을 민간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철도․도로 등 53개로 한정된 공공시설 민간자본 사업 대상을 모든 공공시설로 확대하는 쪽으로 규제를 푼다는 내용이다. 2019년 1월29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23개 사업 24조1천억원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했다. 다행히 민자 공공시설 추진에 대한 예타 면제는 제외했고, 예타 면제 대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32개 사업 68조7천억원보다 규모를 줄였다. ‘불요불급’한 사업을 빼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자제하겠다고 밝혔던 애초 문재인 정부의 태도를 180도 뒤집은 것이다.

장면3은 문재인 정부의 다급함과 초조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역대 정부에서 건설경기 부양은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다. 주택가격의 하향안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 한, 건설경기 부양에서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는 결국 사회간점자본(SOC) 투자 이외에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 세계 최초 5G 시범서비스에 대한 의욕 역시 사회간접자본 맥락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두고두고 후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 속에서 형해화한 예타 면제는 국가의 중․장기적 경제조정 능력의 약화, 임무와 과제 설정 역량의 약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특히 ‘포용적 혁신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모토가 무색하게, 예타 면제는 기존의 양적 성장 개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경제성장의 한축으로 자리매김 된 혁신성장에서 국가의 역량과 능력은 매우 결정적이다. 혁신 생태계의 조성과 관리, 이해관계의 조정, 필요한 제도의 확립과 개선에서 국가는 혁신성장의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혁신성장은 초기부터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사실상 전면 부정하고 나온 상황에서 애초 개념 자체가 부재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혁신성장에서 국가는 ‘창조산업’과 같은 두루뭉수리한 개념이나 특정 기업을 겨냥하지 않은 ‘임무 지향적’(mission-oriented) 과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연구․개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주문한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개발과 생태계 구축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 반면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지난 4월29일 설립된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일종의 나쁜 사례에 속한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청정에너지 확대, 대중교통 확대 등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임무를 설정하고 과제를 도출해야 함에도, 이름만 거창한 기구를 새로 만든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예타 면제 문제는 현재 한국의 국가가 과연 이런 임무 지향적 과제를 수행해낼 역량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연공주의에서 ‘늘공’(늘 공무원)은 해마다 일정액씩 보수가 올라가고, 근속 20년만 채우면 관대한 연금이 나온다. 일정한 위험을 동반하는 문제는 모조리 민간 부문에 떠넘기는 게 체질화해 있다. 남발되는 외부 연구용역 프로젝트는 ‘국가역량의 외주화’라는 평가까지 나오게 한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평균 정도의 업무역량을 보이면 승진을 하는 데도 그다지 지장이 없다. 익숙해질 만하면 부서 이동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를 추격해서 따라잡는다는 일정한 사명감이라도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매우 희미해졌다는 조짐이 곳곳에 보인다.

경기부양을 위한 예타 면제는 바로 국가역량이 드러내고 있는 이런 역량의 한계라는 맥락에 자리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인사혁신처가 연공주의에 기반한 공무원 보수체계에서 호봉제를 수정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는 점이다. 6급 이하 공무원 보수체계의 연공성을 완화하고 직무가치 반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체계만이 아니다. ‘산업정책의 귀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마트한 국가의 역량이 재차 강조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혁신역량을 회복하는 것은 혁신성장의 선결과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사회의 반발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인사혁신처가 마련한다는 보수체계 혁신 방안이 총선을 불과 1년 앞둔 상황에서 공무원의 군기를 잡는 용도의 바람잡이가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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