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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칼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SOC’
[김종배 칼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SOC’
  • 김종배 연세대 교수
  • 승인 2019.07.29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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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 존, 경사로, 계단대피용 의자 등 화재 시 대피할 수 있는 방안 법제화 필요

4월 초 고성, 속초, 인제, 옥계, 태백 등 강원도 영동 지역에 큰 산불이 나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긴급 뉴스가 보도되었다.

시속 20m에서 30m에 이르는 ‘비 없는 태풍’, 강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면서, 오랜 겨울가뭄으로 건조해진 산림에 불길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강원도 영동지역을 모두 삼켜버릴 것 같은 위세로 전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고 너무나 바람이 센지라 소방용 헬기를 띄울 수 없어서 다음날 아침 해가 뜬 후에는 전국에서 동원된 수십 대의 헬기와 소방차가 투입되고 군인들도 수천 명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화작업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그나마 인명피해를 최소화 하며 큰 불길들은 잡혀서 이제 잔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300여 채의 주택과 숙박시설이 타고 축구장 면적 735배에 달하는 임야 525㏊(525만㎡)가 잿더미로 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낸 사상 초유의 대형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산불 재난 방송을 하루 종일 접하면서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생각이 났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 해, 국제학회에서 일본인 교수친구와 장애인권운동가를 만났다. 대형 쓰나미로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간 그 동일본대지진 때 사실 장애인들의 피해 상황과 이재민으로서의 고통은 훨씬 더 심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거의 없었다고 그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은 심지어 일본은 언론통제가 심한 아주 나쁜 국가라고 까지 언급하면서 격분하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신체기능에 불편함이 없는 비장애인도 동일본대지진이나 이번의 강원도 대형 산불 같은 큰 재난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하물며 휠체어를 타거나 걷는 것이 불편한 이동장애인,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재난 방송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들은 그 어려움이 오죽하랴?

그래서 나는 일단 먼저 피해가 심한 속초 지역의 장애인들은 피해가 없는 지 알아보려고 강원도 지역에서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가장 활발히 펼치고 있는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용섭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소장은 이번에 산불이 난 영동지역에 있는 자립생활센터들에 연락을 해 보았는데 다행히 이번 산불로 특별한 피해를 입은 장애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해주어 안도할 수 있었다.

필자는 미국에 있을 때 1년에 두 번씩 건물에서 화재 대피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있던 대학건물은 6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각 층마다 매년 소방대장을 임명하고 화재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화제가 발생하면 각 층에 있는 사람들은 소방대장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대피를 하는 훈련이었다. 2층에는 장애인이 많이 오는 ‘보조기기센터’가 있어서 화재 발생 시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으므로, 장애인을 옮겨 앉혀서 계단에서 아래로 밀고 내려 갈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계단대피용 의자’가 항상 계단 입구에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다. 4층에 근무하던 나는 화재 대피 훈련 때 소방대장의 지도를 받아서 “안전지역(Safety Zone)”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구조요원이 올 때까지 대기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했다. 세이프티 존은 말 그대로 화재 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연기나 가스가 스며들지 않고 불에 타지 않는 내연물질로 만든 벽과 문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방관들이 도착하면 일차적으로 각 층에 있는 ‘세이프티 존’으로 접근하여 그곳의 사람부터 먼저 구조하는, 간단하지만 매우 신뢰성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재가 나도 저 곳에만 들어가면 되는구나” 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한 번 화재 경보가 실제로 올려서 소방차가 출동을 하고 모든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2층에서 내려갈 수가 없어서 아내와 딸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어느 집에서 실수로 후라이팬에서 음식을 태우는 바람에 화재 경보가 울린 것이어서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들은 큰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한국에서 아파트 생활을 할 때 항상 1층에 집을 구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내가 근무한 국립재활원 연구소사무실은 4층에 있었는데 화재가 나면 “어떻게 대피하지?” 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병원동에는 항상 200여명의 장애인들이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와 계단 외에 비상 시에 장애인이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가 없었다. 그래서 장애인 재활시설인 만큼 비상시 환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몇 번 건의를 하였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하여 소방서에서 응급알리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집에 IoT 센서를 장착해 주는데, 장시간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없냐고 전화가 오고, 가스 누출을 탐지해 경보를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도 필요하지만 ‘세이프티 존’이나 ‘경사로’, ‘계단대피용 의자’와 같이 화재가 났을 때 대피할 수 있는 방안을 법제화하고 국가가 확실하게 제공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지진이나 쓰나미 같이 급박한 재난을 당하게 된 경우, 미처 피난 할 시간이 없을 때 들어가 누워서 안에서 잠금장치를 체결하면 며칠을 침수나 붕괴 등의 극한상황을 견딜 수 있는 “라이프 캡슐”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방안도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하루종일 TV를 통해 거대한 불길들이 주택가 바로 뒤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수동휠체어도 아니고 무거운 전동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는 나 같은 중증장애인이 저 산불 현장에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이 이번 강원도 산불 재난에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가용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합심해서 땀을 흘리는 모습에 국민들이 많은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 “장애인”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대형 재난을 만났을 때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 여성 등 취약 계층 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주는 수준의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

또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자고 할 것인가? 또 누군가의 참혹한 희생을 겪고 나서야 결국 후회할 것인가?.

이제 ‘생명캡슐’도, ‘계단대피용 특수의자‘도, 그리고 장애인 시설에는 엘리베이터 외에 ’경사로‘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하 작은 건물들에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도 설치하자.

하루라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제 빨리 이런 시설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도로와 다리, 댐 대신에 우리가 구축해야 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SOC’,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의 화재시 구난을 위해 ‘생명캡슐’ ‘계단대피용 특수의자 그리고 장애인 시설에는 엘리베이터 외에 ’경사로‘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하 작은 건물들에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사진=위키피디아
장애인의 화재시 구난을 위해 ‘생명캡슐’ ‘계단대피용 특수의자 그리고 장애인 시설에는 엘리베이터 외에 ’경사로‘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하 작은 건물들에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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