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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의 오래 사는 집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의 오래 사는 집
  • 이정미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교수
  • 승인 2019.08.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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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

준공 당시 건축계에 큰 이슈가 되었던 백남준 아트센터를 찾아 용인으로 향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

1950년대 말부터 음악, 비디오, TV 등의 여러 가지 매체로 예술 활동을 하며,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창안하여 발전시킨 예술가이다. 경기도에 거주한 적은 없으나 경기도에 <백남준 아트센터>가 지어진 것은 경기도가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 활동에 대해 연구하고 알리기 위하여 2001년 백남준과 건립을 논의하기 시작하여 2008년 10월 개관하였다. 부지 33,058, 건물 5,605의 규모이며 지상 3층과 지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전시실, 비디오 아카이브, 교육실, 세미나실, 아트 스토어, 카페테리아 등을 갖추고 있다. 2011년 4월 15일에는 백남준 아트센터 1층에 백남준 라이브러리를 개관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영상으로서의 비디오 아트를 새로운 미술적 방법인 퍼포먼스와 설치미술 그리고 음악작품과 위성아트로 변환하여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적 소통을 꿈꾸는 미래를 사유하는 자’로 평가 받으며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오히려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진 백남준은 1932년에 서울 서린동에서 태어나 창신동의 일명 큰대문집에서 18세까지 살았다. 조선 직물업계의 큰손이자 굴지의 기업가였던 백낙승의 3남2녀 중 막내 아들이자, 조부 역시 청나라 비단을 독점 판매하던 거부로 당시 동대문시장 일대 포목상 절반이 그의 소유였다고 하니,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따라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주하여 고등학교 그리고 동경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논문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였다.

1956년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백남준은 뮌헨 대학교와 쾰른 대학교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사,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1958년 쇤베르크 이후 현대음악의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던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서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음악에 대한 파괴적 접근과 자유정신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얻는다. 결론적으로 존 케이지를 통해 네오다다와 플럭서스, 그리고 저명한 예술가들과의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이다.

무조음악과 조성 파괴로 현대음악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쇤베르크 Arnold Sch¨onberg의 제자이기도 했던, 존 케이지 John Cage는 기존의 작곡과 예술로 여겨지던 기본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부정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임의적 요소를 음악에 끌어들인 우연성의 음악을 선보이는 예술가로, 선불교와 인디안의 토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음악적 개념의 혁신성으로 20세기 작곡가 중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예술가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로부터 받은 영감은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어진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꿔라" 라는 것으로 규정되는데, 이후 1950년대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 지역의 액션뮤직의 현장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1959년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은 백남준의 첫 번째 음악 퍼포먼스였는데, 피아노를 부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1959년 백남준과 독일의 볼프 포스델 Wolf Vostell은 당시 텔레비전의 영향력에 대한 저항으로 텔레비전 수상기를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1960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음악적 콜라주와 함께 존 케이지가 착용한 넥타이를 잘라버리는 퍼포먼스, 1962년 '바이올린 솔로'에서 바이올린을 단숨에 파괴하는 퍼포먼스 등이 특히 유명하다.

비디오 예술은 1960년대 미술의 개념을 시도한 플럭서스와 해프닝이 배경이 되어 나타났지만, 초창기에는 예술사에 언급되지 않았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서서히 퍼포먼스 예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고, 그 이전 예술이 단순히 회화나 조각으로 이루어지는 오브제 중심적인 예술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오브제 없이 예술가의 행위 자체와 관람객이 느껴야 하는 '경험' 위주의 예술은 아직 비주류라고 할 수 있었으나, 당시는 개척기이자 태동기로 예술의 범위가 확장되는 시기였다.

1961년 백남준은 작곡가 슈토크하우젠이 중심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출입했으며, 이때 전자공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년여 동안 홀로 TV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서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실험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뉴욕을 첫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한동안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은 1963년 첫번째 전시를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로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까지 연결된 국제적인 규모의 위성 아트로, 전 세계 2천 5백만명이 시청하였다. 이로써 전세계적 차원의 대중적 각인이 이루어졌고, 마치 대중스타처럼 성가를 높였다. 이 시기 한국에서도 백남준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일본과 독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벌인 백남준은 2006년 1월 29일 74세의 나이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작고하여 백남준 아트센터의 개관을 보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건립은 작가 백남준과 경기도가 2001년 백남준 미술관 건립을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생전에 백남준은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명명했다. 경기도와 백남준 작가의 인연은 ‘2000년 경기도 밀레니엄’에 초청되어 출품하면서 시작되어, 2001년부터 기획되었고, 2002년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2002년 경기도 주최로 국제현상설계를 공모했으나 독창적인 작품이 없어 결정하지 못하고 이듬해 2003년 국제 연맹(UIA)가 승인한 국제 아이디어 현상설계가 다시 진행되었다. 국내외 430여명이 참여하여 건축계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국제 공모전에서 독일의 젊은 여성 건축가 크리스텐 쉐멜 Kirsten Schemel과 독일 베를린 KSMS 쉐멜 스탄코빅 건축사무소의 마리나 스탄코빅 Marina Stankovic의 ‘매트릭스 The Metrix’가 대상을 차지하였다. 크리스텐 쉐멜은 베를린공과대학과 취리히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에서 실무를 쌓았고, 1998년부터 독립하여 설계사무실을 운영해왔으며 독일 뮌스터대학의 교수로 활동 중이다.

빛의 호수라는 주제의 공모안은 ‘Matrix’ 개념이 적용된 격자로 이루어진 유리로 만들어진 공간 속에 수많은 모니터들이 설치되고, 내부에 여러 개의 독립된 전시 박스들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천장에 매달려 배치되는 것이었다. 공모전 당선안이 그대로 구현되었다면 백남준의 대표작들과 미술관이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예산이 훨씬 초과되어야 했고, 계획이 변경되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또한 당선자의 임신 출산과 함께 계획안이 크게 변경되어야 하는 문제가 더해지면서 당선자와 파트너쉽으로 일하고 있었던 건축가 마리나 스탄코빅이 건축계획을 주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6년 8월 29일 공사를 시작하여 2008년 4월 30일 완공식을 가졌다.

미술관의 명칭 <백남준 아트센터>는, 현상설계 당선작의 저작권이 ‘백남준 미술관‘으로 등록됨에 따라, 이 명칭을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그런 이유로 마리나 스탄코빅에 의해 변경된 설계안은 ’백남준 아트센터‘로 불리게 되었다.

경기도는 백남준의 지속적인 발전과 계속적인 진화를 나타내는 환상적인 작품에 기반을 두고 언덕이 많은 도시적인 풍경의 용인에 개방성과 변화를 키워드로 두고 공사를 진행했다. 대표적인 건축물 하나보다는 관리자나 예술가 그리고 관람객이 사용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상하구조나 일직선 공간보다는 통합된 매트릭스를 창출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 아트센터는 총 5,600 제곱미터,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전시실, 비디오 보관실, 다목적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층은 대부분의 공간이 한 개의 실로 통합되어 열려있는 형태가 된 것이다.

건축 특징은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거울들과 대지의 지형을 덮는 석재 표면으로 이 아트센터에는 2개의 표면이 있다, 그리고 슈퍼 구조를 2면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로 혁신적인 사항이다. 첫 표면에는 부드럽고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지형을 단단하게 만든 것이고, 두 번째 표면은 빛과 그림자의 필터로서의 평행 철 구조와 그것을 감싼 유리표면이다.실제적인 박물관 공간과 전시공간은 이 두 개의 표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의 어둠과 그늘은 백남준의 전자적이고 빛이 강렬한 현대미술을 위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건축물 외관의 마감재료는 색깔이 없는 것을 목적으로 한 반사유리가 채택되었다. 그래서 전시물의 색깔과 사용자의 색깔만이 눈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두 번째 표면, 즉 석재로 마감한 표면이 개념적으로는 유일한 측면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건축 내부공간을 감싸는 유리면은 투명한 성질로 드러나기 때문에 석재 마감면만이 유일한 측면이 된다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이 측면은 현대건축계에서 시도되고 있었던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의 경계가 사라진 위상학적 개념이 적용된 현대적이고 변화하는 현상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백남준 아트센터의 매트릭스가 된 것이다. 내부의 '그림자 공간', 용인시의 언덕이 많은, 도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진동하는 '빛의 벽' 그리고 공원 대지의 예술적인 감각이 반사되는 '빛의 호수'가 되는 것이다.

유리벽에 비추는 주변환경과 그리고 외부 통로에 드리워지는 자연의 그림자들에 관심을 두고, 이제 <백남준아트센터>로 진입해 본다.

비디오예술과 미디어 예술에 최대한 집중한 백남준 아트센터는 세계적으로도 이 같은 유형으로는 최초의 미술관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디어기술을 프로그램화하고 건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선보이는 아방가르드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규모의 건축물로, 사각면을 길게 늘어뜨리는 변형을 적용한 형상과 가로로 난 줄무늬들이 백남준 작가의 전자적 요소를 보여주는 듯, 반사유리가 주변도시의 풍경을 비추며 무게감과 함께 단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백남준아트센터>를 우측으로 두고 외부에 난 유선형의 석재벽에 이끌리듯 따라간다. 이어지는 건물의 뒤켠에는 언덕으로 연결되는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지의 지형을 살려 조성된 공원이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찾은 이 언덕을 넘어가 보니 경기도 박물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언덕 공간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대기하며 놀이에 한창이다.

건축물 뒷면의 형상 또한 지형이 지니는 형상을 받아들여 곡면으로 처리되었다.퍼포먼스에서 부수는 피아노의 형상이나 이니셜P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백남준아트센터>의 외부공간에서는 재미있는 요소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끌리듯 따라오게 된 유선형의 석재벽이다. 바닥과 벽이 석재를 이용하여 같은 재료로 마감되며 곡면으로 처리된 부분이 그것인데, 이렇게 계획된 것은 기존 언덕 지형을 중요한 계획 요소로 여겨서 이를 최대한 활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람객들이 내부공간의 전시만을 살펴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외부공간에서 유리면에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고 굽이치는 지형의 외부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실제로 이 외부 통로 공간은 형태부터 마감의 거친 질감과 매끄러운 질감의 대비, 그리고 유선형으로 대지로 흐르는 선과 수직을 이루는 건축물의 매끄러운 면, 그리고 패턴,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높은 스케일로 하늘로 열려 있으면서 그 하늘을 비추고 있는 반사유리면이 흥미롭다.

외장재로 사용된 반사유리의 불규칙한 간격 사이로 내부가 보인다.그리고 그 너머에는 건물 정면에 위치한 주출입구에서 입장을 대기하고 있는 초등학생 관람객들이 보인다.전시공간을 이루는 건축물이 투명하기를 의도했다면 이런 특성이 될 것이다.

외장재로 사용된 반사유리에는 불규칙한 간격으로 가로줄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원래 오래 전 대지가 가졌던 지층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예술의 지층을 표현한 것 그리고 백남준과 그와 함께한 예술가들이 표현했던 음악적 리듬으로 볼 수도 있다.

후면 정원을 지나 건물을 빙 둘러서 난 외부 지형을 살린 켜 공간을 따라 걷다 보면 계단 위에 데크 공간이 마련되어 또 다른 출입구로 연결된다.

내부로 들어선다. 무채색공간의 커피숍이 2008년 준공 당시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조명박스가 외부쪽 벽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장으로 연결되며 띠를 이루고 있다.현대건축에서 시도하고 있는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려는 의도와 외부의 빛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금속을 이용하여 모던하게 디자인 되었고 빛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다.천장의 전선을 호일처럼 말아서 표현한 등기구에서 빛이 이동하고 있다.잠시 커피를 마시며 전시장으로 진입을 준비한다.

다시 내부의 계단을 내려가며 전시관으로 진입이다.이 계단은 외부계단과 연결되어 빛의 그림자로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계단실 옆에는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미술관의 개방형 홀에는 아트샵과 백남준의 설치 작품 ‘TV 정원’이 전시되고 있는 모습이다.초기 계획안에서 기둥이 없는 홀을 계획하였던 부분은 원형의 회색기둥으로 대체되어 구조를 해결하고 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TV정원’ 전시홀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TV정원’은 순환하는 동선으로 계획되어 있다.여전히 전시홀 전체는 무채색과 흰색으로 전시물들만이 집중되도록 계획된 모습이다.

안내데스크 뒷편에 별도로 구획된 크림색의 전시실 내부에는 거실처럼 계획된 공간으로부터 시작하여 3개의 실로 구획하여 백남준의 초기 텔레비전 작품인 1963년작 ‘TV 시계’로부터 연대기별로 대표작들이 전시되고 있다.전시실 안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작품감상을 하고 있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세계적인 예술가로서의 백남준을 실감케 하고 있었다.

1층 전시실 이외의 공간들은 다음 전시준비로 개방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시실 맞은편 미술관 도서관에는 예술작품들과 관련된 도서들이 중앙의 서가를 가득 메우고 있다.폴리카보네이트를 이용한 중앙 공간에는 열람실이 별도로 배치되어 자료를 검색하거나 독서할 수 있게 되어있다.

다시 미술관 로비를 통해 커피숍 쪽 출입구를 통해 미술관을 나선다. 로비 홀에는 초등학생 무리들이 빠져나가 한적한 모습이다.외부 데크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모습이 한적함을 보여준다.데크에서 외부계단 반대쪽으 로 짧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전철로도 쉽게 갈 수 있는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에 편하게 가서 큰 감동을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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