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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홍콩이 중국의 어느 도시보다 중요한 이유
[천지만리] 홍콩이 중국의 어느 도시보다 중요한 이유
  •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 승인 2019.08.20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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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중국경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어
중국 대륙의 방대한 수요와 해외자본의 중국투자의 중추역할로서의 지위를 이어가야

홍콩이라고 하면 1980년대 청춘을 보낸 분들이라면, 성냥개비를 물고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던 주윤발, 기함을 내지르던 이소룡, 책받침 속 왕조현 등등 추억의 스타들이 떠오를 것이다. 현재 젊은 사람들에게는 홍콩하면 무엇보다 관광과 음식 및 쇼핑의 천국이다. 특히 화려한 홍콩야경은 관광업이 홍콩경제의 한 축임을 실감케 하는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이런 홍콩이 최근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근 11주째 지속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여파이다. 홍콩의 상황이 더 악화되면 세계경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중미무역전쟁과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의 블랙스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 홍콩이 흔들리면 중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방의 구슬"로 불리우는 홍콩은 아시아의 보석이며 남중국해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다. 홍콩은 진주강 하류의 동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1,098 평방 킬로미터이다. 홍콩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선 향료와 관련이 있다. 송나라와 원나라 당시 홍콩은 행정상 광동성 동관(廣東東)에 속했으며, 명나라부터 홍콩섬 남부에 있는 작은 항만으로 광동 남쪽의 향료의 집산항으로 광동성 동관에서 생산한 향신료를 환적하는 역할로 부각되면서 유명해지고 ‘홍콩’으로  불렸다. 당시 홍콩에서 환적된 향신료는 품질이 우수하여 황제에게 진상하는 공물로 분류되었고, ‘해남진기(海南珍奇)’라고 불렸다고 한다. 홍콩 현지인들 또한 향료 재배를 업으로 하여, 당시 제향업과 운향업은 절정에 달해 홍콩은 향료와 함께 명성을 얻었다. 먼 훗날 향료의 재배와 환적은 미미해졌지만 홍콩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이어져왔다고 한다. 다음 홍콩은 천연항만으로 근처에 감미로운 시냇물이 흘러 바다를 오가는 선원들이 이곳으로 와서 물을 마시곤 했는데,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유명해졌고, 이 강은 ‘향강 (香江, Xiangjiang)’으로 불리웠으며, 작은 항만은 ‘홍콩’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영국인들은 바로 이 항구에서 처음으로 홍콩섬에 진입하였으며, 이들은 ‘홍콩’이라는 이름으로 이 섬 전체를 명명하였다. 오늘까지도 ‘향강’은 홍콩의 별칭이다. 마지막으로 ‘향고(香姑)’라고 하는 해적의 아내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해적이 죽은 후에 그녀가 작은 섬을 차지했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이 작은 섬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홍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록 여러가지 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모두 홍콩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명은 명나라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처음에는 홍콩섬에 있는 작은 마을만을 가리켰지만 나중에 홍콩섬 전체의 호칭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19세기 초에 이르러 당시 영국 식민자들에 의해 점령된 전 지역의 통칭이 되었다.

홍콩의 역사는 5천년 전의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콩은 예로부터 중국의 영토였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뒤 남해, 계림, 상군 3개 군을 차례로 남쪽에 세웠으며 홍콩은 남해군 번허현에 소속돼 있었으며, 이로부터 홍콩은 중앙정부의 관할하에 놓이게 됐다. 한나라에 와서 홍콩은 남해군 보로현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동진함화 6년(기원 331년)에는 홍콩은 둥관군 바오안현에 속하게 되었다. 수나라 때 홍콩은 광주부 남해군 보안현에 소속되었다. 당나라 지덕 2년(서기 757년 AD 757)에 보안현을 둥관현으로 개칭하였고, 홍콩은 여전히 둥관현에 소속되게 되었다. 송나라와 원나라에 와서 내륙 인구가 홍콩으로 대량 이주하면서 홍콩의 경제문화가 크게 발전했다. 명나라 만력 원년(1573년) 홍콩은 신안현에 속해 있었다.

홍콩은 훌륭한 천연 심해항으로 세계 3대 자연 항 중 하나로 손 꼽히고 있으며, 영국인들은 홍콩의 빅토리아항이 동아시아에서 훌륭한 항구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영국은 만청정부와의 아편전쟁을 불사하며 극동의 해상무역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홍콩을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1842년부터 1997년 6월 30일까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으로 귀환되었다.

홍콩 전역의 세 지역(홍콩섬, 구룡, 신계)은 각각 다른 시기의 세 불평등 조약에서 유래되었다.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후 영국은 청나라 정부에 1842년 ‘난징조약《南京条约’을 체결하여 홍콩 섬(香港)을 할양하도록 강요했다. 1856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정부를 강요하여 1860년 ‘북경조약《北京条约’을 체결하였고, 구룡반도() 지역을 할양받았다. 1894년 중일 갑오전쟁 이후, 영국은 청정부를 압박하여 1898년 ‘홍콩 경계지역 확장 특별 조서《展拓香港界址专条’를 체결하고, 1997년 6월 30일까지 99년 동안 신계지(新界)를 임대받았다. 새로운 영토의 임대로 당시 홍콩 면적은 10배나 커졌다.

1941년 12월 25일 “블랙 크리스마스데이”에 양모치 당시 홍콩총독은 마지못해 항복을 선언하면서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은 홍콩을 점령하였으며, 3년 8개월 동안 홍콩은 당시 ‘일제통치’하에 있었다. 1945년 9월 15일 일본 패전 이후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홍콩은 영국에 의해 다시 관리되었다. 1982~1984년 사이 중국과 영국 양국 정부는 홍콩의 진로 정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1984년 12월 19일 ‘중국과 영국정부의 홍콩문제에 관한 연합성명(《中人民共和政府和大不列及北兰联合王政府于香港问题明》’을 발표하여 1997년 7월 1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 홍콩에 관한 주권을 돌려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가 되었으며 홍콩기본법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기본법에 따르면 홍콩은 기존의 경제, 법률, 사회 제도를 그대로 두고 50년 동안 '일국양제(한 국가, 두 시스템)’ 를 시행하며, 군사방위와 외교 사무는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것 외에 홍콩특별행정구는 고도의 자치를 향유한다. '일국양제'제도하에 홍콩은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리는('항인치항,港人治港') 고도의 자치 시대에 들어섰다.

그 동안 홍콩은 중국과 다른 국가를 잇는 관문, 즉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금융허브로 여겨져 왔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중심지인 동시에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국제금융허브로, 중국의 역외 국제 금융시장 역할을 해왔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규모와 금융산업이 점점 더 유망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은 아시아 최초의 금융허브로서 모든 금융 부문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 보험 업계는 세계 1 위, 투자 관리는 세계 2 위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은 하룻밤 사이에 오늘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 아니며, 금융제도는 영국 식민지시기에 점차적으로 형상되었으며, 당시 영국정부는 아태지역의 식민지 자본과 국제무역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홍콩을 금융허브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의 국제금융허브도시로서의 모태가 완성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90년대 이전까지 글로벌 밸류체인 속에서 홍콩의 경제와 사회의 급속한 발전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불리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홍콩은 중서방 문화가 만나는 곳으로, 중국인의 지혜를 서양의 발달문경과 결합시켜 선진국 제도와 중국 대륙시장의 우세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유일한 지역이다. 청렴한 정부, 양호한 치안, 자유로운 경제체계 및 완벽한 법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중국에 귀환된 이후 일국양제 시스템은 홍콩의 자본개방 제도를 잘 보존해 왔으며, 중국경제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제자본시장과 폐쇄된 중국 대륙의 해외 관문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01년 이후 중국 대륙의 회사가 홍콩에 많이 상장되면서 홍콩 자본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하였으며 국제자본이 폐쇄된 중국기업에 대한 투자로 자산배분을 분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2005년 이후 중국기업의 해외투자 확대와 위안화 가치 절상흐름으로 해외기관의 위안화 수요가 확대되면서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위안화 허브 시장역할을 하였으며, 세계 3대 국제금융허브 도시로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오늘의 홍콩은 중국경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국 내륙 그 어떤 도시보다 제도적 우세와 유동성 우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대륙의 방대한 수요와 해외자본의 중국투자의 중추역할로서 당분간 그 지위를 이어가야 한다. 최근 중국정부는 선전시를 자유무역 시범구로 신규로 지정하였다. 이는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 있는데 홍콩의 기능을 일부 중국 대륙도시로 옮기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금융의 핵심은 신용.안보.건전하고 공정한 제도와 법률시스템이며,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세계 주요국가의 운영규칙과 자유로운 자본흐름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제금융허브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자리를 마련하고 외국자본이 와서 놀아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출입을 고려하면 본토에 있는 그 어떤 도시도 홍콩의 국제금융허브도시 역할을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경.상하이.선전은 홍콩의 역할을 대체하기 힘들 것이 보이며 아마도 가장 유리한 것은 싱가포르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도 현재 세계 4위 국제금융허브 도시이며 중화문화권에 속해 있으며, 엄격한 법률과 제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격려하고 국제규칙을 중요시하고 있어 중국 대륙의 시장과 서양권 경제를 연계하는 관문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국제자본이 동남아 지역으로 많이 옮겨 투자되고 있는 글로벌 밸류체인의 큰 흐름 속에서 아시안을 경제배경으로 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단연 최고의 우세를 자랑하고 있다. 

오늘의 홍콩은 중국경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의 야경. 사진=위키백과
오늘의 홍콩은 중국경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의 야경. 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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