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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 목적이 아닌 ‘놀고 있는’ 현금 보유 늘어난다!
지급 목적이 아닌 ‘놀고 있는’ 현금 보유 늘어난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0.18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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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B 연구보고서, 저금리․고령화 현금 보유․축장 주요 원인
저금리로 현금 보유 기회비용 낮아져…한국도 예외 아냐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2008년 대금융위기를 분기점으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현금이 국내총생산(명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경제의 디지털화 속에서 현금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시중에서 유통되는 현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현금 비중 추이(자료: 한국은행)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현금 비중 추이(자료: 한국은행)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이용해 10월18일 이 비중을 추산해 보니,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현금 비중은 대금융위기 이전인 2006년 2.1%에서 2009년 2.2%, 2012년 3.0%, 2014년 3.9%, 2016년 5.0%, 2018년 5.6%로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올해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올해는 6%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은 한국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 중 한국은행에 예치하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주요 경제 현금/명목 국내총생산 추이(자료: ADB)
주요 경제 현금/명목 국내총생산 추이(자료: ADB)

이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경제활동에 따라 지급․결제를 목적으로 한 현금 수요의 거래적 동기 이외에도 비거래 동기가 커지면서 현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어서, 무현금․무접촉 지급수단이 발달하고 있는 추세와 대비된다. 관심은 현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 비중이 높아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로 쏠린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개발은행(ADB) 산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ADBI)의 사유리 시라이 초빙연구원과 프로젝트 컨설턴트 에릭 알렉산더 수간디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현금 수요의 글로벌한 증가를 설명하는 이유’가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현금을 보유하는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한다. 지급 목적의 거래적 동기, 기회비용이 낮아지는 데 따른 기회비용의 동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예비적 동기, 노령화 등에 따른 기타 동기다.

일본 고액권 금액 추이
일본 고액권 금액 추이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해 선진경제와 신흥경제 22곳의 2008~2018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금 수요(본원통화-은행 지급준비금)가 늘어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수준과 인구의 노령화를 꼽았다. 특히 대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정책금리가 마이너스이거나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게 으뜸이었다고 평가했다. 현금을 보유하지 않은 데 따른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현금 보유의 동기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유로지역, 일본, 미국을 따로 떼어내 분석해 보니, 중앙은행의 낮은 정책금리가 현금 수요 증가에 준 효과는 더 두드러졌다. 노령인구 비중이 높은 경제일수록 현금 수요가 상대적으로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도 보고서의 주요한 결론이다. 은퇴 이후 상당수 노인들이 신용카드 사용을 중단하는 등 노령자가 현금을 이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액권 금액 추이
미국 고액권 금액 추이

보고서는 고액권이 현금 수요 증가를 촉발하고 있는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한국, 일본, 미국 등 세 나라를 꼽았다. 일본의 경우 시중에서 유통되는 1만엔권 유통액이 다른 액면권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에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미국은 지난 2017년부터 100달러 지폐의 유통액이 가장 많아졌다. 한국의 5만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올해 5월 내놓은 ‘5만원권 발행 10년의 동향과 평가를 보면, 2009년 6월 발행 이후 금액으로는 2년 만인 2011년, 장수로는 2017년 유통 중인 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아졌다.

보고서에 담긴 가장 큰 함의는 현금 수요의 글로벌한 증가의 배경에 ‘현금 축장’(cash hoarding)의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장 현금은 지급․결제를 위해 이용되지 않고 놀고 있는 현금을 의미한다. 화폐 유통의 순환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퇴장화폐’라고도 불린다. 축장되는 현금이 많아졌다는 것은, 화폐가 갖는 여러 가지 기능 중에서 법정통화인 현금이 계산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기능이 높아지고 있음을 함축한다. 그 핵심 고리가 저금리로 인해 화폐 보유의 기회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고액권을 중심으로 현금 축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고액권 금액 추이
한국 고액권 금액 추이

보고서는 금리와 고액권 수요가 역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금리가 내려가면 고액권 수요가 증가하고, 올라가면 감소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대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기관의 지급능력에 대한 우려가 쌓이면서 현금을 보유하고자 하는 예비적 동기도 커졌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가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현금 수요가 향후 한층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두 차례 인하로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에 들어가고 급속한 고령화 추세와 결합해 그동안 요구불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형태를 띠던 화폐가 고액권 현금으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선진경제 11곳 중 중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현금 비중이 높아지는 나라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싱가포르, 영국, 유로지역, 미국이 포함됐다. 이 비중이 안정적인 추세를 보이는 나라는 오스트레일리리아와 캐나다, 하락하는 추세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었고, 신흥경제 중에는 중국이 일관되게 하락 추세를 보였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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