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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에 있어 ‘조선’과 ‘조선학교’란
재일동포에 있어 ‘조선’과 ‘조선학교’란
  • 이동석 재일동포 2세
  • 승인 2021.09.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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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과 ‘북한국적’은 전혀 상관없어…조선적 재일동포 약 27,000명
재일동포에게 ‘조선’은 남북대립의 비극을 극복할 하나의 나라로 받아들여져
일본정부, ‘조선학교’를 사립학교‧외국인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
1조교 지정 받으면 일본 교과서를 써야 하고 일본어로 수업 진행해야
조선학교 등 교육목적 달성할 수 없다는 이유로 1조교 지정 받지 않아

[이코노미21] [이동석] 최근 한국에서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간혹 만나게 된다. 내가 70년대 초에 한국에 유학을 왔을 때는 ‘조선학교’라고 입에 담기만 해도 반공법에 걸릴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와서 다큐멘트리 영화 ‘우리학교’나 오사카 조고 럭비부의 ‘60만번의 트라이’, 최근에는 ‘나는 조선사람이다’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통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계속 교류를 하고 있는 ‘몽당연필’은 조선학교 학생과 그 관계자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얼마나 ‘조선학교’를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쓰이는 ‘조선’이라는 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때 60만명이라고 했던 재일동포는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귀화’, 일본인과의 결혼 등으로 이제는 40만명이 안 된다. 그 중 ‘조선적’인 재일동포는 약 27,000명이다. ‘조선적’이라고 하면 대부분 ‘북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는데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다.

해방 후 전후처리를 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인해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의 국적은 ‘일본국적’에서 일제강점기 전의 ‘조선’으로 하기로 결정됐고 1952년 4월 28일에 모든 재일동포의 국적은 ‘조선’이 됐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대한민국’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도 아닌 ‘조선’은 국적이 아닌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지만 통일된 우리나라를 염원하는 재일동포에게 ‘조선’은 남북대립의 비극을 극복할 하나의 나라 ‘조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65년 한일회담으로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일본은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로 ‘대한민국’을 인정했다. 일본에 있는 ‘조선’ 사람은 대부분이 남쪽출신이었던 이유도 있고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 ‘조선적’으로 사는 불편함도 있고 해서 점점 ‘대한민국’의 국적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으로 더 가속됐다. ‘조선적’을 ‘한국국적’으로 바꾸지 않은 사람 중 ‘북한’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통일된 조국’을 바라는 이러한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두가 한국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동석
이동석

조선학교의 역사와 의미

해방후 조국에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말’이라는 생각으로 재일동포들은 ‘국어감습소’를 일본 각지에 설립했다.

해방후 일본에 생긴 조련(재일본조선인연맹, 1945년 10월15일 결성)이 중심이 돼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돈이 없는 사람은 노동으로”라는 구호로 만들어진 ‘조선인학교’에게 1948년 연합국최고사령부(GHQ)는 폐쇄명령을 내렸다.

‘항신(오사카, 고베지역) 교육투쟁’은 재일동포가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사건으로 민족교육을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조선학교는 ‘조련’이 해산한 후에 생긴 ‘조총련(조선총련)’ 산하에 속하게 되었고 1970년대에는 일본 전국에 161학교(초,중,고,대), 학생수는 4만명을 넘었다. 많은 조선학교출신자 또는 재학생이 ‘공화국’(북한)에 귀국하기도 했다.

북한으로부터 조선학교에 지원금이 오기도 하고 60년대, 70년대 초는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풍조 속에서 ‘조총련’이 가장 영향력을 가졌던 시기다.

70년대 후반부터 저출산으로 학생수가 자연감소되고 그 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공화국’의 참모습을 알 수 있게 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2002년 북한이 사실을 인정)으로 극격히 학생수가 즐었다.

일본정부는 북한을 적대국으로 보고 그 산하에 있는 ‘조총련’이 관리하고 있는 ‘조선학교’를 사립학교나 외국인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 지급에서 제외하고 있다.

‘조선학교’는 이에 대해 일본각지에서 제소하고 싸우고 있으나 패소가 계속되고 있다.

조선학교에 비해서 한국계 학교는 얼마나 있는가?

오사카(2), 도쿄(1), 교또(1)에 있고 오사카에 북한계도 한국계도 아닌 재일동포가 2008년에 설립한 ‘코리아국제학원’이 있다.

한국계학교은 1조교(일본 문과성의 교육지침을 준수하는 학교)의 인정을 받고 있지만 ‘코리아국제학원’는 1조교의 지정을 받고 있지 않다. 1조교의 지정을 받으면 대부분의 교과서는 일본 교과서를 써야 되고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1조교 지정을 받은 한국계학교는 일본 문과성의 교육지침을 지켜서 수업을 해야 하고 극단적 예로는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일장기를 내 걸어야 하며 일본국가인 ‘키미가요’를 제창해야 한다.(한국계 학교가 이런 지침을 실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또 일본인교사고용을 거부할 수 없고 일본인 학생도 입학시켜야 한다.

조선학교가 이런 규정이 있는 1조교 지정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학생수가 줄어들고 북한의 지원도 없어진 조선학교는 경제적으로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때 161개 학교에 학생수가 4만명을 넘었던 조선학교는 이제 98교, 학생수는 5,000명을 넘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조선학교는 어떤 학교일까?

조선학교를 비판적으로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이유로 첫째, 북한의 김일성과 그 후계자를 우상화하는 주체사상교육을 한다. 둘째, 일본학교보다 교육의 질이 안 좋아서 일본의 대학진학이 어렵다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전에 교실마다 걸려 있었던 (김일성)초상화는 일정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없어졌고, 북한의 역사수업은 1주일에 2시간 정도 밖에 없다. 그 이외 수업은 우리말로 하지만 일본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거의 같다.

일본의 우익화되어가는 교육을 받는 것이 더 좋을까? 조선학교에서 우리말로 교육받는 게 더 좋을까?

전에는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이 일본대학 입시시험을 보려면 고등학교 졸업인정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은 거의 모든 일본 대학을 시험볼 수 있게 됐다. 해마다 국립대학이나 유명사립대학에 합격하는 조선고급학교 학생이 꽤 있고 일본대학 진학에 목표를 둔 교육을 하는 반도 편성되어 있다. 또한 스포츠도 잘 한다. 오사카 조고는 럭비로 유명하고 일본전국대회에 자주 출전하고 있다. 축구도 잘 하고 일본 전국대회에서 4강에 든 적도 있다.

내가 두 아들을 조선학교에 보낸 이유

나는 재일동포 2세로 고등학교까지 일본학교에서 교육울 받았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후 우리말을 배우고 싶어서 한국에 유학왔다. 한국외국어대학 3학년 때 ‘학원침투 재일교포간첩단사건’으로 간첩죄로 5년형을 받았다. 4년 8개월동안의 옥살이를 한 후에 일본에 돌아가서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다.

큰 아들을 어느 초급학교에 입학시키느냐 많은 고민을 했다. 경제적 부담이 크고 열악한 시설인 조선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조선학교가 조선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가장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지켜온 투쟁의 역사가 있고 동포애로 가득 찬 학교이기에 조선의 아이는 조선학교에서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니까 여러 문제도 있었다. 생각외로 보수적인 선생님과 보호자들. 조총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나 조선학교 졸업생이 아닌 부모가 아이를 조선학교에 보낸 위화감.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걱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아들은 고급학교를 졸업 후 일본대학에 진학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이처럼 조선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사람이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세금도 내고 일본사회에 공헌하고 있는데도 조선학교의 수업료 무산화는 일본국의 지출이 조총련으로부터 김정일(김정은)으로 넘어간다는 웃지도 못하는 이유로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한 인권차별이며 민족차별이다.

큰 아들의 장남(나의 손자)이 내년 학교에 입학한다. 아들 부부는 손자를 조선학교에 보내겠다고 한다. 손자가 사는 지역에 있었던 ‘우리학교’(재일동포는 조선학교를 애정을 담아서 우리학교라고 부른다)는 폐교가 되어 스쿨버스로 다녀야 한다. 내년에 입학하는 1학년은 3명이고 현재 3학년은 한명도 없단다. 전교생 합쳐도 20명이 안되는 학교이지만 민족교육을 지켜야 한다는 동포와 양심적인 일본사람으로 조선학교(우리학교)는 유지되어 있다. [이코노미21]

 

필자 소개

이동석은 1952년생(만 69세)으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까지 일본학교에 다녔다. 고3 때 본명선언(일본이름을 버리고 본명으로 산다는)을 했으며 고교졸업후 한국에 유학왔다. 1973년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 입학하였고 3학년 재학중인 1975년 "학원침투 재일동포간첩단사건" 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4년8개월동안의 감옥생활후 1980년에 가석방돼 1981년 거주지인 일본 오사카에 돌아간 후 취직.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2011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해 2014년 1월 서울 고등법원에서 4번의 공판후 ‘무죄’ 판결. 2015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2018년 한국외대 프랑스어과에 재입학해 2021년 2월 동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후 서울에 거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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