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8 15:18 (수)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 박수영 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25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코노미21] [박수영] A.G. (After Guild) 10191년, 레토 공작이 다스리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황제 샤담 4세의 명령으로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스파이스의 생산지인 아라키스 행성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레토는 아들 폴과 첩인 레이디 제시카와 함께 아라키스 행성으로 이주하지만, 이전 관리자인 하코넨 가문이 남겨 둔 낡은 장비로는 황제가 명령한 수확량을 채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 명령은 사실 귀족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견제하고자 하는 황제의 음모였다. 황제는 하코넨 가문과 비밀 협약을 통해 아라키스 행성에서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습격해 레토 공작을 살해하고,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와 함께 겨우 빠져나온 폴은 생존과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을 찾아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게 된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65년 출판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인들의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우주에서 가장 신성한 환각물질인 ‘스파이스 멜린저’와 유일한 생산지인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황제와 귀족 가문이, 신비주의 교단과 산업 길드가, 제국과 식민지가 각축전을 벌이는 이 방대한 서사시는 많은 영화인들의 ‘꿈의 프로젝트’임과 동시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이상향이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데이비드 린, <홀리 마운틴>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등의 손을 거친 이 꿈의 프로젝트는 <엘리펀트 맨>을 막 마친 떠오르는 신성 데이빗 린치 감독에 의해 1984년 마침내 영화화되지만, “엉망진창이고 이해할 수 없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나리오” (로저 에버트)라는 평가와 함께 몰락하고 만다.

1984년의 “위대한 실패”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 드림 프로젝트에 도전해 온 헐리웃은 결국 2021년,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성공적인 리메이크를 이끌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을 앞세워 마침내 오랜 숙원을 이루어냈다. 제 78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는 “흠잡을 곳 전혀 없는 아름답고 웅장한 대서사시”(인디펜던트), “역대 최고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디언) 등의 찬사를 받으며 10월 20일 공개되었다.

1984년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공개된 <듄> 역시 총 6권으로 이루어진 원작 소설 중 1권의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황제와 손잡은 적대 세력의 음모로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들이 식민지 원주민들과 힘을 합해 가문의 복수를 벌인다”라는 메인 플롯을 뼈대로,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풍부한 서사를 결합하여 생태주의, 종교와 메시아, 신비주의 등의 인문학적 성찰을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그려내고 있다.

데이빗 린치의 <듄>이 가장 크게 비판받은 지점은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남짓의 영화 속에 밀어넣으며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축약되었다는 점이다. 2021년작 <듄>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는 전작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원작 소설과 비슷한 대서사시인 <반지의 제왕>처럼 시리즈 연작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듄>은 총 2부작으로 예정된 영화 중 첫 번째 파트로, 주인공 폴이 시련을 통해 원주민들의 구원자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시간을 늘리고 복잡한 서브플롯을 주인공인 폴 위주로 정리하면서 느껴질 수 있는 공백을 메우는 것은 압도적인 화면이다. <시카리오>, <컨텍트>, <블레이드 러너 2049>등을 통해 단순한 스펙타클이 아닌, 감정이 느껴지는 멋진 화면들을 선사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음모와 암투의 한가운데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소년 폴의 복잡하고 어두운 심정은 모래로 가득한 사막행성 아라키스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단번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 마치 엠비언스처럼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각 장면의 중심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화면과 함께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해 준다. 마치 종교음악 같기도 한 단조로운 멜로디의 낮은 저음 위주의 음악은 종교와 신념, 정신세계를 주로 주로 다루는 서사 구조와 완벽히 어울린다.

<듄>은 현대의 석유를 연상시키는 주요 자원인 “스파이스”의 이권을 둘러싸고 황제, 아트레이데스, 하코네 등 귀족 가문, 신비주의 교단인 ‘베네 게세리트’, 그리고 주 무대인 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맨’ 사이의 권력투쟁과 음모, 암투를 그리는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인 폴을 통해 해방자-학살자의 딜레마, 믿음과 광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가진, 그것도 2부작의 첫 번째 영화다 보니 마블이나 스타워즈 같은 액션 활극의 재미는 떨어진다. 하지만 SF적 가상 세계에서 현대 국제정치의 암투를 연상케 하는음모와 암투의 정치 드라마이자 영웅과 학살자라는 ‘동전의 양면’에 집중하는 심리물로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오랫동안 잊기 힘든 충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미2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