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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로 떠난 ‘이코노미21 포토워크샵’
대마도로 떠난 ‘이코노미21 포토워크샵’
  • 김창섭 기자
  • 승인 2023.09.19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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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 때 하루 최고 3000여명이 대마도 찾아
관광객, 현재 호황기 비해 1/3 수준에도 못미쳐

[이코노미21 김창섭] 이코노미21이 주최한 ‘포토워크샵-홍세화와 함께 하는 대마도 기행’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홍세화 소박한자유인 대표를 비롯한 총 26명은 2박3일(9월9일~11일) 동안 부산과 대마도를 각각 1박2일간 다녀왔다.

부산과 대마도는 직선거리로 5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며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이다. 접근성이 좋은 대마도는 부산·경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국인 여행객이 연간 최고 48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일본여행 불매운동으로 대마도 관광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현재 한국인 관광객이 대마도를 찾기 시작했으나 이전에 비하면 1/3 수준에 못 미친다.

대마도 전문 여행업체인 발해투어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 대마도를 향하는 배는 페리호를 포함해 총 5척이 있었으나 지금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선박 2척으로 줄었다”며 “호황기 기준 하루 최고 3000여명의 한국인이 대마도를 찾았으나 지금은 성수기인 주말에도 1000여명 정도 수준이 입항한다”고 설명했다.

지리적으로 대마도는 ‘한·일 간 다리’였다.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두 땅을 왕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전에는 부산에서 대마도 북단(히타카츠항)까지 배로 가고 대마도 육로(80여㎞)를 거쳐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에서 규슈까지(82㎞) 배로 건너갔다.

대마도에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 근접성 등으로 대마도는 한국의 아픈 역사 흔적이 많은 섬이다. 대마도주의 아들과 결혼한 덕혜옹주의 결혼봉축기념비를 비롯해 유배지에서 아사한 최익현의 마지막 집터가 남아있다. 또 일본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한 러일전쟁의 격전지이다.

러일전쟁 격전지였던 만강교 인근 모습. 사진=이코노미21
러일전쟁 격전지였던 만강교 인근 모습. 사진=이코노미21

한국과의 지리적 역사적 밀접한 관계로 인해 일본 정부는 대마도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본래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대마도에 관심이 없었으나 한국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대마도를 예의주시하며 대마도 내 한국의 흔적을 없애기 시작했다. 덕혜옹주 결혼봉축비는 내년부터 한국 관광객이 볼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이며 최익현의 집터도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대마도민들도 한국인 관광객에 대해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업과 관광업 종사자가 많은 대마도 주민들에게 한국관광객의 방문은 절실하다. 대마도 곳곳에는 한국 관광객을 환영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대마도에서 “여기는 한국 땅이다”라고 큰소리로 떠들고 다니는가 하면 특히 2012년 한국인이 대마도 불상을 한국으로 밀반입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마도 주민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크게 악화됐다.

실제 한국인 관광객을 인솔할 때 여행업 관계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이전에 비해 많아졌다. 큰소리로 떠든다거나 밤늦게 술을 마시는 행위, 차도에 진입하지 말고 인도로만 걸을 것 등 당연히 지켜야 할 문제에 대해 반복해서 주의를 당부하는 모습이 많았다. 여행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경적을 울리는 것을 금기시하는 대마도인이 한국관광객들이 지나가면 경적을 울려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한다.

이처럼 대마도는 한일관계의 우호 분위기와 혐오 분위기 속 한 가운데 위치한 독특한 섬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대마도는 애증의 섬이기도 하다.

홍세화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부간 관계에 따라 서로를 혐오하는 것은 두 나라 시민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포토워크샵에 참가해 대마도를 방문한 재일교포 이동석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동석은 “제주 4·3항쟁으로 도일한 후 저명한 작가로 활약한 김달수는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기 조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그는 대마도까지 내려와 부산을 바라보곤 했다”며 그의 발자취를 추적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막상 대마도에 도착하니 일본에 온 것 같지 않았다. 간판이며 안내판 심지어 도로표지판조차도 한국어가 병기됐다”며 “상점 등을 제외하면 일본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마치 한국 관광지를 온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21]

대마도 유일한 용궁신사인 와타즈미 신사. 경남 김해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이코노미21
대마도 유일한 용궁신사인 와타즈미 신사. 경남 김해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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