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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대정부 일시대출금이 113조?...경제기사 읽을 때 유의점
한은 대정부 일시대출금이 113조?...경제기사 읽을 때 유의점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3.10.31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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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조억은 올해 정부가 차입한 액수를 전부 합한 금액
‘누적’ 대출금은 의미가 없어…인플레에 미칠 영향은 몰라
임시 대출금 제도를 통해 어떻게 자금을 사용했는지가 중요

[이코노미21 양영빈] 10월23일 있었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은행의 대정부 일시대출금의 규모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기사들 중 하나다.

1월부터 9월까지 대정부 일시 대출금 113조6000억으로 역대 최대라는 기사를 보면 대부분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113조6000억원을 대출받은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수치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여러가지 상식과 배치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자 지급액이 1500억원인데 이것은 단순 계산으로 누적 대출금인 113조6000억원에 비하면 0.132%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저렴한 이자이다. 아무리 정부의 권한이 막강하더라도 9개월간 0.132% 이자만 지급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둘째, 누적’ 금액의 의미다. 기사에서는 바로 이어서 다음처럼 설명한다.

이것은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113조6000억원을 한꺼번에 차입한 것이 아니라 차입/상환을 반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113조6000억원은 올해 정부가 차입했던 액수를 전부 합한 금액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누적’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있다.

코인 데이트레이더 A와 장기 보유자 B를 통해 이런 계산 방식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데이트레이더 A는 매일 1비트코인을 매수/매도를 반복한다. 장기 보유자 B는 한번 1비트코인을 매수한 후 그대로 보유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 앞의 계산 방식대로라면 데이트레이더 A의 ‘누적’ 비트코인 보유는 365비트코인이 된다. 그 어느 누구도 A가 365비트코인을 보유했고 따라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누적’에 의해 도출된 수치는 그 어떠한 의미도 없다.

평균적으로 보유한 것이 의미 있는 통계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A, B의 비트코인 평균 보유는 1비트코인이 된다.

앞에서 인용한 기사 중간에 평균 잔액이 5조8000억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자지급은 원금의 2.6% 정도이고 대략 현행 금리로 봤을 때 수긍이 갈만한 수치가 된다.

정부의 대출은 한은의 지급준비금 증가로 바로 연결된다. 따라서 본원 통화를 공급하게 된다. 현재 8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본원통화는 266조원이다. 누적 113조6000억이 임시대출금 형태로 정부에 한꺼번에 대출하면 본원 통화가 43%나 늘어나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누적’ 대출금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물론 5조8000억원은 본원통화에 비하면 2.2%로 결코 작은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해외 사례를 들어서 우리나라 상황을 비판할 때 주의할 점

일시 대출금 제도의 정의에 따라 정확히 같은 제도인가의 진위를 따지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미국 연준은 이미 3월 은행위기 당시 정부에서 문제가 된 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때 '브리지뱅크론' 형태로 최고 2280억달러까지 대출을 한 경험이 있다.

다음은 연준이 브리지 뱅크론 형태로 재무부(정부)에게 대출한 금액의 추이를 보여준다.

연준의 대출이 감소하고 있고 이것은 재무부가 은행 위기가 진정됨에 따라 꾸준히 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만 시행하고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라고 무조건 다 안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이런 제도를 시행했는지 잘 따져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당한 비판

정부가 임시 대출금 제도를 이용한 것은 세수 부족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수 부족의 원인과 임시 대출금 제도를 통해 어떻게 자금을 사용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한 감사 대상이다.

단순히 의미 없는 ‘누적’ 금액을 전면에 내세워 정부를 질책하는 것은 건설적인 비판이 될 수 없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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