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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2000명 증원, ‘방향-정도-시기’ 3박자 맞나?
의대 2000명 증원, ‘방향-정도-시기’ 3박자 맞나?
  • 박원일 기자
  • 승인 2024.02.26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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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향성에는 공감
적정한 증원 규모는?
부실교육 우려 제기돼
굳이 총선 전에 해야했나
충분한 교감과 설득 없어

[이코노미21] 조금은 솔직해지자.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킬 카드가 급하게 필요했던 것이고, 의사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 여전히 불가(不可)만 외치는 모양새다. 양비론(兩非論) 혹은, 양시론(兩是論) 관점에서 반반(半半)의 타협이라도 이루려면 양자가 성의를 갖고 정책 구체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책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방향성이 잡힌 상태에서, 강약의 정도를 정하고 이를 실행할 타이밍을 고려함으로써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의대 증원 정책은 중장기 방향에 대한 공감대는 마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급격한 정원 확대로 인한 부실교육 우려와 더불어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분명 정부가 비판받을 지점이다.

의대 증원 관련한 대립

주요 94개 병원 소속 전공의 약 78.5%(8897명) 사직서 제출.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 이탈 전공의 69.4%(7863명).

복지부, 전공의 70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

23일 오전 8시부로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 ‘심각’(최고단계)으로 격상.

26일 현재 전국 의과대 재학생 중 2/3 이상(1만2천여명) 집단 휴학 신청.

이것이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두고 정부와 의사 간에 벌어진 지난 일주일 동안의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0일 긴급 대의원총회를 통해 1)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2)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3)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국민의 생명권은 당연히 소중하지만, 의사의 직업선택의 자유 역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며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정부는 원칙적인 법집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대검찰청, 경찰청은 전날 '의료계 집단행동 대책 회의'를 열고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와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정상 진료나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도 엄중히 처벌하기로 했다.

저출산 고령화 해법에 대한 상반된 시각

우리시대 최대 사회적 난제인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대처하는 해법으로서 의대 증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상반된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연장자들의 의료수요가 급속히 늘 것이라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자주 병원에 가기 때문에 고령화로 노인이 늘어나면 그만큼 의료 수요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의료기관방문횟수(입원+외래)는 1990년 약 8일에서 2022년 약 21일로 꾸준히 늘어났다. 외래만 고려할 때 2021년에는 연간 15.7회로 조사됐는데 이는 OECD 평균 5.8회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의사 수 및 인구 천명당 의사 수는 2021년 기준 13만2천명과 2.55명으로, 천명당 의사수는 OECD 평균 3.7명보다 낮은 상태다. 더불어 의사의 근로시간 감소나 고령의사의 증가 등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의사들은 인구 감소로 인구당 의사 수가 급증해 오히려 의사가 남아도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의 의대 증원은 의사인력의 공급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급과잉은 안정화된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붕괴시켜 부실교육을 양산하고, 이로 인해 시장에서 의사들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OECD 의사 수와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며 진료대기일수, 건강지표, 의료만족도, 평균수명, 의료 수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편, ‘필수의료 패키지’는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하고 △보험에 가입하면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의 기소를 면제해주는 내용의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등 의사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비급여 항목을 끼워서 진료하는 '혼합진료' 금지 △임상 수련을 마친 의사에게만 개원할 수 있도록 하는 '임상의사 면허' 도입 △의사 외에도 미용의료를 시술할 수 있도록 자격체계 개선 등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담을 축소하고 미용의료 분야로의 의사 쏠림 현상을 해소하자는 의도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공의료 수준에 따라 증원에 대한 시각차 존재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독일의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 과에 관계없이 단체 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고, 개원의도 공보험(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의대 증원이 우리처럼 큰 이슈가 되지는 않는 상태다.

영국도 국영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의사 대부분이 NHS(국영의료서비스) 소속으로, 전문의도 평준화된 월급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영국에서도 의대 입학 정원 증가를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공공의료 체계가 잘 정비된 나라는 의사수급에 대해 유연한 시각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우리나라 현실과는 아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언제나처럼 국민만 피해

스타일(?)상 자존심 굽힐 것 같지 않은 대통령이 전공의 등의 단체행동을 인내심을 갖고 용인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교육부를 통해 3월4일까지 2025학년도 의대정원 배정 관련 수요조사를 완료하고, 이후 총선 전 학교별 배정을 확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29일까지 현장을 떠난 전공의가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어떤 정책도 애초 목표대로 100% 추진되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한다. 정책은 결국 상대방과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상대방의 존재 자체로 인해 나의 주장만 100%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의대 증원 정책도 막강한 조직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의사집단과의 타협의 결과물이었어야 했다. 100%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 관철시킬 수 있도록 주고받을 수 있는 세부항목의 조합을 여러 개 만들어 협상했어야 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안한 것 같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총선 전까지.

이제 전공의들의 이탈로 병원은 개점휴업상태로 접어들고, 임시로 진료에 동원된 인력들은 며칠 내로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이고, 적지 않은 의대생들은 휴학으로 이에 동참할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주동자 색출 등으로 의사조직의 힘을 와해시키려 할 것이고, 언론을 상대로 의사 악마화에 집중할 것이다.

고통 받는 국민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코노미21]

의사 수 및 인구 천명당 의사 수. 출처=통계청
의사 수 및 인구 천명당 의사 수. 출처=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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