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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PC방 포화상태 ‘몸살’
[비지니스] PC방 포화상태 ‘몸살’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1.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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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줄고 비용 늘어 이사·폐업 속출… 전문화·특화 바람 가속화
거리를 걷다보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언제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PC방이다.
예전에는 시내 한가운데나 적어도 상가가 많은 지역에나 가야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동네 구석구석에서도 PC방을 볼 수 있다.
“초창기야 PC방이 별로 많지 않아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많은 PC방들이 다 돈을 벌고 있을까?” 돈 버는 데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법도 하다.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전국 멀티게임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에 PC방은 이미 2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정확히 2만1460개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8.5% 증가된 수치다.
업계에서는 지금은 그보다 더 많아져 약 2만3천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포화상태가 넘은 지는 이미 오래됐는 데도, 수치상으로는 여전히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PC방이 포화상태이면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하기 쉽고,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인문협) 김윤범 정책팀장은 “아직도 수익이 적자구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운영비에다 PC 유지나 보수 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수익은 아니지만, 처음 투자해서 한 일년 정도면 적어도 원금은 보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이 앞으로 계속 맞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PC방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폐업하거나 이전하는 PC방도 역시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김윤범 팀장은 “최근 조사를 해본 결과 9천개의 PC방 중 일주일에 평균 100여개는 이사하거나 폐업한다”고 밝혔다.
인문협의 김기영 서울시 지부장도 자신이 만나본 PC방 업주 중 50%은 이미 PC방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이고, 20~30%는 적임자만 있다면 팔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기본적으로 PC방의 영세성에서 비롯된다.
인문협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 PC방 업체들의 평균 시간당 이용료는 1천원, 컴퓨터 보유대수는 30대, 하루 가동시간은 6시간에 불과했다.
한달 평균 매출액은 540만원 정도다.
임대료 등 기본적인 운영비와 컴퓨터 유지·보수 비용, 그리고 유료화한 게임 업체들에게 내는 로열티 등을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는 금액이다.
게다가 이미 2~3년 전에 PC방을 시작했던 업주들은 컴퓨터가 낡아 거의 새로 PC를 구입해야 할 판이다.
이런 비용까지 친다면 적자라는 것이 업체들의 반응이다.
PC방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이렇듯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미 지난해 5, 6월께부터다.
PC방 위기의 첫번째 배경은 무엇보다 업소가 난립해 과당경쟁을 하다보니 가격경쟁이 치열해져 평균 시간당 요금이 하락했다는 데 있다.
처음 PC방이 등장했을 때는 시간당 요금이 2천~3천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큼 시설을 갖춘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천원대다.
두번째는 지난해부터 ADSL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가정에서 인터넷을 접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PC방 업체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게임 공급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유료화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PC방 주인은 “유료화가 된 이후 애초 수입에서 30% 이상이 줄어들었다”고 털어놨다.
인문협 김기영 지부장은 “게임 이외에 쓸 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라고 덧붙인다.
사실 게임방 수준을 벗어나고 싶어도 마땅히 서비스할 콘텐츠들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PC방들은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처했다.
게임 업체 유료화도 큰 타격 최근 수출협상차 대만을 다녀온 한 온라인게임 업체 관계자는 대만에서 활성화하고 있는 PC방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PC방이 많이 다양화돼 있어요.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만화도 보고, 쉬기도 하고. 기능이 매우 다양하더군요.” 국내 PC방 업주들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미 PC방 기능을 전문화하거나 특화해서 성공하고 있는 업체들도 많다.
전문화한 PC방 중 대표적인 것이 증권PC방이다.
명동이나 을지로 등 증권사가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증권정보 제공은 물론 사이버 증권거래를 할 수 있는 증권전문 PC방이 많다.
명동1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인터넷월드뱅크의 백삼선씨는 지난해 PC방을 만들 때부터 전문화에 눈을 돌렸다.
전업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증권정보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증권방을 만든 것이다.
컴퓨터 사양도 최고급으로 했다.
업그레이드는 물론 사이버상에서 증권거래를 할 수 있는 홈트레이딩 시스템을 설치하고 최신정보도 제공한다.
애초 증권전문 PC방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게임 업체들의 유료화 바람에도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서비스에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백삼선씨는 최근 주위의 한 증권사와 연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증권교육도 실시하고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다른 업소와 차별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강남에 있는 베가스도 최근 PC방을 고급화하는 차별화 전략을 취했다.
우선 베가스는 E1급 광전용선을 설치해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휴게실을 따로 두어 TV나 신문, 잡지 등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제공했다.
무료 음료서비스는 물론이고 엽서 등의 팬시용품도 비치해두어 관련 업체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공간도 주었다.
베가스의 이제영씨는 “PC방을 새롭게 단장하는 데 1억원 정도가 들었다”며 “아무래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고급화하고 대형화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여성 전용 PC방,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을 위한 회원제 PC방, 인터넷 교육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이버교육 PC방 등도 최근 만들어지고 있다.
비슷한 업체가 함께 합동 PC방을 만드는 사례도 있다.
망우리에 있는 PC방 엔스타트는 서로 다른 업체 3곳이 합쳐 시너지를 내는 데 성공했다.
엔스타트 담당자는 “독립적으로 운영했을 때보다 수익성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다.
업계 “법적 제한 풀려야” 하지만 이런 스스로의 변화 노력만으로는 아직 여러가지 한계가 많다는 것이 PC방 업계의 주장이다.
PC방이 좀더 광범위한 변신을 위해선 여러가지 법적 제한이 풀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내부 시설물을 변경하려고 해도 시설물 설치에 관한 세부 법조항 때문에 함부로 변경할 수가 없다.
단체고객을 위한 방을 만들 수도 없으며, 칸막이 높이도 1.3미터로 제한돼 있다.
청소년과 성인이 같이 이용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특정 타깃층에 대해 맞춤 서비스를 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현재 PC방은 학교 주변 100미터 이내에는 설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도 불공평한 것이라고 PC방 업주들은 주장한다.
PC방은 제한되고 있는 반면 당구장은 100미터 안에 설치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구장은 현재 체육시설로 지정돼 있어요.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은 PC방보다 오히려 당구장일 겁니다.
24시간 영업을 하거든요.” 이런 주장은 교육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미 개정논의가 있던 법안 중 일부에 대해서는 개정안이 마련되고 있고, 오는 9월25일 시행되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이 법이 최근 통과되면서 그동안 따로 떨어져 있던 PC방과 오락실, PC방과 노래방이 서로 합쳐질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앞으로는 PC방이 보다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PC방이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지적했듯이 PC방 업체들이 전반적으로 영세한 규모여서 섣불리 변신을 꾀할 처지가 못되기 때문이다.
대형화하고 전문화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자금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겠습니까. 시장기능에 맡기는 수밖에요. 지금은 구조조정기라고 생각해요. 경쟁력 있고 자본력 있는 업체들은 살아남겠지요. 그렇지 못한 PC방은 정리가 될 것으로 봅니다.
” 인문협 김 지부장은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선 시장논리만이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한바탕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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