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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디지털라이프코리아
[현장탐방] 디지털라이프코리아
  • 임채훈
  • 승인 2000.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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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비서 나오너라”
너무 바쁘다.
컴퓨터 앞에만 붙어 있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1분 1초가 아깝다.
‘몸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럴 때 디지털라이프코리아 www.netavatar.co.kr 직원들은 “현주야” 또는 “윤희야”를 외친다.
“예,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목소리를 들은 귀여운 아바타가 모니터에 등장해 상냥히 인사한다.
“메일”이라고 말하면 전자우편을 확인해준다.
‘한글 띄워봐’ 하면 “예, 실행하겠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워드프로세서 한글을 실행시킨다.
자기 혼자 즐겁게 놀기도 한다.
햄버거를 먹기도 하고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음료수를 마시기도 한다.
짜증을 내며 “사라져” 고함을 치면 모니터 속으로 살금살금 도망간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에서 개발한 음성인식 사이버 캐릭터 ‘윤희’와 ‘현주’ 모습이다.

음성인식 응용기술에서 최고가 되겠다음성인식 응용기술에서 최고가 되겠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는 지난 7월 설립된 ‘병아리 기업’이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음성인식 응용기술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다고 자부한다.
지난 9월 개발한 지 한달 만에 시험판이 나온 ‘네타바타’가 그런 자신감의 소산이다.
통신망을 뜻하는 영어의 ‘넷’(net)과 분신을 의미하는 산스크리스트어 ‘아바타’(avatar)를 합한 네타바타는 일종의 사이버 비서다.
박용후(34) 사장은 네타바타의 특징을 음성인식, 음성합성, 캐릭터 3가지라고 말한다.
보기 좋은 형상(캐릭터)이 주인님 명령을 알아듣고(음성인식),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음성합성)이 네타바타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는 음성처리 전문업체인 엘앤에이치(L&H)의 원천기술을 이용해 이런 특징들을 구현했다.
비록 원천기술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음성인식률을 높이기 위해선 주변 소음과 이용자 목소리를 구분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는 이를 위해 소음제거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네타바타가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비율을 80%까지 높였다고 자랑한다.
정중호 소프트웨어 개발팀장은 “80%라는 수치는 상당한 수준”이라며 어깨를 으쓱댄다.
네타바타를 위해선 그동안 240MB의 저장공간이 필요했는데, 이를 30MB까지 줄일 수 있게 한 기술도 이 회사 자랑거리다.
분산객체 기술을 이용해 다른 솔루션과 접합을 쉽게 한 것이다.
박용후 사장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L&H에서도 놀라움을 표시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음성기술을 캐릭터와 결합한 것도 국내에서는 처음 한 시도였다.
이를 위해 음성기술 못지않게 네타바타를 디자인하는 데도 많은 정성을 쏟았다.
디자인팀 최남용씨는 “2주일 내내 집에도 가지 못하고 캐릭터를 꾸미는 데 매달렸다”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살리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관절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해부학 책을 뒤지며 며칠씩 밤을 샜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최근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컴퓨터 주기판 개발업체인 유니텍전자, 컴퓨터 제조업체인 현주컴퓨터와 제품공급 계약을 맺었다.
쟁쟁한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얻은 성과였다.
이제 유니텍전자와 현주컴퓨터 제품을 쓰는 이용자들은 네타바타의 주인님이 되는 것이다.
‘윤희’와 ‘현주’로 네타바타 이름을 정한 것도 이들 제휴업체를 위해서다.
시장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쟁업체들이 비슷한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에 한두번 사용하지만, 키보드나 마우스에 익숙한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쓰기에는 불편하다는 점도 걸린다.
정중호 팀장은 “MP3 플레이어나 일정관리 등에 네타바타 기능을 계속 붙여나갈 것”이라며 “인공지능 수준까지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주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사원에 맞춰 회사가 변해야 박용후 사장은 회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자율’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사장이 거의 간섭하지 않고 직원들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해왔기 때문에 네타바타 같은 창의적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방침은 회사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는 직원을 뽑을 때 사장 면접을 거치지 않는다.
사원들 스스로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를 뽑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장에게 누구를 뽑았다고 보고만 하면 된다.
때로 사장이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누구세요?”라며 묻는 일도 생길 정도다.
출퇴근시간도 따로 없다.
한달에 몇시간을 근무했는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결과물만 약속한 시간에 내놓으면 된다.
박용후 사장은 “직원들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게 하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한다.
회사 틀에 사원을 맞추기보다는 사원들 특성에 맞게 회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회사가 잘 굴러갈까. 정중호 팀장은 “네타바타를 개발하는 동안 집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며 웃는다.
자율만큼 책임이 뒤따른다는 얘기다.
팀장에게 막강한 권한이 있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점이다.
팀장 권한은 사장과 대등할 정도다.
팀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사장에게 보고만 하면 된다.
박용후 사장은 “기존 관점으로 보면 이상한 회사처럼 보일 것”이라며 “하지만 정보는 지시하거나 하달받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때로는 팀장 생각과 사장 생각이 달라 일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경우 다른 회사 같으면 간단한 해결방식이 있다.
사장이 지시를 내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의견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마라톤 회의가 시작된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회의는 계속된다.
팀원들에 대한 면담도 함께한다.
“제가 설득될 때도 있고 팀장이 생각을 다시 할 때도 있다”고 박용후 사장은 말한다.
디지털라이프코리아는 자본금 8억원에 직원이 50여명이다.
제품 개발을 시작한 지 4개월 정도밖에 안됐지만 매출액이 이미 3억2천만원을 넘어섰다.
*박용후 사장 프로필 1967년 출생 1992년 순천향대학교 전산학과 졸업 1994년 월간 <시사컴퓨터> 기자 1995~98년 월간 편집장 1999~2000년 디지털라이프코리아 인터넷 사업본부장 2000년~현재 디지털라이프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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