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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대기업 전자상거래 브레이크
[포커스] 대기업 전자상거래 브레이크
  • 김상범 기자
  • 승인 2001.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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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SK·LG정유 합작사 ‘오일체인’ 조사… 온라인 거래 첫 판정 이목집중
대기업의 전자상거래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래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건전한 거래방식으로 여겨졌던 전자상거래 시장에 독점을 통한 불공정 경쟁의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논란의 주인공은 석유 e마켓플레이스인 오일체인www.oilchain.com . 국내 대형 정유업체가 참여해 설립한 오일체인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즉 독점에 의한 불공정 거래의 가능성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정위가 오일체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일체인의 양대 주주사가 국내 정유시장의 60%를 점하고 있는 SK(주)와 LG칼텍스정유라는 점 때문이다.
석유 전자상거래 시장에는 이미 한국석유전자상거래소www.oilpex.com , 코러스닷컴www.yesoil.com 등 10여개 온라인 업체들이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인데, SK와 LG정유가 직접 뛰어든다면 경쟁은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상거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오프라인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섣불리 독점 가능성만으로 대기업의 전자상거래 진출을 막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 오일체인에 대한 심사 결과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독점 여부 판정에 대한 첫 사례여서 향후 전자상거래 미칠 파장이 크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일체인은 지난 3월15일 설립됐다.
애초 SK와 LG칼텍스정유, 현대정유가 공동 출자할 예정이었으나 현대정유가 막판에 지분출자를 유보하면서 SK와 LG칼텍스정유가 각각 20억원씩 출자했다.
3월 설립 당시에는 SK 단독으로 20억원을 출자했고, 한달 뒤 LG칼텍스정유가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역시 20억을 출자했다.
이밖에 전국 석유대리점, 정보통신 기업들의 지분까지 포함해 오일체인의 총 자본금은 52억5천만원으로 늘어났다.
문제의 시작은 LG칼텍스정유가 5월29일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하면서부터다.
기업결합 신고는 자본금 또는 연매출 1천억원 이상의 기업이 제3의 회사에 20% 이상 지분출자를 할 경우 출자 후 30일 이내에 공정위에 내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그런데 공정위가 LG칼텍스정유의 출자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즉 시장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공정위는 기업결합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SK텔레콤(011)과 신세기통신(017)의 합병에 대해 공정위가 양사 시장점유율 합계를 50% 이하로 낮추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일체인 “독점은 어불성설” 반발 7월5일 공정위는 오일체인 사무실을 기습적으로 찾아가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오일체인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기업결합 조사로서는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압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오일체인이나 LG칼텍스정유측은 공정위가 이미 독점 가능성을 인정하고 어떤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됐다.
LG칼텍스정유 홍보팀 남영일 팀장은 “아직 결과가 나온 상황이 아니어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비해 그와 관련된 대책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LG칼텍스정유는 물론 SK, 오일체인은 공정위의 우려가 지나친 ‘기우’라는 입장이다.
오일체인의 조은기 본부장은 “오일체인은 온라인에서 석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를 중개해주는 모델로 오프라인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다.
또 석유 전자상거래는 이제 막 시작한 시장인데 어떻게 독점 얘기가 나올 수 있는가”라고 강조한다.
SK 석유사업마케팅전략팀 김철 팀장도 “오일체인은 그동안 무자료 거래의 온상이었던 논브랜드(비상표) 상품 시장을 투명하게 이끌 수 있는 모델”이라며 “서비스를 시작도 안 했는데 불공정 거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서비스가 운영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든지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공정위의 입장은 다르다.
공정위 기업결합과 유희상 과장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은 기본적으로 별개일 수 없다”고 전제하고 “전자상거래 서비스가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전자상거래 시장을 한두 업체가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고 말한다.
유 과장은 또 “허용은 하되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과 허용자체를 검토해야 하는가를 다각도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정위의 우려에는 기존 석유 전자상거래 서비스 업체들의 강한 반발도 끼어 있다.
국내 석유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협의체인 석유전자상거래협의회는 최근 공정위에 낸 ‘석유전자상거래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건의’에서 “오일체인의 설립으로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정유사 중심의 거래형태가 재현되고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불공정거래의 소지가 적지 않은 오일체인의 위상과 향후 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에 관하여 심도있는 조사와 함께 이러한 불공정 요소를 미연에 근절시키는 현명한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이 건의서와 함께 총 7쪽에 이르는 ‘오일체인 불공정거래 예상 케이스’까지 만들어 공정위에 제출했다.
온라인 업체 입장에서 거대 공급사인 정유사가 직접적인 경쟁상대로 등장하게 된 데 대해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오일체인측은 비즈니스 모델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논브랜드 상품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전력의 업보인 듯 정유시장은 크게 두가지 상품이 유통된다.
브랜드 상품과 논브랜드 상품이 그것이다.
브랜드 상품이란 정유사가 자사와 독점 공급계약을 맺은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상품이다.
이와 달리 논브랜드 상품은 정유사가 브랜드 상품보다 싼 값에 유휴 물량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들이다.
이런 논브랜드 상품은 주로 중간상인들이 구매해 작은 석유상점같은 소매점이나 무폴주유소(정유업체 상표를 달지 않은 주유소)에 판매한다.
국내 석유소매시장 규모는 40조원 정도이며, 그 가운데 논브랜드 시장은 5조원 정도를 차지한다.
오일체인쪽은 논브랜드 상품은 무자료 거래도 많고 그 상품이 다시 브랜드 상품시장으로 흘러들어와 정상적인 유통질서를 흐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논브랜드 시장에서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정유사와 소매상을 직접 연결하는 모델이 자신들의 비즈니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비록 같은 모델이라 하더라도 실제 경쟁에서 온라인 업체들이 공급사 중심의 오일체인에 열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양측의 공박에 대해 명확하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법적 기준이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업결합으로 시장점유율이 해당 분야에서 1위가 되거나, 시장점유율 2위인 회사와의 차이가 시장 전체의 100분의 25% 이상이면 기업결합을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형성되지도 않은 시장에 시장 점유율이 나올 리 없다.
그러나 공정위의 시각처럼 온라인을 오프라인과 별개로 구분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또 어려워진다.
또 정유업계가 그동안 오프라인 시장에서 보여줬던 불공정 거래의 전력이 오일체인에 업보로 작용하는 측면도 많다.
오일체인을 둘러싼 공방은 이미 미국에서도 한차례 뜨거운 이슈가 된 바 있다.
지난해 미국의 자동차 빅3가 주축이 돼 설립한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코비신트’(Covisint)에 대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법 위반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1년여의 조사를 거친 후 FTC는 사업 초기단계에서 그 효과를 알 수 없고 내규가 없다는 점, 영업개시가 안 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 ‘아직 경쟁제한적 요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FTC는 ‘사건을 종결했을 뿐 그렇다고 경쟁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공공이익이 요구하면 좀더 심도있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오일체인은 8월1일 시범서비스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공정위의 최종 심사결과는 8월 말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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