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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시트콤] 치질
[건강시트콤] 치질
  • 이우석(자유기고가)
  • 승인 2000.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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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진실
새벽 3시. 공태만씨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공포에 질리거나 분노로 이글거리는 게 아니라 무욕의 경지에 오른 사람같이 한없이 멍하다.
그 눈이 열망하는 것은 오직 ‘잠’이었다.
철야 5일째.

앞으로 얼마나 더 작업을 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태에서 ‘철야’라는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한낮에 계속 일한다고 해서 ‘철주’(徹晝)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툴 개발이 생각보다 미진해, 개발팀은 휴가를 반납했다.

연구팀과 사업팀 사람들은 끝물에라도 휴가를 간다고 계획을 짜고 난리인데…. 공태만씨가 풀썩 떨어지고 만다.
야참시간에 족발을 시켜먹을 때, 기어이 소주 한병을 부어넣은 그다.
운전석에서 발견된 혈흔 다음날 오후. 공태만씨는 출근하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한재능 팀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안마시술소나 사우나에서 무릉도원을 여행하고 있을 테지.’ 도아랑씨는 입을 샐룩거린다.
하필이면 오늘처럼 일 많은 날에…. 일할 때는 칼같이 정확한 도아랑씨는 마냥 태평한 공태만씨가 영 마뜩찮다.
업무 파트너로는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결정적일 때 책임감을 내던져버리는 게 장기인 공태만씨. 늘 마무리는 도아랑씨 몫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체질적으로 못 견디는 남궁용씨가 정적을 깬다.
“어~ 동렬이도 없고, 어~태만이도 없고, 만두나 시켜 먹죠~!” 한재능 팀장과 도아랑씨는 어이없다는 표정. 송파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후 6시쯤이었다.
불법주차로 견인하다가 차에서 명함을 발견하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운전석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침 9시께 약간 뚱뚱한 남자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차에서 내려 골목길로 사라졌다고 한다.
차에는 부딪힌 흔적이 전혀 없고, 특별한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도아랑씨는 거의 울상이다.
“집에 연락해야 할까요?” 한재능 팀장의 얼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저녁까지는 기다려보지.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아는 데 있으면 연락 좀 해보고.” 남궁용씨도 한마디 거든다.
“피곤해서 코피를 흘린 건지도 모르죠. 좀 엉뚱한 분이라 일반적인 예상을 깨잖아요.” 아무도 불길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그러나 오늘 새벽 4시에 회사를 나간 공태만씨가 5시간 동안 무엇을 했으며, 지금까지 연락이 안되는 이유는? 그리고 집과 반대방향인 송파에 그 일찍부터 무엇을 하러 간 것일까? 피곤해 보이기는 했어도 멀쩡한 사람이 다리를 절었다는 것은 또 무슨 얘기인가? 아무래도 새벽 4시에서 아침 9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원래 불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공태만이 송파로 간 까닭은? 뜻밖의 곳에서 실마리가 드러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허운동 실장. 새벽 5시20분쯤, 공태만씨에게 전화를 걸어 서초동 꽃마을 테니스장에서 1시간 가량 함께 테니스를 치고, 근처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먹은 후, 8시 조금 못 되어 헤어졌는데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단다.
그렇다면 공태만씨는 퇴근하는 도중에 허운동 실장의 전화를 받고 서초동으로 간 게 틀림없다.
공태만씨가 원래 외박이 잦아서인지 집에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공태만씨는 왜 허운동 실장과 헤어진 후, 집이 있는 오류동 방면으로 가지 않고 송파 쪽으로 갔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고, 공태만씨가 핼쓱한 모습으로 나온다.
“저번에 오셨을 때 수술을 받으시지 그랬어요. 그래,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그동안 당혹스러운 일을 적잖이 겪으셨겠는데요. 한 3~4일 입원치료를 받으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수술 잘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오늘 밤에만 약간 아플 거예요.” 공태만씨의 눈에는 어느덧 송글송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전문가 진단:이렇게 하세요
숨기지 않는 게 1차 치료
하루 종일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직장인들은 여러 가지 신체이상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VDT(visual display terminal)증후군’ 이라고 한다.
특히 IT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일의 특성상,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기 때문에 더 심각할 수 있다.
보통 시력장애, 근육피로, 스트레스, 생식기능장애, 치질 등의 증상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공태만씨가 곤경에 빠진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내치핵(암치질)에 따른 장미꽃형 탈항’일 가능성이 짙다.
장미꽃 모양으로 항문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흔히 피가 밖으로 묻어 나오는 증상을 보인다.
치질은 출혈과 탈항이 주증상인 치핵, 항문직장농양이 곪아터진 치루,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등 항문에 생기는 질병을 통틀어 일컫는다.
특히 사회활동이 많은 35살에서 44살까지 발병률이 높다.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와 잘못된 식습관, 잘못된 배변 습관, 운동부족 등이 누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성별로 발병률을 보면, 치핵은 남녀가 52대 48로 비슷하지만, 치루는 86대 14로 남성의 발병률이 훨씬 높다.
반대로 치열은 39대 61로 여성의 발병률이 2배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여성에게 변비가 많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는 56대 44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남성이 청결하지 못했고 술, 자극적인 음식을 과도하게 즐겨 여성보다 치질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항문의 구조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약할 뿐만 아니라, 임신이나 출산으로 치질에 걸릴 위험성이 크다.
최근 치질에 대한 홍보가 많이 이뤄진 탓에 부끄러워 병원을 찾지 못하던 숨어 있던(?) 여성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치질은 치료받을 때 통증이 심하고, 수술을 해봤자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혼자서 감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문병원에서 치료나 수술을 받으면 치료과정도 힘들지 않고, 거의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술 후 3~5일 정도의 입원치료면 고생 끝이다.
배변할 때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정도의 가벼운 치질은 수술하지 않고 치핵 덩어리를 고무로 묶어 괴사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치질에 걸렸을 때는 공태만씨처럼 혼자서 끙끙 앓다 병을 키워 낭패를 보지 말고 즉시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잠깐! 매일 아침 배변 후에 따뜻한 물 좌욕은 기본! 이동근/한솔병원장, 대장항문전문의 www.hansol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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