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문화] 문화 웹진 '컬티즌'주최 사이버 논객6인좌담
[문화] 문화 웹진 '컬티즌'주최 사이버 논객6인좌담
  • 오철우
  • 승인 2000.08.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 “묻지마 인터넷”

인터넷 소문 제대로 읽는 감상법…최소한의 자기성찰과 규범 필요
서동진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그동안 인터넷에서 벌어진, 스캔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태들 때문입니다.
두어달 전 386세대 국회의원들이 광주에서 술판을 벌인 사건 이후 인터넷엔 갖가지 소문들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굳이 이 사건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소문이라고 부르기 딱 안성맞춤인 이런 말들이 통용되는 데에는 특별한 법칙이 있을 법합니다.
인터넷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언어가 소통되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오가는 소문의 언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말들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말의 진위를 묻고자 했던 우리의 습관은 이제 과거가 돼버린 것인가? 오늘 이런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김미경기자 생활을 해온 지난 11년 동안 저는 제 기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설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정중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었지, 막말로 항의하는 사람은 한번도 없었죠. 하지만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겨온 뒤부터 상황은 달라졌어요. 공개게시판에 올라오는 독자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가 됐죠. 오프라인 생활 11년 동안 들었던 것보다 온라인 생활 몇달 동안 들었던 욕이 아마 백배, 천배는 될 겁니다.
일요일에 토론방에서 장장 7시간 동안 싸움을 벌인 적도 있어요. 어찌 그리 꼬투리를 잘 잡아내는지, 어떻게 그동안 욕하고 싶은 걸 다 참고 있었을까 싶더군요. 정보 독점에 대한 익명의 견제가 엄청나다는 것을 비로소 경험하게 된 거죠.
  • 감상법1…온라인은 현실의 힘을 찾아 헤매고 있다 변정수94년 하이텔에서 한 정신나간 사람이 통신에서 암약하는 빨갱이를 색출해 안기부에 고발하겠다며 나선 적이 있었어요. 더 웃긴 건 정말로 안기부 사이트에 고발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당시 운동단체에서 일하던 제가 ‘피고발 1호’라는 영광을 안았지요. 물론 저는 컴퓨터통신 문화에 익숙했던 터라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직에 해가 되지 않게 잘 좀 하라’며 난리법석이더군요. 결과적으로 제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94년 당시에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통신 미디어의 속성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셈이죠.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말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암묵적 동의 말입니다.
    손동수제가 어느 사이트를 운영할 때 보니 게시판이 활성화하는 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게시판에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반박이 들어올 때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죠. 우리가 지금 궁금해하는 문제, 즉 ‘인터넷에도 분명 파워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왜 오프라인에서는 현실화하지 않을까’라는 것도 방금 말한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온라인의 힘이 현실화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이 바로 양적으로 늘어난 인터넷 인구들이 현실의 힘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최근 ‘MBC 최 기자 사건’의 경우 대중매체는 다루지 않았는데도 MBC 게시판이 폐쇄될 지경으로 네티즌이 몰려들고 있잖습니까. 결국 이 사건도 대중매체로 끌려나와 공론화될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온라인의 힘은 곧 ‘체화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감상법2…먼저 터트린 ‘선빵’이 여론을 주도한다 황인교얼마 전 회사에서 ‘인터넷에서 여론이 형성될 때 누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선빵이 잡는다’라는 것이었지요. 먼저 문제를 터트리고 그럴싸한 자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아무튼 그럴싸한 자료를 제시하기만 하면, 먼저 치고나왔다는 기득권 덕분에 이후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선빵’은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이고, 지금 알려진 내용의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인터넷 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동진인터넷에서 오가는 언어는 사적인 언어입니다.
    공적 언어의 책임을 요구하면 대부분 재빨리 책임을 회피하려고 드는데, 이건 공적인 장에서 이뤄지는 언어의 교환이나 게임에 끼고 싶지 않다는 암묵적 욕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 총선 때 총선연대가 벌였던 일에 대해 저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을 뽑는 문제를 사적인 경력 시비로 몰아붙여 우리가 80년대에 만들어놓은 정치적 상상력을 완전히 뿌리뽑아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총선연대라는 미증유의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비판적 정치를 80년대 이전으로 퇴행시키는 구실을 했습니다.
    총선연대 문제는 인터넷에서 보이는 언어의 행태와 매우 흡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감상법3…인터넷에는 성찰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가 변정수정치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듣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려면 상상력의 여지, 즉 성찰의 여지를 공백으로 남겨둬야 하는데 인터넷에서는 이 공백을 전혀 용납하지 않습니다.
    대신 속도에 대한 강박이 치고들어오지요. 속도의 강박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규정해버립니다.
    항상 즉답을 요구하면서 성찰의 여지를 봉쇄해버리는 것이지요. 김미경온라인에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저는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기사 쓰기와 달리 형식의 자유로움을 시도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사회쟁점이 오프라인보다 먼저 온라인에서 시작하는 요즘, 즉 사회여론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너무나 다양하게 열리는 상황에선 자신의 글에 책임질 줄 아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동진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은 마치 자기 존재, 인생, 인격, 체면 모두를 내걸고 덤벼드는 듯한 투입니다.
    인터넷의 언어는 왜 이렇게 뜨거울 수밖에 없을까요? 이런 ‘뜨거움’이 인터넷에서 성찰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입니다.
  • 감상법4…공·사의 언어가 섞여 인터넷은 뜨겁다 손동수예전에 저는 몇군데 웹진을 돌아다니면서 ‘개싸움’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처럼 내 글에 허점이 없는가 열심히 살펴보고, 퇴고하고, 남의 글을 열심히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의 글에는 공적 언어에 사적 언어가 얹혀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부정적인 것으로 지적받아야 마땅합니다.
    스스로 오버하거나 남들도 오버하도록 해 결국 쟁점 자체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터넷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는 인터넷이 오프라인 미디어가 만족시키지 못하는 빈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변정수저는 ‘군필자 가산점’ 문제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쟁점이 그렇게나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을 쓰는 사람의 대부분이 젊은층이기 때문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사람들이 받는 억압의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황인교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군필자 가산점 문제에 도화선을 당긴 것은 몇몇 사람들이 주요 사이트를 돌면서 게시판을 도배한 결과였습니다.
    김미경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군필자 가산점 문제나 최근 의약분업 문제를 놓고 볼 때 그 상황을 마치 게임즐기듯 즐기는 전문가 집단이 등장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 감상법5…‘잘난’ 소수의 여론몰이꾼을 조심하라 변정수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는 결국 ‘쪽수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소수인 자들, 약한 자들이 다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아무런 통제가 없기 때문에 언로가 개방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소수 의견은 봉쇄돼버릴 가능성이 짙습니다.
    군필자 가산점 문제 때 여성 사이트들이 초토화됐던 게 바로 대표적 예입니다.
    서동진인터넷 언어가 낳는 상황을 즐기는 전문가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일정한 능력과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 전문가군이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를 과장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요. 변정수깡패 같은 주류 입장이 점점 더 인터넷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주류 담론의 쓰레기장에 불과한 형국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침묵하는 다수들에게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인터넷에서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손동수그래도 인터넷에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류 매체를 대신해 또다른 ‘능력 있는 소수’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구든지 자기 언어로 얘기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될 수 있잖습니까. 서동진인터넷이라는 대안 미디어에서 언어가 어떤 모양을 갖춰나가야 하는지 우리가 미리 규범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군요.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