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e삼성 사업에서 손을 떼고 삼성전자 상무보로 들어갔다는 소식에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본의 e삼성은 잘 되고 있는데…. 그럴 리가요.” 8월말, 일본 도쿄에서 만난 인터넷 전문가들의 반응도 코노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초고속통신 사업을 취재하려면 e삼성재팬에 가보세요.” 벤처기업들이 모여 있어 ‘비트밸리’라고도 불리는 시부야. 그 한편에 e삼성재팬은 자리잡고 있다.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한국식 비빔밥집에는 끼니 때가 아닌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길을 안내한 e삼성재팬의 일본인 직원은 “싸고 맛있어서 나도 자주 들른다”고 약간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7층짜리 건물에는 e삼성재팬 외에도 아오하라, 게임온, 인터피아, 메디아게이트 등 e삼성재팬 계열사와 투자사들이 모여 있었다.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커피숍처럼 탁 트인 분위기의 1층 접객실에는 초밥을 캐릭터화한 인형들, PC방 체인 ‘네카’의 이미지 광고물 등 e삼성재팬 계열사들의 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e삼성재팬 김종신 이사는 그중에서도 계열사 인터피아가 벌이고 있는 ‘네카’가 e삼성재팬의 다른 인터넷 사업을 이끄는 핵심사업이라고 설명한다.
“네카는 한국의 일반적인 PC방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래서 넷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가보면 그 차이를 느낄 것이다.
” 그는 대뜸 네카 직영점 안내를 자청하면서 일어섰다.
네카 1호점은 e삼성재팬 건물에서 10여분 떨어진 시부야 중심가, 서울에 비교하면 동대문의 ‘밀리오레’ 같은 분위기의 건물 4층에 입주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어깨를 맞댄 채 사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시부야의 다른 건물들보다 눈에 띄게 많은 인파였다.
옷가게, 음식점 등 입주 상점들이 젊은이 취향에 맞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카가 있는 4층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80여대 컴퓨터가 놓인 100여평의 공간이 휑하게 느껴졌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게임을 즐기고 있는 세명과 노트북을 쓰고 있는 두명,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 다섯명 정도였다.
네카 직영점 정재욱 그룹장은 “지금 같은 저녁시간보다는 오후 11시를 넘긴 늦은 밤에 손님이 많다”고 설명했다.
1시간 이용료는 500엔. 맥도날드 햄거버가 하나에 60엔 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야간 할인시간대에는 6시간에 1500엔을 받는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직영점의 회원 수는 1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 그룹장은 “문을 연 지 9개월이 아직 안 된 상태에서 이 정도면 상당한 회원 수”라면서 “단골 고객을 꽤 많이 확보했다”고 자랑한다.
1만명 회원의 신상정보와 인터넷사용 정보는 e삼성재팬의 다른 사업들을 위한 고객 분석에 사용된다.
가령 한국의 PC방 이용자 중 70~80%가 게임을 하는 것과 달리, 네카 이용자들은 인터넷 서핑과 채팅 기능을 주로 사용한다.
게임 이용자는 15~20%밖에 안 된다.
김 이사는 이런 고객정보가 e삼성재팬의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네카 사업은 다른 연관사업들과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온라인 업체나 CRM 업체 사람들도 네카를 꼭 성공시키라고 말하더군요.” 그가 네카를 ‘넷스테이션’이라고 불러달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카에는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모델이 숨겨져 있다.
입구의 삼성 부스에선 삼성 노트북과 주변기기들을 홍보하고, 정 중앙의 100인치 스크린에선 뮤직비디오와 함께 네카가 수주한 광고들이 흘러나온다.
이곳은 매주 목요일 인터넷방송 ‘걸즈스테이션’의 공개녹화장이 된다.
다른 한 부스에는 전자현미경이 설치돼 있어 방학 중 학생들한테 교육공간을 제공한다.
한편엔 게이머들을 위해 두세평 남짓한 전략회의실을 마련해놨다.
네티즌을 위한 종합 문화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용자들이 이런 부수적 기능에 주목하거나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네카 단골고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국인 유학생 배영미(26)씨는 좋은 위치와 깔끔한 실내공간 때문에 네카를 애용한다고 말한다.
“약속시간 중간에 와서 쓸 수 있고, 공간이 넓어 공기도 좋다.
” 그는 네카의 다른 기능에 대해선 오히려 “그런 게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일본인 이용자(32)는 ‘개인적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네카를 찾는다고 했다.
“집에선 가족과 PC를 함께 써야 하고, PC 속도가 느려서 동영상도 볼 수 없다.
” 직업이 신문기자라는 그는 정보검색을 위해 인터넷을 자주 사용한다면서, 일본에서는 인터넷 카페가 많이 늘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정보는 휴대전화로 찾고,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왜 한국엔 PC방이 그렇게 많은 건가?” 네카가 손익분기점에 이르려면 하루 이용자 수를 200~300명에서 400~500명으로 늘려야 한다.
이것은 단지 네카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김 이사는 일본의 초고속통신 붐이 전체 인터넷 시장을 넓혀주길 바란다.
비빔밥, 김치, 불고기가 일본인들의 입맛을 바꾸고 그들을 사로잡았듯이 “네카가 일본 네티즌에게 초고속통신 서비스의 참맛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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