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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트렌드] 퇴직은 당당하고 멋지게 하자
[경제트렌드] 퇴직은 당당하고 멋지게 하자
  • IT팀 유춘희 기자
  • 승인 2001.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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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아는 K부장은 그리 예민한 성격이 아니다.
우스운 얘기를 해주면 같이 있던 사람 가운데 맨 나중에야 웃거나, 대체 무슨 얘기냐고 머리를 긁적거리기 일쑤다.
이렇게 둔탁한 K부장도 회사가 은밀히 보내온 무언의 메시지는 비교적 빨리 감지했다.
서너달 전부터 K부장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회사 경영진이 불만을 전달하는 횟수가 늘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회의에서 그를 제외시키기도 했다.
K부장은 “이제 내 보직도 마감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쪽에서 그에게 “그만 두라”고 하는 것으로 느낀 것이었다.
회사가 거듭된 투자에도 수익이 나지 않자 사람을 자르기로 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진 터였다.
K부장은 평소와 달리 재빨랐다.
그는 새 직장을 알아봤고, 결국 9월 초부터는 최근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출근하게 됐다.
K부장은 회사를 떠나면서 자신의 퇴직이 회사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료들에게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고, 단지 자신이 퇴직을 결심하기까지 경위를 덤덤하게 설명했다.
부하직원들에게는 자신의 퇴직 계획을 미리 알렸다.
이런 그의 태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퇴직이 가져올 수 있는 조직의 혼란을 막는 데는 물론, 그 자신의 인간관계 유지에도 도움이 됐다.
그는 “모양새와 위엄을 지키면서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게 된 건 오히려 성공이다.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길 뻔한 위기를 잘 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K부장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의 장기화, 잦아진 기업합병 등으로 요즘 지위가 불안한 중간관리자들이 많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우 중간관리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4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사회, 특히 IT 업계는 의외로 좁기 때문에, 퇴직할 때 떳떳하고 명예롭게 처신하지 않으면 재취업이 어렵다.
그래서 경력관리 전문가들은 퇴직에도 전략이 있고, 이직할 때 무리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한 다국적기업이 한국지사를 철수함에 따라 직장을 잃어버린 한 경영자는 퇴직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실업자 신세가 된 그는 아직까지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실수였다”고 말한다.
실직한 사실을 이곳저곳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자존심은 새 직장 구하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뜻과 달리 퇴직을 강요받았더라도 그동안 고락을 함께 한 동료나, 평소 자신을 못살게 굴던 상사에게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 좁은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자신이 누구에게 언제 어떤 도움을 청하게 될지 모르고, 함께 일하던 부하직원이 미래에는 상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조조정의 바람 속에서는 퇴직을 멋지게 하는 것도 경력관리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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