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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속편' 구조조정, 3저에 웃고 3고에 울고
[포커스] '속편' 구조조정, 3저에 웃고 3고에 울고
  • 오형규(한국경제신문경제부)
  • 승인 2000.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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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50억으로 연말까지 단행할 계획…1단계 구조조정보다 내·외부 상황 더욱 열악해져
정부는 올해 안에 2단계 구조조정을 매듭짓기 위한 청사진을 최근 발표했다.
부실기업의 옥석을 가려내고 금융의 멍든 곳을 치료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금융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금융산업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앞으로 예상되는 실물경기의 하강국면에서 금융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재도약의 기반이 되게끔 하겠다는 게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후 3년째 구조조정을 하고도 또 구조조정이냐며 짜증을 내는 듯하다.
110조원의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모자라 5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한다는 데 대해 국민들이 ‘봉’이냐는 소리도 나온다.
그럼에도 구조조정 ‘속편’이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전편’이 뜨뜻미지근했던 탓이다.
올해 IMF 3년차를 맞아 정부는 미리 샴페인을 터트렸다.
지난 2월25일 김대중정부 출범 2주년 때 청와대부터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자축했다.
게다가 올 들어선 국가채무 논쟁, 총선, 남북 경제협력 등의 현안에 밀려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은 구조조정으로 회생하는 데 대체로 5∼10년씩 걸렸다.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은 한국인의 급한 성질을 반영하듯 너무 조급히 서둘렀다.
무려 100조원에 이르는 대우그룹 부실을 덮어둔 채 숙제를 끝낸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경제의 한귀퉁이가 좀먹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과 경제를 도외시한 채 정쟁만 거듭하고 있다.
겉만 봉합한 1단계 구조조정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1단계 구조조정은 ‘퇴출’ ‘합병’ ‘매각’ ‘감원’ 등의 용어로 요약된다.
병든 기업과 금융기관을 솎아내고 공적자금으로 부실을 메웠다.
뒤처진 생산성을 인력감축과 환율로 만회했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경쟁력이 회복된 게 아닌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구조조정의 양적 성과는 인정해줄 만하다.
10개 은행이 퇴출 또는 합병되는 등 줄잡아 300여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다.
55개 부실기업이 퇴출됐고 준부도상태인 78개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은행원은 3명 중 1명꼴인 약 4만명이 감원됐고, 70, 80개에 이르던 삼성 현대 등 거대 그룹의 계열사가 30개 안팎으로 줄었다.
제도면에서도 외견상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됐다.
재벌 계열사간 상호 빚보증이 금지돼 선단식 경영이 어렵게 됐고 소액주주 대표소송,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등 기업주의 전횡을 견제할 장치도 마련됐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8시간짜리 주주총회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종합주가지수는 200포인트대에서 1000포인트까지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사상누각인 구조조정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지수가 600포인트선으로 미끄러진 게 이를 입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그룹이다.
빚으로 빚을 얻어 지탱해온 대우는 지급보증이 금지되고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가 강화되면서 숨겨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은행들은 수십조의 공적자금을 받고도 다시 부실해져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종금사들은 환란 전 30개에서 현재 5개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생보업계 3위였던 대한생명, 투신업계의 원조격인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랭킹 1위 증권사였던 대우증권 등이 줄줄이 국영화됐다.
기업 쪽에서도 소위 ‘강시’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닐 만큼 제대로 된 게 없다.
정상화 가능성이 희박한 워크아웃, 법정관리 기업들이 은행돈을 받아 연명하면서 공적자금은 밑빠진 독이 돼버렸다.
1차 구조조정 결과는 대부분 문제를 덮어두거나 겉만 봉합한 것이지 해결한 것이 아니다.
잘못 봉합한 솔기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따라서 더이상 구조조정을 미뤄선 아무것도 안 된다는 데 국내외 전문가들이나 정부가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구조조정이 미진해 기업과 금융기관의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한 주가 상승도, 경제 활성화도, 새 성장엔진이라는 IT(정보기술) 산업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2단계 구조조정 청사진’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의 구체 일정을 제시한, 말 그대로 청사진이다.
청사진은 집을 지을 때 바탕이 되는 그림일 뿐 진짜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단계 구조조정, 1단계보다 더 어려울 것 정부는 그동안 개혁 드라이브를 걸려 해도 돈이 없어 못했다.
공적자금이 바닥난 탓이다.
뒤늦게나마 50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키로 했다.
‘실탄’을 다시 장전하고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일정대로만 되면 연말께 구조조정의 큰 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우선 국회 공전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는 데 필수적인 금융지주회사법, 기업구조조정회사법 등이 석달째 낮잠을 자고 있다.
공적자금 추가조성도 조속히 국회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해를 넘기게 된다.
한빛, 외환 등 7개 비우량은행의 구조조정도 연내 3천명의 감원을 예고한다.
노조의 반발이 클 것이다.
부실한 보험 증권 투신 종금 등을 처리하는 것도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당장 대우자동차를 팔지 못하면 대우 12개 계열사의 워크아웃 구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상환한 데는 ‘3저효과’(저금리 저환율 저유가)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러나 경제여건은 거꾸로 ‘3고’(고금리 고환율 고유가) 조짐을 보인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조달금리가 1, 2% 포인트만 상승해도 대다수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주변 상황이 나빠질수록 구조조정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2단계 구조조정은 1단계보다 한결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2단계 구조조정 “생사의 명암을 확실히 가리겠다”
정부의 2단계 구조조정 청사진은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질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실기업의 옥석을 가려 살릴 곳은 확실히 살리고 퇴출시킬 곳은 빨리 정리시키겠다는 것이다.
보험 종금 상호신용금고 등 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겉으론 멀쩡한데 속으로 곪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끝내 부도가 나 은행에 부실을 떠안기는 악순환을 차단시킨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는 10월 중 은행들로 하여금 부실징후가 있는 대기업을 솎아낸다.
60대 주채무계열을 대상으로 신용위험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간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인 대우 12개 계열사는 10월 말까지 처리방향이 정해지고, 나머지 32개 워크아웃 기업도 11월 중 생사여부를 판가름한다.
금융부문에선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거나 공적자금이 들 어간 6개 은행을 대상으로 10월 중 경영평가를 실시해 독자생존 여부를 가린다.
이때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판정받으면 공적자금을 받고 정부의 금융지주회사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공적자금의 대가로 행장 등 경영진은 책임추궁을 피할 수 없다.
비교적 우량하다는 국민 주택 등 5개 은행은 스스로 합병이나 지주회사로 통합을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17개인 은행숫자가 연말께 몇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금융권에 대한 수술도 앞당겨진다.
보험권에선 지급여력비율이 100% 미만인 10개 보험사가 우선 평가대상이다.
지급여력비율이란 은행의 BIS비율처럼 보험사의 건강을 재는 지표다.
이들은 자구노력 정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
증권 투신사들은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반년마다 건전성을 평가해 퇴출대상을 골라내게 된다.
종금사들은 영업정지된 3개 종금사에 공적자금을 넣어 국영화한 뒤 매각이나 정부의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된다.
상호신용금고도 BIS 비율이 4% 미만인 곳은 정리대상이다.
신용협동조합도 부실해진 곳은 인근 우량한 신협에 합병이 추진된다.
이런 모든 작업은 그 시한이 올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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