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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내가 아닌 ‘또다른 나’
[테크놀로지] 내가 아닌 ‘또다른 나’
  •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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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유전자 같아도 동일 개체로 보긴 어려워… “단세포 단계로 퇴행” 비판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간복제 문제는 한국에서도 시끄럽다.
미국에서 인간복제를 시도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킨 미국 생명복제 전문회사 클로나이드의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가 곧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복제가 금지된 미국 대신 한국에서 복제 가능성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란다.
클로나이드는 이미 한국인 대리모도 공개했다.
그러나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대가 워낙 거세, 인간복제를 놓고 두 진영 사이에 한바탕 격전이 예상된다.
인간복제란 유전자가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지는 수정란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인간복제는 한사람의 체세포에 있는 핵을 떼어낸 뒤, 이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넣어 인공의 수정란을 우선 만든다.
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켜 기르면 애초 체세포를 떼어낸 인간과 유전자가 똑같은 아기가 탄생한다.
인간복제는 가치판단을 제쳐놓는다면, 그 자체로 ‘과학의 경이’다.
복제기술을 잘 활용하면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인간복제는 각광을 받고 있다.
복제된 수정란이 자라난 배아에서 몸의 모든 기관으로 발달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떼어내 원하는 기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해 병을 치료할 때 환자의 몸에 잘 맞는 골수를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인간복제 기술을 이용하면 몸에 거부 반응이 없는 ‘완벽한’ 골수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독재자나 재력가들이 복제인간을 만든 뒤 젊은 장기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늙은 장기와 바꿔 건강을 되찾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복제를 가로막을 수 있는 기술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1998년 영국의 이언 윌머트 박사가 복제양 돌리를 만든 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물 복제에 성공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인간이 동물보다 복제가 더 쉽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제 복제인간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달할 수 있는, 높지 않은 고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복제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환상을 갖고 있다.
복제를 하면 ‘나와 똑같은 인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복제는 과학적으로 말하면 유전자가 똑같게 되는 것인데, 이를 마치 똑같은 사람이 생겨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나를 복제한 복제인간은 분명히 나와 다르다.
복제인간을 만들려면 누군가의 유전자가 담겨진 핵을 난자에 넣어 수정란을 만들어야 한다.
복제 세포는 원래 세포와 유전자는 같지만, 나머지 부분(난자)은 모두 다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분명 유전자이지만, 나머지 부분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카오스 이론처럼, 작은 차이가 뒤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좀더 근원적인 문제도 있다.
인간은 유전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복제했다고 치자. 당연히 운동신경은 좋겠지만 조던처럼 위대한 농구선수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던은 고교시절 하루에 1천개가 넘는 슛 연습을 했다.
복제인간은 과연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까. 또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라는 엄청난 중압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마이클 조던의 복제인간은 마약중독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복제인간이 사회윤리적 문제이지, 과학적으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복제는 유전자변형식품(GMO)처럼 건강에 위험을 주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이산화탄소처럼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는 로봇은 언젠가 인간을 공격할지 모르지만 복제인간은 그저 보통 인간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연에서 단세포 생물은 모두 복제를 통해 태어난다.
단세포 동물의 복제 과정에서는 원래 생물이 둘로 나뉘어지고, 그 둘은 유전적으로 같다.
단세포 동물이 다세포 동물로 진화하면서 복제 대신 수정이라는 방법으로 수가 늘어난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다시 ‘복제’라는 생식방법을 손에 넣었다.
인간이 복제를 통해 자손을 만든다면 그것은 새로운 생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세포 동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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