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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트렌드] 낚시꾼과 택시요금
[경제트렌드] 낚시꾼과 택시요금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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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낚시 재미에 푹 빠져든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말이 재미있다.
물고기의 기억력은 채 2초가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끌려 올라가는 걸 보고 후다닥 달아나면서도, 곧바로 돌아서서 다른 지렁이에 입질을 해대는 게 물고기란다.
이런 물고기의 ‘아둔함’ 덕분에 낚시꾼은 짜릿한 손맛과 싱싱한 횟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며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 9월1일 서울지역 택시요금이 25.28% 인상됐다.
취지는 그럴 듯했다.
요금을 올려, 아직까지 대중교통 성격이 강한 택시를 고급 교통수단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교통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동시에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택시 업계를 구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사려 깊은’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택시요금 인상을 찬성한 쪽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상안이 발표될 때부터 택시운수 노동조합과 시민들은 저마다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들은 요금 인상에 따른 가계 부담 증가와 서비스 개선 없는 요금 인상의 부당함을 내세워 불만을 표시했다.
택시 기사들은 처우 개선이 없는 인상안은 오히려 사납금 부담만 가중시킨다며 요금 인상에 따른 불이익을 호소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3년 전인 1998년 2월 일반택시의 기본요금이 인상될 때도 똑같은 얘기들이 오갔다.
정부는 ‘택시의 고급화’를 외치며 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미처 미터기를 구하지 못한 택시 기사들이 부랴부랴 요금 조견표를 구하러 뛰어다닌 것이나, 승객과 기사 사이에 빚어지는 요금 실랑이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번 요금 인상 폭이 물가 상승 폭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택시 업계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서비스 개선은 월급제 시행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택시 기사의 주장과, 합승이나 승객 골라 태우기 등 택시 기사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는 승객들의 입장도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아무런 대책 없이 3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미끼’를 써서 입질을 기대하는 낚시꾼의 태도다.
아마도 정부는 낚시꾼의 생각이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물고기들이 돌아서서 곧바로 다른 먹이를 덥석 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힘 없는 먹잇감들은 체념을 하고 또다시 입질을 해야 할지 모른다.
택시 외에 야간에 달리 기댈 만한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1분도 아까운 출근길에 여기저기 주택가를 모두 돌아가는 마을버스 대신, 여전히 조금 더 웃돈을 주고 택시를 탈지도 모른다.
아이를 등에 업고 장바구니를 든 채 버스 안에서 춤을 춰야 하는 주부들도 할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고기들처럼 속아넘어가지만은 않는다.
불편함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차라리 ‘자가용’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자가용 구입이라는 행동으로 정부의 교통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갈수록 숨막히는 교통체증에는 정부의 안이한 낚시꾼 정신이 한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의 공언대로 택시요금 인상을 통해 교통문제가 해결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정부가 정말로 택시의 고급화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대중교통 수단 확충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교통정책은 아둔하다고 생각했던 물고기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에 밀려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정부 정책은 자꾸만 낚싯대 하나와 지렁이를 믿고 포인트에 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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