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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쟁력 논란 불지핀 구제역 파동
[영국] 경쟁력 논란 불지핀 구제역 파동
  • 런던=김정원 통신원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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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목축농 지원책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관광업 등 새 수익원 개발 필요 올해 상반기는 영국 농민들에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의 세월이었다.
구제역이 지난 2월20일 영국 중북부의 노섬벌랜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돼 4월을 정점으로 그야말로 ‘창궐’을 하면서 하루 평균 50군데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토니 블레어 총리는 3월로 잡아놓았던 총선일을 6월로 연기할 정도였다.
총선 이후 6월말부터 그 확산 속도가 점차 줄어들면서 7월에는 새로 보고된 구제역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내렸던 구제역 발병 농가지역 폐쇄조처를 7월말부터 완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기 관광지역들은 그동안 구제역 발병 지역에 대거 포함되는 바람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는데, 영국 정부는 7월말 이후 다소 구제역 재발 여지가 남아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해제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문제가 터졌다.
7~8월 두달간 잠잠하던 구제역이 8월26일에 새로운 발병 사례가 보고되면서 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구제역의 타격에서 몸을 추스르기 시작한 영국 농가는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2월20일 이후 8월말까지 총 1989건의 발병 사례가 발견돼 가축 377만마리가 이미 도축되고 1만8천마리가 도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구제역으로 인한 도축으로 영국에서는 약 11억파운드어치에 해당하는 가축이 처분됐고, 영국 농가는 유럽의 영국산 육류 수입 금지로 약 4억파운드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영국 정부는 23억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상금을 피해 농가에 지급하면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한 강제적 도축을 집행했다.
피해지역 출입금지로 관광업 타격 구제역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은 목축 농가뿐만이 아니다.
관광업도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가 국민에게 걷은 세금으로 농가에만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지급한 것을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비난의 초점은 우선 엄청난 돈을 보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목축 농가에 쏟아붓는 보상비용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특히 목축 농가들의 이웃인 지방 영세 관광업 종사자들이 정부 지원 보상금 규모에 비난의 목소리를 가장 높인다.
영국 농촌지역의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은 목축업과 관광업이다.
영국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목축업은 2%인 데 비해 농촌지역 관광업이 3%로 오히려 더 높다.
농촌지역 관광업은 연간수익이 120억파운드에 이르고, 영국 노동인구의 7%에 해당하는 28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농촌지역 관광업 종사자들은 정부가 구제역을 막기 위해 출입차단 조처를 취하는 바람에 호텔과 식당, 점포들의 영업 중단이 불가피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구제역 발생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는 바람에 영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됐고, 이 때문에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어 농촌뿐 아니라 도시지역의 관광업에까지 피해가 확산됐다.
영국의 민간 경제연구소인 이코노믹앤드비즈니스리서치센터(CEBR)에 따르면, 구제역으로 영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약 90억파운드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64억파운드의 손실이 관광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추정했다.
영국 언론사들은 최근 정부의 목축 농가 보상금 지급정책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책은 아닌지, 정부의 지원금이 없으면 목축업이 도저히 자립할 수 없는 건지, 훨씬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지 등이 시비의 초점이다.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피해농가 지원에 적용한 보상금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식음료의 자급자족을 위해 채택한 ‘일반농경정책’(CAP)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목적은 이미 70년대 중반에 달성됐고, 그 이후에는 목축 농가들의 생산이 과잉상태로 전환돼 지금은 목축업 종사자들의 30% 정도가 잉여생산을 하고 있다는 게 영국 농경제학자들의 진단이라는 것이다.
일부 농가, 새로운 수익원 찾아나서 아울러 이번 구제역 파동은 물론 지난해 광우병 파동과 80년대에 있었던 살모넬라균 파동 등을 보면, 영국 농가의 비극은 농가 스스로 키워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즉, 영국 농가는 다른 유럽지역 농가에 비해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질이 떨어지는 육류를 생산해왔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전염병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가 경제적 손실을 메워주면 영국 농가들은 더 안일한 자세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정부의 농가 지원정책은 영국이 앞으로 또다시 가축 전염병 파동의 진원지가 되도록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발빠른 일부 농가들은 영국의 농업, 목축업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유기농 관련 농산물을 재배하는 등 고수익 아이템을 찾아 수익을 높이고 있다.
또한 재배하는 농산물과 육류에 대해 원산지 농장의 이름과 주소를 상품에 기록하는 식으로 소비자를 안심시키고, 농장의 고유 브랜드화도 꾀하고 있다.
농가의 위생 상태를 의심하고 있는 소비자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조처다.
일부 농부들은 사업을 아예 관광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농장을 자연체험 농장이나 휴양지로 개조하기도 한다.
현재 영국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중 산업화한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는 비율은 72%에 이른다.
이런 대규모 농장에 속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서지도 않는 영세 농가들에 쏟아지는 눈총은 따갑다.
이들은 목축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보상금을 지급받는 것으로 연명하면서 국민 세금을 축내는 주범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심지어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영국 목축업을 이대로 유지해 나가는 게 과연 필요한 것이냐, 그보다는 훨씬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을 농촌지역의 주된 산업으로 육성하는 게 더 나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구제역 파동은 이처럼 영국 농촌지역 산업구조의 개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자랑이었던 신토불이 보상금 지원정책도 이제 시장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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