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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가을철 취업 ‘좁디 좁은 문’
[특집] 가을철 취업 ‘좁디 좁은 문’
  • 김경호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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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21·인크루트, 160개 기업 공동 설문조사… 지난해보다 20~30% 줄듯
영국의 유명한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취업희망자에게는 올해 하반기도 잔인한 시간이다.
아니, 엘리엇의 4월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1997~98년 IMF 사태 이후 최악의 실업난이 예상된다는 비관 섞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의 취업문은 어느 해보다 좁아 보인다.
신입사원을 뽑으려는 기업은 크게 줄고 대규모 공개채용을 하겠다는 기업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원이 생길 경우에만 충원하겠다는 기업이 많아져 전반적으로 채용규모가 크게 준 상태다.

DOT21과 인터넷 채용정보 회사인 인크루트www.incruit.com 는 지난 8월16일부터 9월6일까지 매출액 500억원대 이상의 중견·대기업 160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계획을 조사했다.
조사기업 중 매출규모가 500억원 이상인 업체는 109개사로 68%이며, 매출액 2천억원 이상인 업체는 59개사로 36.9%다.
조사대상 업체를 기업형태별로 살펴보면 중소기업(84개사)이 52.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대기업 45개사(28%), 외국계 기업 22개사(13.8%), 벤처기업 9개사(5.6%)순이었다.
조사결과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20~30% 채용인력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반기 채용인원보다도 무려 41.6%나 채용규모가 작아졌다.
하반기 취업난이 예상대로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난 것이다.
아직 채용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들도 10개 중 8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기업들이 하반기 경기전망을 불투명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반기 채용의 특징은 대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기업들은 정규직 사원보다 비교적 감원이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공개채용보다 수시채용을 선호하고 있으며, 취업의 상당부분을 소화해냈던 정보기술(IT) 업계가 세계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취업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비정규직·수시채용 선호 올해 하반기 취업은 비정규직 채용이 전체 채용규모의 60%나 차지할 전망이다.
대졸 취업자 가운데 정규직 채용인원이 10명 중 4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정규직을 희망하는 대졸자가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취업 경쟁률이 얼마나 높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더욱이 조사업체의 77.5%인 124개사가 채용계획은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나마 채용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힌 36개사(22.5%)마저 채용규모를 크게 줄였다.
상반기(9678명)보다 41.55% 감소한 4022명만을 채용할 예정인 것이다.
그나마도 채용예정 인원 중 비정규직 2423명(60.2%)을 제외하면 정규직 채용은 고작 1599명(39.8%)에 그칠 것으로 보여, 올해 하반기 취업문은 빗장이 단단히 걸렸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특히 대졸여성의 취업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졸여성의 신입채용 비율이 전체 채용인원의 30% 미만인 업체가 78.8%에 이르렀다.
대졸 여성 채용비율이 10% 미만인 업체는 42.5%(68개사), 10~30%인 업체는 36.25%(58개사)다.
또한 대졸 여성 채용비율이 30~50%인 업체는 10.63%(17개사)이며, 50% 이상인 업체는 고작 17개사에 그쳤다.
여성 취업희망자들은 마치 당첨될 수 없는 복권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채용시기는 9월 43개사, 10월 41개사, 11월 40개사 등이다.
9~10월 사이에 채용계획을 잡은 기업 수가 월별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채용이 몰렸던 예년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현상은 인터넷 채용 사이트를 통해 간편하게 수시로 필요 인력을 조달하는 수시 채용문화가 기업들에게 자리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채용형태별로는 ‘수시로 채용하겠다’는 업체가 77개사로 48%를 차지했고, ‘공개채용과 수시채용을 병행하겠다’는 업체는 66개사로 41.25%였다.
이에 비해 ‘공개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은 10.6%에 지나지 않아, 공채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채용할 수 있는 수시 채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수시채용’이란 말은 결원이 생기면 보충하겠다는 뜻이어서, 사실상 채용계획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 인쿠르트쪽의 설명이다.
유통·조선업종이 구세주 상황이 이렇다고 취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라 해도 틈새는 분명 있는 법이다.
하반기 모든 업체가 앓는 소리를 해도, 불황 속에서 호황을 누리는 업체도 찾아보면 없지 않다.
하반기 취업을 하기 위해선 유통과 조선업체의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려보는 것이 좋겠다.
유통과 서비스 업종은 대형 할인점 등을 새로 개점할 예정이어서, 신규인력 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유통분야가 취업 구세주가 될 확률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조사되지 못한 인원을 감안하면 유통분야에는 대략 3천여명까지의 채용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대졸 신입사원 외에 경력직 사원과 파트타임 근무자도 포함된 수치다.
업체별 채용규모는 신세계가 가장 많고, 현대와 롯데도 다른 업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인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조선업계도 인재 채용에 양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상황이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조선업체들은 현재 대부분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일손이 매우 부족하다.
연수를 받고 자격증을 따면 거의 100% 취업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하반기 수시채용 형태로 200여명을 충원할 계획이고, 현대미포조선도 기술교육 연수생 50명을 선발하기 위한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하반기에 설계와 연구개발직 위주로 대졸 사원 70여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대기업 취업 기상도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경기전망과 일치하는 수준의 축소된 채용계획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LG그룹은 올해 하반기 LG전자 1500명을 비롯해 LG-EDS(300명).LG유통(120명) 등에서 2500~3000명을 채용한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1500)를 중심으로 2500명 가량을 선발하고, SK그룹은 800여명을 뽑을 계획이다.
중견기업의 취업 문은 대기업보다 좁다.
대기업보다 많지는 않지만 알짜 중소기업들도 가뭄에 콩나듯 신입채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진약품은 10월께 20~30명의 신입사원을 뽑고, 일동제약·대웅제약 등은 영업관리직 중심으로 수시채용을 할 예정이다.
롯데리아는 60~80명, 신도리코는 50~60명, 빙그레는 30명 정도의 충원계획을 갖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기는 국내기업보다 몇배는 더 힘들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외국계 기업들은 수시채용을 하고 조건도 까다롭다.
그래도 외식업체들은 노려볼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마르쉐, 아웃백스테이크, 스타벅스 등은 170명까지도 채용할 계획이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올 하반기 대졸 취업희망자들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눈높이를 낮추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고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계·IT는 비관적 전자, 정보통신업계 하반기 채용계획을 보면 좌절감마저 들 정도다.
우리 경제의 큰 축을 담당했던 정보기술(IT) 업계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거의 빈사상태다.
상반기만 해도 국내 IT 업체들은 하반기 취업 규모를 늘릴 계획이었다.
상반기에 극심한 불황을 겪었지만 반도체 가격의 회복 등을 점치면서 경기가 나아지라는 낙관론 때문에 하반기 공격경영을 기치로 하반기 채용계획을 늘려잡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계적인 IT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대부분의 업체들이 애초 채용계획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채용계획 자체를 취소하고 있다.
국내 전자·통신서비스·장비·SI(시스템통합) 업체 50여곳은 연말까지 3200여명 안팎의 인력을 채용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같은 대기업 가전3사를 제외하면, 채용규모가 2천명에도 못미치는 최악의 취업난을 빚을 전망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해 한해 동안 2천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채용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LG전자 역시 채용규모를 계획보다 200명 가량 줄이기로 했다.
특히 IT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는 신입사원 모집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11월 중 신입사원 50명을 뽑을 예정이었던 삼보컴퓨터는 채용계획을 보류하고, 오히려 사무직 인력 일부를 감원할 계획이다.
LG-IBM·현주컴퓨터·주연테크 등도 하반기에는 신규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캠팩 등 외국계 IT 업체들도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신규인력을 뽑을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 하반기와 비슷한 수준인 20명, 최근 코스닥 공모를 마친 안철수연구소가 10명 미만을 충원할 뿐 대부분의 업체들이 채용 자체를 포기했다.
통신장비 업체와 서비스 업체들은 그나마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신입사원 채용이 가능한 분야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신규채용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한국통신이 150명 이상의 신입사원을 뽑을 예정이어서, 취업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SK텔레콤과 KTF·LG텔레콤도 신입사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또 중국 시장 진출로 활기를 찾고 있는 단말기 중견제조업체 팬택과 텔슨전자도 각각 50명, 120명씩 신규인력을 채용할 방침이다.
SI 업체는 채용규모를 줄이는 추세다.
현대정보통신이 올해 하반기에 가장 많은 500명을 뽑지만, LG-EDS는 애초 계획보다 200명 줄인 300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지난 상반기 800명을 모집했던 삼성SDS는 대규모 공채는 중단하고 결원시 수시채용만 할 예정이다.
IT 취업 준비생이 유의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IT기업들이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기시험은 거의 없고 서류심사와 면접 위주로 선발한다.
이 때문에 단순한 시험성적보다는 경력과 기술력 등을 우선으로 따진다.
또 기업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인력 풀(pool)을 마련해놓고, 결원이 생기면 여기에 등록한 사람들 가운데서 수시채용을 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올해 발표된 각종 취업 예상들을 접하다 보면, 취업 예비생들은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마치 다윗이 돌멩이 하나만을 들고 골리앗과 상대하는 느낌일 게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고, 취업박람회와 각종 취업행사장을 찾는 노력을 해나간다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사람에게 취업의 행운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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