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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이즈미 “국민 지갑을 열어라”
2. 고이즈미 “국민 지갑을 열어라”
  •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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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안 반대 목소리 점점 높아져 고심… 민간소비 확대 유도가 해법일 수도 지난 4월2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10년간의 장기불황에 지친 일본 국민들에게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약속하면서 개혁정권의 성격을 띠고 출범했다.
취임 초 지지율 80%를 웃도는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던 고이즈미 총리는 7월29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을 대승으로 이끌어 ‘고이즈미 인기’와 개혁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감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출범 두달 만인 지난 6월21일 개혁의 핵심 추진기관인 경제재정자문회의는 고이즈미 개혁의 기본방침인 7대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참의원 선거 뒤인 7월말부터는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향후 개혁 스케줄을 차례차례 발표하면서 2001년 말까지 개혁의 밑그림을 완성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업고 일견 순조롭게 출발한 듯 보이는 고이즈미의 항해는 이제부터 어려운 항로에 접어든다.
호소카와 정권과 하시모토 정권이 개혁에 실패했을 때처럼, 고이즈미 정권 앞에는 개혁에 대한 강한 저항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과연 고이즈미 총리는 독특한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개혁은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
개혁 방식·순서엔 국민들 이견 고이즈미 개혁안의 개요는 이렇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유산인 금융·재정 불안을 가능한 한 빨리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산업이 싹 트도록 유도해 국민들이 사회의 새로운 틀 안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
” 이를 위해 고이즈미는 정부 역할을 최대한 축소하고 시장원리를 도입해 민간의 활력을 끌어내겠다고 선언했다.
개혁안의 첫번째 타깃은 거품 경제의 유산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다.
정부는 2~3년 안에 부실채권을 청산하고 금융시스템을 건전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재정건전화를 위해선 우선 2002년도 국채 발행을 30조엔 이하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적 부문의 민영화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정부 예산을 10% 정도 삭감할 계획이다.
삭감된 재원은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갈 성장산업을 육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고이즈미 정권은 보험 기능을 개혁해 국민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공적 부문의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재정건전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일본 경제에서 공적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이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이 사회주의 경제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이런 공적 부문의 비효율성은 10년간의 장기불황과 맞물려 막대한 재정적자를 누적시켰고 민간의 활력을 저해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적 부문의 역할 축소와 함께 정책 프로세스도 개혁해 알기 쉬운 정치를 구현하고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경제개혁뿐 아니라 정치개혁도 뒤따라야 가능하다.
개혁과정에는 당연히 고통이 수반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대 총리와는 달리 국민들에게 1~2년간 고통을 참아달라고 호소했고, 고이즈미 정권 출범 당시만 해도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이에 높은 지지율로 호응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의 순항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도처에 널려 있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개혁의 방식이나 순서에 대해서까지는 아직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또한 국민들이 개혁의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긴 하지만, 개혁보다는 경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도 내비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국제금융계는 금융권 부실채권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대처를 매우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개혁에서 부실채권 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부실채권의 최종적인 처리 없이는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다는 것이다.
국제금융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부실채권을 2~3년 안에 처리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일본 정부의 위기의식 결여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장이라도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을 최종처리하라고 촉구한다.
경기부양 목소리로 개혁 주춤 일본 금융청이 2001년 3월말 현재 일본 금융기관 부실채권액을 43조4천억엔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부실채권의 실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실채권에 아직 포함되지 않은 회색 채권이 많고,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이것들이 점차 부실채권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증권사 골드만삭스는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액이 이미 170조엔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런 외국인들의 시각은 일본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일본 주가가 17년만의 최저치인 11000선 아래로 떨어진 건 IT 불황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 탓도 있지만, 부실채권 처리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투자자들이 일본 주식 팔기에 나선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
일본 정부가 부실채권 처리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없는 것은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최종처리하면 기업의 대량 도산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의 실업률은 최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인 5%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지라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가 실물경제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 경기의 침체, 세계적인 IT 불황으로 실물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부실채권 처리 부담까지 가중되면 일본 경제가 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내심 우려하고 있다.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개혁의지는 약해지고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고이즈미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눌려 잠잠했던 반대세력들이 점차 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2년도 국채발행을 30조엔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초심은 벌써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공투자와 같은 종래의 경기부양책은 실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침몰하고 있는 실물경제를 조금이라도 떠받치기 위해서는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공공투자 성격의 추경예산 편성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고이즈미 개혁에 반기를 들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2조엔 정도의 추경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논의가 가열될 조짐이다.
고이즈미 개혁안의 또하나의 큰 축은 새로운 성장부문에 대한 자원투입이다.
여기에서는 돈의 흐름을 바꾸어놓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흐르는 돈을 민간부문의 활력을 살리는 쪽으로 흐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역할 조정으로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정부는 보험기능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공적 보험보다는 사적 보험을 강화하고, 지적자산 증대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과학, IT, 환경, 나노기술, 재료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서비스부문 성장성은 여전히 견실해 고이즈미 개혁안을 부실채권 처리, 재정 건전화, 민영화와 같은 제도적인 측면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일본 국민의 생활이나 소비 패턴을 바꾸기 위한 개혁 프로그램도 상당히 담겨 있다.
일본 경제는 지금 수출이나 설비투자 감소로 침체되고 있긴 하지만, 내수인 서비스부문이 어느 정도 경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노무라총합연구소가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1% 이상으로 예측하는 이유도 서비스부문 성장의 견실성을 높이 평가한 탓이다.
실제로 도심의 고급 아파트나 신차 매매계약은 늘어나고 있고, 유럽의 고급 브랜드 제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시스템이 개혁된다면 1300조엔에 이르는 민간 금융자산은 얼마든지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고이즈미 개혁안 중 보험기능 강화, 생활 개혁, 지적자산 증대, 도전 지원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프로그램들이 성공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만약 일본 국민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주머니 끈을 풀 수 있다.
이는 난제로 여겨지는 재정건전화 방정식을 의외로 쉽게 풀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한 해답을 여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10년의 쓰라린 기억들

1990년대는 일본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었다.
80년대 고성장 시대에 폭등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90년대 초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거품 경제를 이끌던 유통, 부동산, 건설부문이 먼저 무너졌다.
폭등한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끌어다 사업을 확장한 기업들도 쓰러져갔다.
기업에 빌려주었다가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융권도 덩달아 부실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땅값과 주가는 오를 줄을 모른다.
5월 기준으로 일본의 전국 평균 공시지가는 주택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상업지는 7.5%가 각각 떨어졌다.
이는 90년 땅값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89년 12월29일 38915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도 계속 떨어져 지난주엔 17년 만에 11000엔선마저 무너져버렸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110조엔을 경기부양에 쏟아부었다.
우리돈 1200조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이다.
그러나 이 돈의 대부분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구태의연한 공공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오히려 늘어만 갔다.
증대된 정부예산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다 보니, 현재 국가채무는 일본 역사상 최대인 666조엔에 이르렀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30%나 되는 금액으로, 선진 7개국 중 최대 규모다.
장기불황의 어둠 속에서도 잠깐 햇빛이 난 적은 있었다.
10년 동안 일본은 작은 호황과 불황을 네번 정도 겪으면서 꾸준히 1%대의 성장을 지속했다.
지난해 중반 회복기미를 보였을 때는 일본은행은 경기회복에 자신감을 보이며 제로금리 정책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진짜 난항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그동안엔 건실한 제조업이 일본 경제의 버팀목이 돼왔지만, 최근엔 10년 불황으로 제조업조차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는 일본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이 2배 이상으로 한국 기업들보다도 채무상환 능력이 좋은 상태이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불황이 10년만 더 지속되면 일본인들은 생활수준의 퇴보를 겪을 수도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이경숙 기자 nirvana@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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