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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들의e혁명] ② 엘지
[공룡들의e혁명] ② 엘지
  • 이원재
  • 승인 2000.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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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다지고 밖은 키우고
B2B 활성화로 생산 가치사슬 효율화…무선인터넷으로 외형 불리기도
LG화학 테크센터 특수수지팀 한갑동(28)씨는 사무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한씨가 맡은 업무는 MBS(충격보강 플라스틱제품)의 기술 서비스. 회사에서 납품한 MBS 성능이나 결함에 대한 고객들의 문의를 해결해주고 원하는 것을 개발해주기도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하지만 입사한 지 1년이 갓 넘은 그에게 고객의 문의는 언제나 당혹감으로 다가온다.
MBS 종류만도 세분하면 수백가지에 이르고, 똑같은 제품이라도 납품업체마다 나타나는 현상이 가지각색이어서 대응의 경우의 수를 모두 합치면 수만가지는 될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전화를 놓고 옆자리 선배직원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없으면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을 직접 찾아나서 일일이 캐묻는 방법밖에 없다.
그마저 안되면 정말 난감해진다.
출장나가 서비스를 하게 되더라도 꼭 선배 한명을 대동(?)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이런 일이 몇년 동안 계속될 일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신입도 경력처럼” 노하우 공유시스템 그러던 것이 10월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각 제품마다 일어날 수 있는 특성과 결함의 경우의 수를 모두 한 데이터베이스로 집합시킨 지식경영(KM)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기술서비스를 담당하는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한씨는 더이상 선배직원들을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긴급상황이 일어났을 때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지난 상황들 가운데 지금의 경우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일은 거의 끝난다.
직원들의 머릿속에 흩어져 들어 있던 지식을 한군데 모아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자는 것이다.
LG화학 CKO 김종팔(46) 부사장은 “지식과 경험이 가장 중요한 기술서비스 분야에서 이전까지는 담당직원의 개인적인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식공유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면 담당직원의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보다 회사에 쌓인 경험 전체가 얼마나 되는지가 서비스 질을 좌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LG화학 지식공유시스템은 LG의 e비즈니스 혁명의 한축인 ‘내실 다지기’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핵심은 ‘가치사슬의 재구성.’ 기존의 원재료→구매→가공·생산→판매→사후관리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단계를 대폭 축소하고 과정을 효율화하는 도구로 인터넷과 전산을 사용하겠다는 얘기다.
LG 구본무 회장은 최근 그룹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LG의 혁신활동은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여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가치사슬을 재구성할 수 있는 혁신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을 통한 가치사슬 재구성 작업 가운데 가장 먼저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원자재 구매분야다.
LG화학의 경우 벌써 인터넷 구매비중이 연간 구매규모인 2조원 가운데 약 40%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8월에 인터넷 구매시스템을 연 것을 감안하면 가파른 속도의 성장이다.
원자재구매 인터넷화 성큼성큼 구매의 인터넷화는 필연적으로 구매단가를 줄인다.
우선 중간딜러가 끼여들 여지가 사라지고 서류작업·방문상담 등의 과정이 생략된다.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구매정보가 투명화·표준화된다는 것도 단가 인하에 큰몫을 한다.
LG화학이 어떤 제품이 언제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알리므로 주요 공급업체들이 생산규모나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재고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LG화학은 전자입찰을 통한 구매의 경우 최고 15%까지 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구매금액의 3%를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생산시설 하나 늘리지 않고도 순이익 규모를 600억원까지 증가시킬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전자구매에서라면 LG전자도 지고 싶지 않다.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양산용 자재를 구매하는 인터넷구매시스템(IPS)을 구축한 LG전자는 부품제조업체 파악 및 평가, 견적 입수, 분석, 업체 선정, 인증계약에 이르는 구매 전과정을 인터넷에서 진행한다.
여기에다 국내외 업체들을 함께 입찰에 참여시켜 경쟁을 높이면서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얻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8조원 규모의 양산용 자재와 부품을 인터넷을 통해 사들이면서 약 1500억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적인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대한 참여도 뒤따른다.
지난 8월 LG전자는 전자·통신·컴퓨터 분야 기업간 전자상거래를 위해 IBM, 마쓰시타, 모건스탠리 등이 합작설립한 공동법인 e2open.com에 출자했다.
LG정유는 화학분야의 국제적인 B2B 사이트인 켐크로스닷컴에 투자하고 설립에 참여했다.
첨단산업으로 권토중래 꿈 이런 움직임들이 인터넷과 디지털화를 통한 ‘내실 다지기’전략이라면, LG가 벌이고 있는 e혁명의 또다른 축은 정보통신·무선인터넷 등 첨단분야로의 확장을 통한 ‘외형 불리기’ 전략이다.
우선 무선인터넷 쪽을 보면 LG텔레콤을 앞세운 LG는 인수합병을 거쳐 정리된 현재의 3개 무선통신 서비스 사업자 가운데 가입자수를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뒤처져 있다.
그러나 차세대이동통신의 무선인터넷을 통해 ‘한판 뒤집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LG텔레콤 쪽 기대다.
정보통신부 자료를 보면, 8월 말 현재 LG텔레콤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352만명으로, 서비스별로 나눠볼 때 SK텔레콤(1116만명), 한국통신프리텔(488만명), 신세기통신(363만명)에 이어 4위 수준이다.
그러나 무선인터넷 가입자(WAP/ME방식)는 102만명으로 SK텔레콤(175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PCS폰 하나로 웹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유선인터넷에서는 통신망서비스 업체들보다는 콘텐츠 생산자들(포털사이트, 전자상거래 사이트 등)이 주도권을 잡고 시장을 앞서나갔지만, 무선인터넷에서는 이미 유선의 망사업자에 해당하는 통신서비스 업자들이 시장을 주도해 나가리라는 전망이 많다.
LG텔레콤은 이런 전망에 기대면서,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시장에까지 이런 여세를 몰고가 음성에서는 뒤졌지만 무선인터넷에서는 역전승을 거두겠다는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최근 LG정보통신과 합병한 LG전자는 이동통신이나 인터넷과는 또다른 차원에서의 e혁명을 통해 다가오는 무선인터넷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는 바로 냉장고에도 텔레비전에도 무선인터넷이 장착돼 대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정보가전 혁명’이다.
통신장비업체인 LG정보통신을 가전업체인 LG전자와 합병한 뜻도 이런 비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게 LG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LG전자에서 생산하는 통신장비 자체도 끊임없이 돈을 벌어다줄 것으로 LG는 기대하고 있다.
올해 초 계열사로 공식 편입한 데이콤, 14%의 지분을 확보하고 1대 주주로 있는 하나로통신 및 현재 SK, 포철 등과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는 파워콤은 이런 확장이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LG는 최근 LG전자와 LG화학이 지주회사 노릇을 하도록 그룹 지분구조를 재편성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본격적인 지주회사를 도입하기 전까지의 한시적인 체제라지만 이 역시 단순한 지분재편 작업이 아니라 정보통신·생명공학 등 첨단산업 중심의 ‘가치사슬 재구성’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론 LG의 디지털 항해에도 난관이 없을 리 없다.
유·무선통신이 통합되는 최근 추세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유선망 확보를 위해 벌이고 있는 파워콤 인수전에서는 SK나 포항제철에 기선을 제압당한 느낌이다.
1조5천억원 이상의 자본금 및 출연금 부담이 예상되는 IMT-2000 서비스가 어느 정도의 수익을 안겨다줄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당장 IMT-2000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던 LG전자의 비동기식 단말기도 표준논쟁이 미궁에 빠지면서 서비스 연기가 거론되면서 장밋빛 꿈도 잠시 접어야 될 판이다.
골드스타, 한걸음 한걸음 갈길은 간다 업계 관계자들은 LG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어떤 안갯속에서도 결국 갈길을 가는 LG의 경영스타일, ‘조용하지만 꾸준한 전진’을 주목하라는 평을 많이 내놓는다.
LG전자와 LG화학을 그룹의 몸통으로 삼겠다는 아이디어는 ‘골드스타’ 금성사와 락희화학이 주력부대이던 50년대 그룹 모습의 연장선이다.
공격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었고, 재벌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가운데서도 데이콤 인수에 결국 성공하는 등 원하는 사업들을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50년 동안 강산은 변했지만 LG는 변치 않고 ‘남이야 뭐라든, 제 갈길을 갔다’는 얘기다.
LG e혁명 누가 이끄나 LG의 디지털화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구본무(55) 회장이다. 끊임없이 인터넷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휘하 임직원들을 독려한다. 그리고 구 회장의 지침에 따라 주요 계열사에는 e비즈니스를 책임지는 임원들이 최소한 하나씩 포진해 있다. LG화학 지식경영책임자(CKO) 김종팔(46) 부사장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LG화학에 입사해, 회장실을 거쳐 96년 임원으로 승진하면서부터는 경영혁신 담당업무만 담당해온 ‘경영혁신통’이다. 업무 전체의 e비즈니스화를 추구하는 전산시스템인 지식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기업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다.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가 조직위계를 따라 수직으로 흐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게 평소의 소신이다. LG텔레콤 데이터사업부문 노세용(41) 상무는 신세대들의 감각을 일찍 읽어내 ‘무선인터넷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전광판에 PCS폰을 내장시켜 광고문구를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PCS폰 첫화면에 각종 캐릭터를 띄울 수 있는 서비스도 업계에서는 가장 먼저 내보였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LG전자를 거쳐 텔레콤으로 들어온 ‘전자통’이다. LG전자 업무혁신 담당 박홍진(51) 상무는 회사 안에서 ‘CⓔO’라 불리운다. LG-IBM 초대 CFO를 지내고 각종 인터넷 및 멀티미디어 관련 신사업을 책임진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LG의 e비즈니스 관련 최대 주력사인 LG전자의 e비즈니스전략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LG는 관련사업을 총괄하는 그룹의 핵심사업팀이 따로 없이, 계열사들이 대부분 LG전자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고 업계에 알려져 있다. 사이버트레이딩이 전체거래의 절반을 넘어가고 증권포털사이트인 ifLG.com을 여는 등 급격하게 인터넷기업화하고 있는 LG투자증권에서는 윤승현(49) 상무가 인터넷비즈니스 전략을 짜고 있다. LG홈쇼핑 최종삼(44) 상무는 회사를 텔레비전홈쇼핑 업체에서 B2C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종합전자상거래업체로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전산전문가인 LG-EDS 안규호(48) 상무는 그룹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LG건설 김성은 상무는 인터넷 불모지대로 여겨지던 건설분야에서 하청업체들과의 견적, 계약, 발주, 대금지불 등의 업무를 e비즈니스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LG의 e비즈니스를 이끄는 사람들. 왼쪽부터 구본무회장, 김종팔 화학 부사장, 노세용 텔레콤 상무, 박홍진 전자 상무, 윤승현 증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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