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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취업, 도전하는 자에게 영광을!
[직업] 취업, 도전하는 자에게 영광을!
  • 한정희
  • 승인 2001.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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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직장생활 만만치 않아.”
“그래도 사회생활 하는 놈은 너뿐이니까 네가 사야지.”
“그렇지, 막 제대한 불쌍한 내가 사랴.”
97년 군을 제대할 당시만 해도 양진호(28)씨는 취업에 대해 그다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직장 다니는 친구가 술 사는 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친구 사이인데, 뭐 어떠랴. 하지만 그런 술자리가 자주 반복되자 무작정 얻어먹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양씨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전문대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새롭게 4년제 대학에 입학한 터였다.
이미 전문대에 다녔던 친구들은 저마다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낙방과 좌절, 고난에 찬 백수생활 그가 4년제 대학에 다시 입학한 것도 사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전문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을 뿐이다.
누구를 만나든 주눅이 드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2학년 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 어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소련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소련과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짐작했다.
경희대 러시아어학과에 원서를 냈고, 운좋게 합격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 나이가 적지 않았던 그에게 군 입대 영장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3년이 훌쩍 지났다.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학부제가 도입된 뒤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졸업한 학과 선배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학교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도저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양씨는 아직 2학년이었지만 남들이 4학년 때나 느끼는 취업에 대한 걱정에 휩싸였다.
“자기 전공을 살리는 선배들이 없었어요. 뭘하며 살아야 될까 답답했죠.” 그런 무력감을 탈피하기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인중개사 시험이다.
일단 뭐라도 자격증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책을 사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몇달을 공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보기좋게 낙방했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만만한 자격증 시험에도 떨어졌어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어느샌가 친구들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집에서 부모님 눈치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되도록 부모님과 부딪치지 않을려고 했죠.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야 들어왔습니다.
” 양씨는 그런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뭐라도 하면 설마 이 상황보다는 나아지겠지….’ 그는 마지막 남은 오기를 발판으로 이번에는 경찰공무원에 도전하기로 했다.
경찰을 해야겠다는 특별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없었다.
아직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도 문제였지만 된다 하더라도 계속할 자신이 없었어요. 평생 경찰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는 공부를 계속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중도에 또다시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집에서조차 그를 내놓은 자식 취급했다.
취미로 배운 컴퓨터가 밥벌이 될까? 오랜 시간 방황할 때 그에게 한가지 위로가 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매킨토시였다.
컴퓨터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컴퓨터를 일찍부터 해왔던 것도 아니다.
단지 중학교 때 친적집에 있던 8비트짜리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뿐이고, 친구 형이 가지고 있었던 매킨토시 컴퓨터를 봤던 기억만 있었다.
그가 군을 제대했을 때 아버지는 제대 선물로 매킨토시를 사주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오래 전부터 아들이 갖고 싶어했던 것을 큰맘 먹고 사주신 거였다.
“그때 이왕 사주실 거면 매킨토시를 사달라고 했죠.” 그때는 막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97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매킨토시를 잘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컴퓨터 만지는 것 자체가 좋았다.
“PC는 기계같다고 생각했는데, 매킨토시는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콘도 귀엽고, 사람이 오면 응답도 하고.” 하루종일 방황하다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놓고 아무 생각없이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그는 불현듯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매킨토시를 좋아하고, 최소한 지겹지는 않다.
그렇다면 매킨토시와 관련된 일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웹디자이너에 도전해보겠다는 요량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꿈도 못꾸었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전공자가 아니니까, 일단 엄두가 나지 않잖아요? 그리고 디자인 감각도 없고요.”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양씨는 우연히 신문 한귀퉁이에서 컴퓨터 교육에 관한 공고를 보게 됐다.
국민대학교 강남교육원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저렴한 교육비로 컴퓨터 교육을 시켜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신문공고를 가위로 오렸다.
그리고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에게 보여주고는 냉정하게 물었다.
“교육을 받으면 어떨까.” 친구의 대답은 ‘오케이’였다.
그리고는 웹디자인 과정보다는 “자바를 공부하라”고 일러주었다.
프로그래머 과정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릴 때 8비트 컴퓨터를 만지작거려본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썬 공인 자바프로그래머(SCJP) 자격증 공부를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
“처음엔 정말 몰랐죠. 답답하고요.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수업을 따라가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을 들은 후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배운 것을 복습하고 개념에 대한 설명서들도 참고했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이 분야에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수강자들 중에 함께 할 만한 사람을 골라 같이 공부하자고 제의했다.
자격증 시험은 보통 영어로 보기 때문에 처음부터 영어로 된 문제집을 구해 공부했다.
인터넷에 자바와 관련한 정보는 수도 없이 많았다.
자바스터디 www.javastudy.co.kr 나 자바랜드 www.javaland.co.kr에서 시험 문제를 내려받아 공부했다.
시간이 한두달 흐르자 학원생 중에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한 대여섯 사람이 양진호씨 모임에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스터디그룹이 형성됐다.
양씨는 SCJP 시험을 치르기 위해 AWT, SWING, THREAD, 자바네크워크 등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는 과정은 확실히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무엇보다 남들에게 떳떳했어요. 그리고 모두들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 열심이었어요.” 그렇게 넉달을 공부한 뒤 시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CJP를 치르기 위해선 ‘바우처’라고 하는 것을 신청해야 한다.
바우처는 국제 공인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응시권’ 종류인데, 이것을 신청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다.
신청은 삼성멀티캠퍼스나 소프트뱅크, 엘지EDS,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교육기관 등에서 한다.
바우처는 한번 신청할 때 20여만원이 든다.
따라서 신중하게 신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드디어 취업, 바닥부터 시작이다 그는 드디어 단번에 자격증을 따냈다.
생애 처음으로 공부에 자신감을 가진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 하는 김에 좀더 확실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 또 패배감을 맛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KCC정보통신에 교육과정을 신청했다.
거기서 인트라넷과 관련된 프로그램들 중 웬만한 것들은 다 배웠다.
비주얼베이직, MSSQL, 오라클, ASP, JSP 등 실제 작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쌓은 것이다.
방황하는 기간은 길었다.
하지만 마지막 교육을 마치자마자 곧 회사에 취직하는 운이 따라주었다.
에팍소프트라는 시스템통합(SI) 업체였다.
그에게는 각고의 노력 끝에 처음 입사하는 회사였다.
“먼저 입사한 사람이 그랬어요. 아직 실력이 없고, 전산전공자가 아니니까 청소하고 숙식하면서 바닥부터 시작할 각오로 시작하라고요. 저도 그럴 각오로 입사했습니다.
” 그는 단단히 각오했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하는 사회생활인지라 그리 녹록한 건 아니었다.
자격증을 땄다고 실무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격증을 따는 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일 뿐이죠. 그 자체가 실무능력을 키워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전산전공자가 아니고 교육과정을 거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똑같이 들어와도 전공자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죠. 하지만 1년 이상 되면 그렇지 않아요. 노력하는 사람이 발전하게 돼 있어요.” 양씨는 일을 하면서 자기개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비전이 없자 양씨는 과감히 이직을 시도했다.
올해 4월 두번째 교육을 받았던 KCC정보통신의 사내벤처인 인터미디어테크놀로지 www.intermediaM.com라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그는 인터넷 솔루션 팀에서 웹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연봉도 첫 직장보다 절반이나 많다.
그는 취업을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에 일할 때 옆 사람은 잘하는데 난 못하고 있을 때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잘 견뎌야 해요.” 일을 하는 중에도 그만두고 싶은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말한다.
“교육받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요. 하지만 6개월만 참으면 돼요. 일자리를 찾아 몇년씩이나 암흑 속에서 방황했는데, 그까짓 6개월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 자랑스럽다.
뭐든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프로그래머는 양씨에겐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성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자신보다 조금 먼저 앞서가고 있었던 사람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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