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냐, 비동기냐.”
6개월여 동안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해온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방식 결정이 막바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정보통신부는 10월 중순께는 표준방식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작정이다.
이미 표준방식 결정을 한달 연기한 터라 더이상 미적거릴 수 없는 상황이다.
SK텔레콤, 한국통신, LG 등 3개 서비스 사업자들은 표준방식에 맞춰 10월 말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된다.
정통부와 업계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3개 서비스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W-CDMA)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LG는 일찌감치 비동기 방식을 공인받은 상태라 논란에서 한발짝 비껴나 있다.
비동기식인 일본 NTT도코모 등과 ‘동아시아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상하고 있는 SK텔레콤은 동기식을 채택하게 되면 사업전략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판을 짜야 한다.
민영화를 앞둔 한국통신 역시 회사가치를 떨어뜨릴 게 뻔한 동기식을 채택하는 게 부담스럽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비동기식에 매달리며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통부 “억지로 팔을 꺾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칼자루’를 쥔 정통부가 ‘3비동기’(3개 서비스 사업자 모두 비동기를 선택하는 것)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한 사업자는 동기식(CDMA2000)을 골라야 한다는 그동안의 완고함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최근 <닷21>과의 인터뷰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통상압력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특정 표준을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시장친화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3개 서비스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를 고집하는 상황에서 “강제하지 않겠다”는 말은 ‘비동기 단일화’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도 “억지로 팔을 꺾지 않겠다”고 말해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사실 정통부가 SK텔레콤이나 한국통신 중 한 사업자를 동기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카드는 이미 바닥난 상태다.
지금까지 어르고 달래며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어느 사업자도 동기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한편에서 인센티브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예컨대 1조1500억원에 달하는 출연금을 할인해준다든가, 최적의 주파수를 우선 배분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동기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혜택으로 동기식을 자원하는 업체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업체 관계자는 “최소한 3조원에서 3조5천억원 규모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웬만한 당근으로는 서비스 사업자들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정통부가 출혈을 감수하며 ‘무리수’를 둘 수도 있지만 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한개 업체는 동기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3비동기’를 덜컥 받아들이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는다.
동기식 장비 기술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등 장비업체들의 따가운 눈총도 부담스럽다.
2002년 6월로 잡은 차세대이통통신 서비스 시기를 연기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비스 연기론’ 시나리오가 현실로 애초 ‘3비동기-서비스 연기’는 SK텔레콤이 두세달 전에 제시한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았다.
SK텔레콤이 비동기 방식을 선택하는 대신 장비업체들의 비동기 기술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서비스 시작을 연기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에 대다수 이해관계자들은 떨떠름해 했다.
비동기 기술 개발에 앞서 있는 LG전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정통부도 ‘국민의 정부’ 임기 안에 서비스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병엽 장관이 서비스 시기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3비동기-서비스 연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비스를 연기하면 국책사업의 열매를 ‘차기 정권’에 넘겨준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정통부 입장에선 서비스 사업자들이 비동기로 단일화돼도 명분은 거머쥘 수 있다.
그동안 국내 장비업체들에게 비동기 장비를 개발할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SK텔레콤이 ‘한판승’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비동기 장비 개발을 먼저 시작한 LG에 자칫 선수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비스 시작을 늦춰 같은 시점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면 엄청난 수의 기존 사용자와 자금력을 확보한 SK텔레콤이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통신도 비동기식만 채택되면 서비스 연기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LG와 장비업체인 삼성전자는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비동기식 기술개발을 서두르며 선점효과를 기대했던 LG는 서비스 연기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LG 이정식 상무는 10월4일 IMT-2000 기술표준협의회 주최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정보통신 분야의 중복·과잉투자 방지를 위해 3개 서비스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식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동기식을 채택하도록 몰아가 서비스 연기론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3비동기-서비스 연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피한 꼴이다.
최악이란 서비스 연기 없이 3개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개 서비스 업체는 무조건 동기식을 채택해야 한다”며 신발끈을 바짝 죄고 있다.
삼성은 최근 삼성전자 차원의 ‘대외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그룹 차원에서 특별팀을 꾸려 전방위 활동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 정부 개입 가능성도 남아 있어 물론 아직도 숱한 변수가 남아 있어 표준방식을 속단하기엔 이르다.
정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대표 등 20여명의 인사로 구성된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의가 심의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정통부가 “한개 사업자는 반드시 동기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다시 개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표준방식이란 게 정통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수출 따위의 다른 경제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국민의 정부’ 최대의 국책사업인만큼 정치권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뚜껑을 열어봐야 최종 결과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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