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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디어 신대륙 선발대
1. 미디어 신대륙 선발대
  • 이경숙
  • 승인 2000.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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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분석력으로 무장한 싱크탱크 앞세워 e-비즈 진입로 뚫는다
디지털 미디어산업의 지각이 미세한, 그러나 심상찮은 진동으로 흔들리고 있다.
800여 인터넷 방송들이 흙먼지를 뿌옇게 올리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장 저 멀리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거대한 몸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들은 KBS, MBC, SBS 소위 방송 3사다.
이들은 우리나라 방송프로그램 시장의 약 80%에 이르는 동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디지털 미디어 신대륙 정복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품고 있는 디지털 신대륙 지도에는 단지 인터넷 사업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통신 기반의 유선인터넷은 물론 IS-95C, IMT-2000 등 무선인터넷, 데이터 방송, 디지털 위성방송 등 미개척 시장의 지형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이후의 정보권력의 밑그림도 들어 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것을 그렸을까? 방송인 CEO 대 경영인 CEO 인터넷 사업분야의 키를 잡은 CEO들 대부분은 방송인 출신이다.
<크레지오> 이홍기(57) 사장은 KBS 보도제작국장, 박찬근(51) 공동대표는 SBS 데이터처리팀 부국장, 박광호(47) 대표는 SBS 콘텐츠운용부장, 이시권(53) 대표는 SBS 총무부장 출신이다.
다들 경영경력이 없거나 길지 않다.
당연히 우려섞인 시선이 뒤따른다.
그러나 방송사 조직관리 경험이 풍부하고 모조직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은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전문 CEO는 한국IBM 출신인 김춘삼(50) 대표와 SK C&C 출신인 김영기 대표 정도다.
iMBC는 김 대표가 왕영철 상무, 서태석 실장을 한국IBM에서, 김선진 실장을 SBSi에서 영입해 주요 임원진 모두를 외부에서 끌어온 점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키매니지먼트 두세명과 수장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IBM 특유의 ‘캐비닛시스템’이다.
박찬근 대표와 더불어 윤석민(36) 대표로 공동경영 진용을 짠 SBSi의 시스템도 주목을 받는다.
윤 대표는 SBS 윤세영 회장의 맏아들로 하버드 MBA, 태영매니지먼트 사장, SBS 기획본부 이사, (주)태영 상무를 거친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장진호 재무이사(미국 와튼대학 경영학부 조교수 출신) 등 인재를 영입하고, 1천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기반을 쌓았다.
SBS 기획본부 이사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윤 대표는 뉴미디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SBS 경영전략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구제금융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 노조 반발을 사고 SBS에서 물러난 탓인지, 혹은 SBS 회장의 맏아들이란 핸디캡(?) 탓인지 여간해선 대외 업무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현재는 박 대표가 조직운영과 국내 대외업무를 맡고 윤 대표는 해외사업, 재무를 맡아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정보력 높은 기자, PD들이 키잡이 이들은 ‘멀티미디어 디지털 콘텐츠’를 미래 미디어산업의 총아로 굳게 믿고 있다.
머잖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될 공중파 방송은 물론 최근에 공개된 IS-95C 등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방송과 통신의 장점을 결합한 데이터 방송, 쌍방향TV 같은 디지털뉴미디어가 이들이 가진 ‘보물단지’, 즉 영상 콘텐츠의 가치를 퍼도퍼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으로 바꾸어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3사의 뉴미디어전략 기획가들은 회사의 정체성이 ‘멀티미디어 콘텐츠그룹’이라고 강조한다.
KBS 지도에는 한가지 존재가 더 등장한다.
‘관문’(Gateway) 권력의 존재다.
온라인 통신망과 오프라인 통신망으로 상거래, 개인서한 등 거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정보화시대에는 관문을 차지하는 사람이 권력을 쥔다.
최근 AOL의 행보에서도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AOL은 오프라인 콘텐츠의 제왕 타임워너를 껴안더니 무선인터넷의 강자 NTT도코모에 AOL재팬 지분을 넘겨 한편을 만들었다.
KBS가 한국통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도 그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크레지오를 띄우면서 시작된 두 거인의 허니문은 위성방송사업자 컨소시엄을 공동구성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크레지오는 한국통신과의 약혼기간에 낳은 소산물이자 인터넷 매체를 경험해보기 위한 ‘실험케이스’인 셈이다.
방송 3사의 미디어 전략 배후에는 30대의 젊은 기자와 PD 그리고 정책연구자들로 꾸려진 싱크탱크가 있다.
KBS의 밀레니엄기획단, MBC의 전략기획부, SBS의 회장비서실과 경영정책팀이 그것이다.
이들은 뉴미디어사업을 펼쳐나갈 실무조직의 탄생과 조직뿐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전략진은 주로 신속한 정보수집력과 방대한 자료분석력을 가진 인재들로 구성된다.
지난해 공중파방송과 케이블TV, 중계유선, 전광판방송 등 전 방송매체를 아우르는 통합방송법 제정과정에서 정부, 국회 쪽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정책입안자들에게 정책방향을 조언했던 이들이 이 싱크탱크의 구성원들이다.
3사의 싱크탱크에는 기자와 PD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대부분 현직 기자와 PD들이 순환제로 발령받아 근무한다.
일부는 정부부처 취재와 전략기획 업무를 병행하기도 한다.
취재인력으로 구성된 전략진은 <조선일보> 등 일간신문사의 사장비서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일선 취재기자들이 매일 올리는 정보보고도 귀한 전략밑천이다.
“날렵한 벤처조직으로 e비즈를 뚫어라” 이들의 밑그림엔 공통점이 있다.
‘날렵한 자회사를 선발대로 내세운다’ 그리고 ‘뉴미디어 사업을 한 조직으로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대표적 조직이 SBSi다.
올 상반기 이미 흑자로 돌아선 SBSi는 인터넷 사업을 기반으로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 데이터 방송 등 SBS의 뉴미디어사업을 모두 전담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설립될 예정인 ‘e-KBS’, ‘MBC미디어센터’ 기획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뉴미디어 사업 기획을 한데 모아 따로 처리하겠다는 심산이다.
의사결정과 추진의 효율성을 배가하기 위해서다.
한국방송공사법,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기반한 KBS와 MBC의 고민은 의사결정 과정이 지난하다는 것이다.
MBC야 일반적인 주식회사들의 결정과정에 방송문화진흥회라는 한단계를 더 거치면 되지만 KBS의 사정은 심각하다.
실무자, 차장, 부장, 국장, 본부장을 거쳐 본부장회의, 사장, 이사회 때로는 감사실까지 8~9단계의 결재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 단계 책임자 예닐곱명을 일일이 설득하느라 사업기획안 결재에 1년반이 걸렸다고 토로하는 실무자가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의사결정과정은 신규사업이 실패할 오류를 줄이지만 발빠르게 사업을 전개할 기회 역시 앗아간다.
그러나 가칭 ‘e-KBS’ 설립안이 실현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회사의 경우 본사 사장의 결재만 받으면 끝이다.
6~7명의 핵심인력으로 소프트뱅크형의 지주회사를 만든다면 실무자, 사장, 본사사장 3단계로 의사결정 과정이 대폭 줄어든다.
의욕적이고 젊은 ‘제갈량’들이 자신의 전망을 펼칠 별도 조직을 갈구할 만하지 않은가. 와호장룡일까 매머드일까 저간의 사정이 어땠건 3사가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 데 대해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우려를 나타낸다.
인터넷 시장을 선점한 벤처들, 그들을 따라 인터넷에 뛰어든 대기업들, 온오프라인과 콘텐츠시장을 통합한 새 시장을 개척중인 해외 미디어그룹 등에 비해 출발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키우다 뒤늦게 나타나 세상을 평정하는 영웅(臥虎藏龍)일지 모른다.
뉴미디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맥 없이 멸종할 늙은 매머드일지도 모른다.
2004년. 데이터 방송, 디지털위성방송, 모바일인터넷 같은 뉴미디어들이 일반화하리라 예측되는 그 시점에 우리는 그들의 운명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점의 막강파워 누가 당하랴
방송3사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들의 태생부터 알 필요가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이들의 조직은 근본부터 판이하다.
KBS는 한국방송공사법에 근거한 공영방송이다.
비록 KBS 2TV가 광고방송을 하지만 수신료가 재정의 기반이고 매년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준공무원 조직이다.
같은 공영이라 해도 MBC 성격은 또 다르다.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역시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한 정부조직이지만 박근혜씨의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식회사다.
MBC는 ‘상업적 공영방송’을 표방한다.
90년 출범한 SBS는 30% 대주주인 (주)태영을 비롯해 주주가 모두 민간인이다.
뚜렷한 상업방송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SBS는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하기도 했다.
특히 태영회장 출신 윤세영 회장의 리더십이 굳건해 방송3사 중 유일하게 ‘오너(owner)있는 방송’이라고 불린다.
그탓인지 3사의 주력 프로그램과 시청층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KBS는 주로 <6시 내고향>, <태조 왕건> 등 향토물, 역사물, 다큐멘터리, 뉴스 부문의 KBS 1TV 프로그램에서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탄탄한 호응을 얻고 있다.
MBC는 <국희> 등 청장년층 취향의 드라마, 시사고발물 부문에서 강세를 보인다.
SBS는 스포츠, 쇼, 애니메이션 같은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으며 특히 <피카츄>, <순풍산부인과> 등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청소년층의 열광적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방송프로그램 시장에서 이들 3사와 계열사가 만드는 영상물은 80~90%를 차지한다.
그 영향력은 우리나라 방송광고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막강하다.
최근 들어선 3사 프로그램의 국제경쟁력도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해외동포나 동아시아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LA 코리아타운 비디오대여점에서는 <허준> 같은 한국 드라마 시리즈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누르고 대여순위 1위에 오르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별은 내 가슴에>, <의가형제> 같은 트렌디드라마들도 베트남, 중국 등 전파를 타는 족족 인기를 구가한다.
3사의 이런 저력은 사실 독점적 위치에서 유래한다.
80년 전두환 정권이 언론통폐합을 실시하면서 KBS와 MBC 양두체제로 방송사들을 합병한 이후 10여년간은 그야말로 한국 방송시장은 경쟁이 필요없는 무풍지대였던 것이다.
90년 상업방송 SBS가 출범하고, 93년 홍두표 KBS 전 사장이 시청률을 중시하는 노선을 취하면서 방송사들간 경쟁이 불붙었지만 오히려 방송광고 장의 파이만 늘어났을 뿐 3사의 과점상태는 깨지지 않았다.
3사는 안정적 재정과 독점적 전파사용권한을 기반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거듭해왔다.
애초부터 진입장벽 없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인터넷 방송과는 달리 망할 일이 없다.
그 ‘철밥그릇’을 인터넷, 디지털위성, 게임산업이 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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