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1일 산업자원부는 ‘산업부문 B2B 시범사업’ 11개 업종과 업종별 추진 주체(컨소시엄)를 선정했다.
시계, 산업용 파스너, 공구, 농축산물 등 11개 분야와 거기에 참여할 오프라인 269개 업체, 온라인 52개 업체가 합격명단에 올랐다.
이 업체들은 앞으로 3년간 정부의 지원 아래 각 산업별 특성에 맞는 B2B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산자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부터 전자, 자동차, 조선 등 9개 업종을 대상으로 B2B 시범사업을 추진해왔다.
각 업종별로 B2B 전자상거래의 기반이 되는 상품과 코드 분류 체계의 표준화를 위한 작업을 진행중이다.
지난 11일 추가된 11개 분야는 전자상거래 확산을 위해 업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산자부는 이번 11개 업종의 시범사업이 중소기업의 B2B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대기업에 비해 기반이 충실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그동안 전자상거래의 혜택에서 많이 소외돼왔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이들에게도 인터넷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산자부의 목표다.
특히 농축산물, 건설, 석유제품 업종이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산자부는 내다본다.
이들 업종 모두 오프라인의 복잡한 유통구조로 생산원가보다 훨씬 높은 제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어 산업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한다면 불투명한 거래 관행 개선과 비용절감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시범사업자 선정에 업체들 대거 몰려 산자부가 애정을 쏟고 있는 또다른 산업분야는 물류다.
각 산업별 e마켓플레이스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역할을 하는 물류 e마켓플레이스가 먼저 표준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물류 정보 표준화와 분류체계를 확립해 각 업종별 e마켓플레이스에 제공해 서로 연동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다면 각 e마켓플레이스별 거래는 물론 화물추적, 운송기간 예측 등 고부가가치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산자부는 자신한다.
또한 해외 e마켓플레이스와 연동하기 위해 물류코드는 국제표준을 근거로 작성할 계획이다.
산자부의 이런 거창한 계획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번 11개 업종을 이끌 사업자 선정에는 많은 업체들이 입찰서를 들이밀며 경쟁을 벌였다.
11개 업종별 사업자를 뽑는 데 107개 컨소시엄이 신청해 1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일 정도였다.
업체들은 최종 심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업자 선정 몇개월 전부터 일손을 놓고 사업계획서 작성에만 매달렸다.
막판에 경쟁 컨소시엄과 손을 잡는 장면을 연출하는 곳도 있었다.
지난해 추진했던 9개 업종 시범사업에 업체들이 마지못해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열기는 예상밖으로 뜨거웠다는 게 산자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참여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에 잔뜩 기대를 하는 눈치다.
민간업체끼리는 이해관계가 얽혀 추진하기 힘든 표준화를,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하겠다는 것이 이들을 이끈 것이다.
정부가 나서 표준화를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B2B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시범사업 이후에 전개될 거대한 시장의 주도권을 앞서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자부의 달라진 자세가 이토록 많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했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추진한 9개 업종 시범사업에서는 산자부가 반강제적으로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생물, 조선 업종에서는 아직도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11개 업종의 시범사업 추진에서 산자부는 적당한 선에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인다.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에도, 판을 깔아주며 가이드 라인만 제시하고 실질 업무는 모두 민간에 맡기겠다는 자세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업계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고 말한다.
정밀화학, 물류 등 4개 업종에 참여한 파이언소프트 이병훈 과장은 “지난해 업무추진 방식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면 올해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전국경제인연합 정보통신실 박창현 수석역도 “업종별 표준화는 업체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민간보다 정부에서 해야 할 몫이 더 많다.
이번 시범사업은 그런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앞서 세제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원하는 것과 같은 그럴듯한 표준안이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한다.
산자부는 이번 사업자 선정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경쟁 컨소시엄끼리 무리한 합병을 종용하기도 했다.
표준안 제정과정에서 경쟁업체 사이의 알력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경쟁 컨소시엄끼리 무리하게 합병을 종용하다보니 사업계획서를 급조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업체를 참여시키기 위해 이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업체 사이의 업무와 지분관계를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표준안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내비쳤다.
시범사업자 선정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 가운데는 정부 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곳도 있다.
이들은 정부가 굳이 나서서 무리하게 업종을 나눠놓았다고 지적한다.
좀더 합리적인 업종 선별이 아쉬웠다는 얘기다.
또 사업을 진행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업체에 간섭을 하게 되고 정부의 무리한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이 나타내는 우려다.
이들은 정부의 역할은 다른 곳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업계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상거래에 대한 세제·금융상의 지원을 통해 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이들은 강하게 주장한다.
현재 e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물론 전자상거래 시장에 많은 액수를 투자하는 대기업도 세제·금융상 별다른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전자상거래 법·제도 정비 방안’ 보고서에서도 전자상거래를 시행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 인하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한 투자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낮은 거래수수료를 수익원으로 하는 e마켓플레이스 업체에 기존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e마켓플레이스의 활성화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이번 정부의 정책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무리수로 그 기대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정부 정책이 민간의 자율성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야지 그것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업체의 관계자는 “그래야만 단순한 e마켓플레이스 개설이 아닌 업종 전반의 e가비지니스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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