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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지니스] 낮게 날되 멀리 보자
[e비지니스] 낮게 날되 멀리 보자
  • 임채훈
  • 승인 2001.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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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켓플레이스 업체들, 뚜렷한 성공모델 없어 신규사업 자제·수년후 대비 “주력사업을 컨설팅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 코리아e플랫폼 정상희 이사의 말이다.
지난해 7월 코오롱, SK, 현대산업개발 등 11개 회사가 중심이 돼 코리아e플랫폼을 설립할 때만 해도 미래는 밝아 보였다.
당시 각광받던 MRO(기업소모성자재) 전문 e마켓플레이스를 열면서 코리아e플랫폼은 ‘MRO를 기반으로 다른 분야의 e마켓플레이스까지 영역을 확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국내 B2B 시장은 기대만큼 열리지 않았다.
애초 사이트를 구축해주기로 했던 미국의 아이투테크놀로지스와는 계약이 깨졌다.
지난해 실거래를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는 당연히 늦춰졌다.
‘B2B를 하려거든 MRO부터 하라’는 말이 화려하게 떴지만, MRO도 말처럼 화려하지 못했다.
‘푼돈 사업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전망이 나오기까지 했다.
“장밋빛 전망과 외국산 솔루션 업체에게 휘둘린 측면이 있었다”고 정 이사는 고백한다.
지난해 문을 연 대형 e마켓플레이스 업체들에게서 그때의 당당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올해를 어떻게 넘길까’ 하는 곤혹스러운 표정들뿐이다.
전자상거래가 대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공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주목을 받았던 MRO 전문업체들은 ‘MRO가 과연 수익성이 있는가’라는 논란에 휘말려 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산업별 e마켓플레이스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삼성물산, LG칼텍스, 한화 등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화학 전문 e마켓플레이스 ‘켐크로스’는 200억원의 거래실적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상당한 규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켐크로스가 거래에 부과하는 수수료율은 0.35% 수준이다.
이 비율에 따라 계산한다면 켐크로스가 실제 올린 수익은 7천만원 정도에 머문다.
70명의 직원과 e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하는 데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켐크로스는 그동안 무료로 제공해온 정보를 유료화하는 등 부가수익을 찾아나섰다.
켐크로스 이명희 실장은 “산업 전반에 e마켓플레이스가 정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다.
LG상사, SK상사, 현대종합상사 등이 참여한 또다른 화학 전문 e마켓플레이스 ‘켐라운드’ 관계자 역시 “다른 곳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로 비껴간다.
조선 분야 e마켓플레이스인 ‘조선닷컴’은 출범하기 전부터 삐그덕거리고 있다.
CRM, SCM과 연동해 프로세스 개선 업계에서는 올해 여러 업체들이 참여하는 공개형 e마켓플레이스가 주춤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보다는 기업 내부의 폐쇄형 e마켓플레이스가 더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성공사례가 나온다면야 그 길을 좇아갈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업계 전반이 안개에 쌓인 형국이다.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데 섣불리 나서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대기업처럼 자체 구매망을 갖춘 곳에서는 폐쇄형 e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면서 ERP(전사적자원관리), SCM(공급망관리)을 연결해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더 힘을 쏟을 것이란 얘기다.
일단 자신을 추스린 뒤에 언젠가 올 B2B시대에 대비하자는 전략이다.
지난해처럼 외국자본을 끌어들인다거나, 여러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아이엠케이’(IMK)라는 MRO 마켓플레이스를 연 삼성도 그룹 내의 MRO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은 IMK를 통해 전 계열사의 MRO 구매를 대행한다는 계획이다.
1조원 가량이 이 사이트를 통해 거래될 것으로 삼성은 내다보고 있다.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면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구매업무 과정의 개선이라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삼성은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MRO 사이트를 IMK로 통합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삼성 전 계열사를 아우른다는 계획이다.
아직은 삼성전기와 삼성SDI 두 곳만 IMK를 통해 거래하고 있다.
SK글로벌에서 운영하는 MRO코리아도 삼성의 IMK와 비슷한 모델이다.
미국의 e마켓플레이스 업체인 그레인저와 51 대 49의 자본비율로 세운 MRO코리아는 주로 SK그룹 계열사의 MRO 구매를 대행한다.
각 계열사의 구매담당자들이 운영하는 이 사이트는 SK그룹 전체 MRO 자재 중 30% 정도를 처리할 계획이다.
“그 정도면 800~1200억원 규모다.
30%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 있는 최대치다.
” MRO코리아 지계문 팀장의 설명이다.
MRO코리아 역시 수익창출이나 비용절감보다는 내부 구매업무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자체 구매력이 일정 규모에 이르는 업체들은 이처럼 잠시 엎드려 다가올 전자상거래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e마켓플레이스 업체들은 경우가 다르다.
이들은 올해 어떻게 해서든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파텍21, 엣트레이드, 사이언스119, 티페이지 등 20여개 업체들은 ‘e마켓플레이스협의회’ 구성을 통해 살길을 찾아나섰다.
이들은 사업영역은 각자 알아서 하되 결제·보안 같은 기반 시스템은 공동운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경비를 절감할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지만 서로 힘을 합하면 나름대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보통신위원회 박창현 조사역은 국내에서 B2B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로 두가지를 꼽는다.
오프라인 제품의 표준화가 미진하고 업체마다 거래관행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여러 업체가 뭉쳐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보다 한 업체의 내부거래에 올해 B2B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기술적인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다른 문제들은 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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