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닥터바벤] ⑭ 대사공학
[닥터바벤] ⑭ 대사공학
  • 허원(강원대 교수)
  • 승인 2001.05.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장균으로 술 빚는 비법

생명체 대사과정 조작해 원하는 기능 얻어… 값싼 대체연료·의약품 개발도 가능

우리가 마시는 술은 효모를 발효시켜 생산한 알코올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다.
중남미의 데킬라처럼 아주 특별한 주종을 제외하고는, 모든 술은 효모가 당분을 먹고 자라면서 알코올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90년대 초, 미국 과학자들이 효모에서 알코올을 생산하는 유전자만을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대장균에 이 유전자를 삽입하면 효모와 맞먹을 정도의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효모의 유전자를 대장균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장균의 대사작용을 잘 파악하고, 여기에 적절한 효모 유전자를 골라내 대장균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일부를 변형시켜야 한다.

신진대사 마음대로 ‘디자인’ 사람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 뒤로 생명체의 기능이나 특성을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또는 산업적으로 쓸모있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해왔다.
인터페론처럼, 사람 세포에서만 생산되는 물질을 미생물에서 공업적으로 생산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인터페론 유전자를 대장균에 옮겨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의약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인터페론 유전자가 대장균에서 기능을 발휘하더라도 대장균의 생리적 특성이나 대사작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대장균이 알코올을 생산하도록 한 것은 대장균의 기본 대사작용을 변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인터페론 생산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생명체를 유전공학적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체의 대사과정까지 변화시킨 뒤 우리가 원하는 기능이나 역할을 하도록 하는 바이오 기술을 ‘대사공학’이라고 한다.
만일 술 만드는 대장균이 우리 대장에 존재한다면 술을 먹지 않아도 될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알코올을 만드는 원료인 당분을 소장에서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다.
대장균이 대장에서 계속 살아남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알코올을 생산하는 대장균은 실제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생명체의 대사활동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하지만 그 뒤로 산업적으로 가치있는 대사공학적 연구개발이 빨라지기 시작해 현재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성과 중 하나가 인디고를 생산하는 대장균을 대사공학 방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디고는 청바지를 염색하는 푸른색 염료로, 식물에서만 생산된다.
하지만 인디고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중간물질인 ‘트립토판’은 대장균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인디고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적절한 유전자를 트립토판에서 떼어내 대장균에 도입한 것이다.
또한 비타민C는 스위스의 로슈에서 전세계 소비량의 70~80%를 생산하고 있다.
비타민C는 여러 단계의 미생물 반응과 화학 반응을 거쳐 생산되는데, 최근에 대사공학적 방법을 통해 포도당에서 직접 비타민C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을 개발했다.
대사공학을 통해 값싼 연료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화석연료는 고갈돼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버리는 나무나 풀의 목질계를 원료로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경제성이 없어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사공학 방법을 활용해 값싸게 에탄올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의 대사 경로를 조절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을 통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물질로 만들 수 있도록 대사경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방법에도 대사공학적 접근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대사공학을 적용하는 대상은 주로 유전자 조작이 쉬운 미생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동물세포나 식물세포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
비약적 발전 가능한 분야 대사공학 기술은 몇가지 부문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대사공학 발전은 초보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대사경로에 대한 전반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사경로 전체 가운데 아주 일부분에 해당하는 단편 지식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대적으로 미생물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제거하거나, 숫자를 늘리거나, 변형하거나, 다른 유전자로 교환하거나 하는 따위의 기술은 상당히 개발돼 있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를 어떻게 조작해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미생물을 변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연구는 대부분이 세포 안의 대사경로를 파악하고, 대사경로 사이의 조절작용이나 대사물질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계속 축적되고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아주 빠른 속도로 전체 대사경로에 대한 종합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사공학 분야도 비약적 발전을 할 게 틀림없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생물에 대한 게놈프로젝트와 생물정보학 발전도 대사공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닥터 바벤은 베일에 가려진 허 교수의 닉네임입니다.
미생물, 로봇처럼 부린다
미래의 대사공학 크기가 몇 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100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미생물 세포도 1천개 이상의 효소들이 서로 정교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복잡한 대사경로로 구성돼 있다.
이 대사경로는 세포가 생존할 수 있도록 대사물질들의 흐름을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세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들을 만들어낸다.
자연상태에서 진화한 생명체는 생존하는 데 적합하도록 최적화된 대사경로를 형성하고 있다.
이 대사경로를 새로 디자인해 산업적으로 쓸모있도록 바꿔나가는 게 대사공학의 목적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사경로를 일부만 변형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게 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사공학을 활용한 범위가 우리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현재 대사공학을 적용할 수 있는 예상 분야는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대사경로를 가진 미생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지난 세기 동안 화학공업의 발전으로 자연계에서 분해되지 않는 물질들을 많이 만들었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물질들도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에 축적되고 있다.
이런 비분해 물질들은 언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지 아무도 모른다.
몇억년 동안 진화하면서 자연계에 있는 물질을 분해하며 자라난 미생물들은 지난 세기 동안에 새로 만들어낸 화학물질은 분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생물의 대사경로를 조절하면 미분해 물질의 청소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혈관 속을 헤엄쳐다닐 수 있는 미세 로봇을 만들어 질병을 치료한다는 나노기술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보다는 대사공학으로 변형한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이용하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효모는 사람의 혈관 속에 주사해도 부작용이 없으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없어진다.
따라서 신체의 특정 부위에 달라붙도록 효모 표면에 항체를 생산하도록 하거나, 치료에 필요한 단백질이나 효소를 생산하도록 효모를 새로 디자인하면 질병 치료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가까운 미래에는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듯 미생물 유전자를 상당 부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새로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양물질이 풍부하고 적당한 배양조건만 갖추면 미생물은 무한대로 분열한다.
미생물을 바이오 로봇처럼 사용할 날도 멀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