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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백도어리스팅의 성공과 실패
[머니] 백도어리스팅의 성공과 실패
  • 이정환
  • 승인 2001.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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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기업 M&A 통해 안방 차지… 까다로운 등록기준 맞출 필요없어 성행
코스닥으로 가는 뒷문이 북적거리고 있다.
사겠다는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팔려고 내놓은 기업들 값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은 지 오래다.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비좁은 앞문보다 뒷문쪽이 훨씬 쉬워보이는 건 사실이다.
잘만 뒤져보면 코스닥에 올라 있는 기업 가운데 싸게 사들일 수 있는 기업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이들 지분을 필요한 만큼 사들이고 정해진 절차를 밟아 합병하면 코스닥에 올라간 거나 다를 바 없다.
마지막으로 이름까지 뜯어고치고 나면 굴러들어온 돌이 완벽하게 안방을 독차지하게 된다.
앞문으로 들어갈 때처럼 까다로운 자격기준을 맞출 필요도 없고 지루한 심사를 거치면서 일년 가까이 애를 태울 필요도 없다.
점잖지 않은 표현이지만 이러한 방식을 흔히 백도어리스팅(뒷문으로 올라가기)이라고 부른다.

[성공사례] 백도어리스팅은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다.
지난해에도 리타워테크놀로지(옛 파워텍)나 바른손, 동특, 엔피아(옛 개나리벽지), 모헨즈(옛 한일흥업), 호스텍글로벌(옛 동미테크), 아이에이치아이시(옛 신안화섬) 등 20여 업체가 백도어리스팅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보일러 환풍기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인터넷 지주회사로 변신하기도 하고 벽지 만드는 회사가 소프트웨어 업체로 변신하기도 했다.
저마다 화려한 전망을 내세우면서 주가도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올랐다가 사그러들었다.
올해 들어 백도어리스팅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수합병(M&A) 전문가들에 따르면 무려 100여개에 이르는 거래소와 코스닥 기업들이 백도어리스팅 대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바람은 지난 1월 장외기업인 와이앤케이가 코스닥 등록기업인 써니상사에 인수합병되면서 물이 올랐다.
신발제조업체인 써니상사가 지난해 485억원 매출에 12억원 순이익을 올린 반면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와이앤케이는 지난해 1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두 회사는 어울리지 않게 1:1.04의 비율로 합병했다.
아마도 써니상사는 와이앤케이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했고 와이앤케이는 코스닥 등록업체라는 써니상사의 간판을 원했을 것이다.
써니와이앤케이로 이름을 바꾸면서 써니상사 서봉식 사장은 회장으로 물러나고 와이앤케이 윤영석 사장이 사장으로 선임됐다.
윤 사장은 신발 사업부문과 게임 사업부문을 합쳐 올해 800억원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와이앤케이는 써니상사에 인수합병되면서 자연스럽게 코스닥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지난해까지 적자를 내던 기업이 갑자기 튼튼하고 성장성 있는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돈 한푼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코스닥 바깥의 기업들은 눈이 뒤집힐 만하다.
이어 지난 3월, 역시 장외기업인 프리챌이 코스닥 등록기업인 대정크린을 업고 코스닥에 발을 담그면서 이러한 신화는 더욱 부풀려졌다.
써니와이앤케이와 달리 프리챌은 대주주끼리 지분을 맞교환하면서 경영권을 장악한 경우다.
지난 3월 프리챌 전제완 사장과 대주주 3명은 지분 34%를 대정크린에 넘겨줬다.
이들은 대신 대정크린 지분 53%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인수했다.
사실상 프리챌이 대정크린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이다.
몇몇 언론에서는 대정크린이 프리챌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따지면 그 정반대라고 이야기해야 옳다.
지난 92년부터 10년 가까이 산업용 부직포를 만들어왔던 대정크린은 갑자기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됐다.
대정크린은 이제 프리챌뿐만 아니라 온라인게임, 온라인 개인금융 서비스, 온라인 마케팅, 디자인 분야의 인터넷 사업체를 더 인수해 프리챌의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아예 회사 이름도 프리챌홀딩스로 바꾸기로 했다.
코스닥 바깥의 닷컴기업들이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프리챌은 코스닥에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프리챌이 대정크린을 인수하기까지 겪은 우여곡절도 재미있다.
전제완 사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아이에이치아이시와 접촉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프리챌 인수를 한참 논의하던 가운데 아이에이치아이시는 코스닥 등록업체인 대영에이앤브이의 주식을 장외에서 사들인 다음 같은 날 처분해 두배 가까운 이익을 챙기는 등 수상쩍은 행동으로 물의를 빚었다.
프리챌 전 사장은 아이에이치아이시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계약을 파기했다.
잇따른 백도어리스팅 움직임에 아이에이치아이시는 늘 한가운데 있었다.
아이에이치아이시는 일찌감치 지난해 10월 코스닥에 올라 있는 신안화섬을 인수해 백도어리스팅에 성공한 바 있다.
그때만 해도 선배격인 리타워테크놀로지가 백도어리스팅에 성공해 한참 주가가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출신인 이성주 사장은 신안화섬의 부실을 털어내고 아이에이치아이시를 인터넷 지주회사로 키워내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웬일인지 아이에이치아이시의 실험은 계속 어긋나기만 했다.
프리챌 인수가 틀어진 것처럼 지난 2월에는 화장품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코스매틱랜드를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코스매틱랜드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에이치아이시의 공신력은 또 한번 땅에 떨어졌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장외기업인 디오원과 오콘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 가오닉스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며칠 전에는 디오원의 황경호 부회장이 장외에서 지분을 인수해 아이에이치아이시의 최대주주로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앞뒤 상황을 살펴보면 디오원이 자금난에 놓인 아이에이치아이시를 딛고 다시 한번 백도어리스팅을 시도한 셈이다.
디오원은 의류 제조업체고 오콘은 3차원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밑그림을 그려나갈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아이에이치아이시의 조급한 실험은 결국 실패한 백도어리스팅의 사례로 남게 됐다.
최근에는 <한국일보>의 자회사인 한국미디어그룹이 코스닥에 올라 있는 피혁 제조업체 한길무역을 인수해 관심을 끌었다.
인수자금은 모두 1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을 장악한 한국미디어그룹은 한길무역의 이름을 일간스포츠로 바꾸고 한국일보에서 일간스포츠신문을 사들이도록 할 계획이다.
인수자금은 758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일간스포츠는 국내 신문사 가운데 처음으로 코스닥에 오르게 된다.
일간스포츠는 신문 발행은 물론이고 인터넷 사업과 영화·음반 제작, 이벤트 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커나갈 계획이다.
한길무역의 본업인 피혁 제조업은 일간스포츠의 사업부문으로 남게 된다.
[실패사례] 그나마 와이앤케이나 프리챌, 일간스포츠가 백도어리스팅에 성공한 사례라면 인티즌이나 건잠머리컴퓨터, 프리즘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한 사례다.
허브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인티즌은 자금난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차에 마침 코스닥에 올라 있는 시스템통합 업체 코아정보시스템과 합병이 논의됐고 대주주인 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이 보유지분 가운데 일부를 인티즌에 무상 기증하면서 힘을 실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콘텐츠에 강한 인티즌과 기술력에 강한 코아정보시스템의 합병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불러모았다.
인티즌은 코스닥에 올라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공병호 인티즌 사장이 코아정보시스템 사장으로 옮겨갔고 합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코아정보시스템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코아정보시스템이 전적으로 불리하다는 의견이 터져나왔다.
빚더미만 짊어진 인티즌과 합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결국 코아정보시스템쪽에서 합병비율을 문제 삼고 나섰다.
코아정보시스템은 합병비율을 절반으로 낮춰달라고 주문했고 합병은 깨졌다.
인티즌 김진우 사장은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서로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일을 끝내야죠. 주가를 시비 걸지 못하도록 특정 날짜를 정하고 그날 주가로 하자고 못을 박으면 됩니다.
” 인티즌은 백도어리스팅을 시도할 다른 코스닥 등록기업을 물색하고 있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피혁업체 유니켐과 합병을 시도했던 건잠머리컴퓨터도 비슷한 사례다.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유니켐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코스닥에 올라 있는 의류회사 아이케이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시도했던 프리즘커뮤니케이션은 반대로 주가가 올라서 실패한 사례다.
주가가 두배 가까이 뛰어오르면서 아이케이엔터프라이즈는 굳이 헐값에 회사를 팔면서 합병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됐다.
주가가 가볍게 출렁거리면서 계약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이 밖에도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과 서능상사, 보양산업, 사람과기술, 하이론코리아 등 20여 업체가 백도어리스팅 대상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M&A 전문가들은 올해 30~40개 가량 코스닥 등록기업이 실제로 인수합병이나 백도어리스팅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제는 팔려고 내놓은 코스닥 등록기업들 값이 너나없이 올라 있다.
그나마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한국엠앤에이 권재륜 사장은 백도어리스팅의 성공요건으로 세가지를 든다.
첫째 시간을 오래 끌지 말 것. 둘째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할 것. 셋째 본질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 권 사장은 왜 백도어리스팅을 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코스닥 등록 효과는 사실 별 거 아닙니다.
자금을 조달하기 쉽고 대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기업의 실적이죠. 무리하게 올라가봐야 결국 주가는 실적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타운뉴스가 코스닥에 목매는 까닭 타운뉴스 유석호 사장은 초조해졌다. 코스닥 등록업체를 인수합병해 코스닥에 올라가려던 시도가 잇따라 물거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1월, 타운뉴스는 건설회사인 케이알에 손을 내밀었다가 실패했다. 그때 합병 계획에 따르면 케이알은 타운뉴스에 10억원을 출자해 전체 지분의 5.87%를 인수하고 지분을 1:1 비율로 교환하려고 했다. 그러나 합병소식이 알려지면서 케이알의 주가가 한달반 동안 두배 이상 뛰어올랐다. 우호 지분이 50%가 넘는다고 하지만 주식매수청구권이 들어올 경우 얼추 계산해도 50억원 이상 생돈이 들어갈 판이었다. 결국 합병은 결렬되고 말았다. 이어 타운뉴스는 지난 3월, 전자화폐 장비를 만드는 에이엠에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 업무 제휴 차원에서 추진했던 두 회사의 만남은 곧 합병 논의로 이어졌다. 타운뉴스는 에이엠에스의 지분 29.6%를 주당 7천원, 모두 120억원에 인수해 지분을 교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문이 퍼지면서 에이엠에스 주가가 먼저 크게 출렁거렸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합병비율 산정에 불만이 생겨났다. 에이엠에스를 통한 백도어리스팅도 결국 실패했다. 타운뉴스가 코스닥 등록에 목을 맸던 것처럼 케이알이나 에이엠에스는 타운뉴스의 성장성에 눈독을 들였을 것이다. 타운뉴스는 지난해 11억원 매출에 41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100억원 매출에 조금이나마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음달이면 2년 가까이 개발해왔던 온라인 광고 솔루션이 첫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 사장이 백도어리스팅에 목을 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개발한 제품이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코스닥에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체적으로도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죠.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몇년씩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후발업체들이 뒤따라오려면 1년반 정도 걸릴 거라고 내다봤지만 이제는 7~8개월 정도로 좁혀들었다.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서지 않으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금방 추격당할 수도 있다. 코스닥 등록업체라는 간판이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여줄 거라고 유 사장은 믿고 있다. 유 사장은 얼마 전부터 코스닥의 ‘ㅈ’이라는 회사와 합병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한때 인터넷 공모에서 6만원까지 받았던 주가가 1천원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코스닥에 올라가고 매출이 일어나면 주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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