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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벤처캐피털의 위험한 줄타기
[머니] 벤처캐피털의 위험한 줄타기
  • 이원재
  • 승인 2001.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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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과정에서 주가 관리 공공연한 비밀…규제 풀고 불법 엄단이 최선책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대대적 ‘소탕작전’을 벌였다.
증시를 흔드는 주가조작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검찰은 1월 말 이후 허수주문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면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전설적 ‘큰손’ ㅇ증권 테헤란로지점 정아무개씨 등 전직 증권사 투자상담사 및 개인투자자 11명을 구속했다.


소탕작전 도중 뜻하지 않은 큰손의 흔적을 잡았다.
금감원 조사과정에서 한 낯익은 벤처캐피털의 이름이 발견된 것이다.
ㅎ증권 투자상담사 송아무개씨가 주가조작을 위해 대량 허수주문을 내면서 한 벤처캐피털 투자조합의 계좌를 이용한 것이 밝혀졌다.
조사담당자들은 눈이 번쩍 띄였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벤처캐피털의 주가조작 연루의혹이 사실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수사과정에서 벤처캐피털 계좌 등장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수법은 이렇다.
지난해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송씨는 또다른 전직 투자상담사 최아무개씨와 함께 코스닥 등록업체인 ㅅ사의 시세를 조종해 열흘여 만에 8억6천여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이들은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 허수주문을 이용했다.
먼저 벤처캐피털 투자조합 계좌를 통해 살 의사 없이 하한가에 대량 매수주문을 냈다.
마치 매기가 몰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준 것이다.
홈트레이딩 시스템에 표시되는 주문량이 대량으로 뜨자 “큰 재료가 있는 것 아니냐”는 뜬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이 멋모르고 이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송씨 등은 그 틈을 타서 매수주문을 취소하고 갖고 있던 ㅅ사 주식을 다른 계좌를 통해 팔아치웠다.
그리고는 다시 상한가에 매도주문을 내 주가를 떨어뜨렸다.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다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마 뒤 다시 허수 매수주문을 내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결국 벤처캐피털 투자조합 계좌에서 열흘여 동안 스물세번에 걸쳐 76만여주의 허수 매수주문이, 열두번에 걸쳐 76만여주의 허수 매도주문이 나왔다.
금감원은 당장 계좌주인인 벤처캐피털 자금팀을 불러들였다.
벤처캐피털쪽에서 자기 계좌에서 허수주문이 나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철퇴를 내리려 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금감원의 조사결과를 넘겨받아 투자상담사들을 구속한 검찰 관계자는 “시세조종에 자기 계좌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벤처캐피털도 문제가 됐겠지만, 그 부분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캐피털이 주가조작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금감원의 처음 의심이 그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입을 모은다.
일부 벤처캐피털이 보유물량 처분에 앞서 증권사 투자상담사 등과 손잡고 ‘주가관리’라는 명목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도를 지나쳐 ‘주가조작’으로까지 가느냐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한다.
한 벤처캐피털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명동 사채시장이나 여의도 기관투자가들이 ‘왜 투자종목의 주가를 관리하지 않느냐’고 불평할 때가 있다.
장외에서 우리와 같은 기업의 지분을 사들였거나 우리 투자조합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기업을 심사하고 투자를 주선한 벤처캐피털 입장에서는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요구는 다시 증권사에게로 넘어간다.
벤처캐피털쪽에서 특정 증권사 영업직원(또는 투자상담사)에게 “얼마 이상으로 팔아주면 주문을 넣어주겠다”는 요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문약정에 따라 성과급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증권사 직원들 처지에서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떠받쳐서라도 약정을 유치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허수주문 등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무리수가 나온다.
시세조종 과정에서 다른 계좌를 동원해 부수이익을 챙기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벤처캐피털은 투신사나 은행 등 다른 기관투자가와는 달리 일반투자자로 분류되므로 주문 때 개인투자자처럼 증거금이 필요해 허수주문이 어렵지만, 다른 기관투자가로 위장해 증거금없이 주문을 내는 일이 많다고 한다.
벤처캐피털과 증권사 사이의 은밀한 뒷거래인 셈이다.
투자자 돈으로 장내 주식 매매까지 일부 벤처캐피털은 이보다 더 나아가 유통시장에까지 개입한다.
장외에서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해 기업공개를 통해 차익을 얻는 게 아니라, 아예 조합에 모인 투자자들의 돈으로 장내주식을 사고 팔면서 수익을 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코스닥시장의 매매를 감시하는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의 본업은 장외기업에 대한 투자이지만, 장내에서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아이티벤처투자 조명환 이사도 “국내에는 정통 벤처캐피털리스트보다는 유통시장 출신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많아 유통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벤처캐피털을 “벤처기업을 뿌리부터 키우는 토대”라고 규정하고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 벤처캐피털들이 속성재배를 위해 들이붓는 시세조종이라는 ‘부적절한 비료’는 그 뿌리를 오히려 썩게 할지도 모른다.
결국 해결책은 유통시장의 감시를 철저히 하는 데 있다.
“벤처캐피털 보유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식의 인위적 수급조절 정책을 펴지 말고, 유통시장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세력을 반드시 찾아 엄단하라. 그게 대다수 ‘선량한 벤처캐피털’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시장만 제대로 서 있다면 기업공개 이전 벤처기업에 대한 정석투자가 시세조종을 동원한 단타매매보다 훨씬 큰 수익을 가져다준다.
” LG벤처투자 김석근 이사의 말이다.
벤처캐피털 보호예수 250만주 대기중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한 뒤 투자기간이 1년 이상일 때는 3개월, 1년 미만일 때는 6개월 동안 지분을 팔지 못하게 묶여 있다.
현재 코스닥 등록기업 가운데 이런 ‘벤처캐피털 매각제한 기간’에 묶여 있는 주식 수는 250만여주에 이른다.
보호예수 물량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은, 최근 6개월 동안 코스닥시장 급락으로 신규등록기업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벤처캐피털 보호예수 주식을 관리하는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2월16일 현재 코스닥시장에는 아즈텍WB, 인츠커뮤니티, 모디아소프트 등 9개 종목, 250만5004주의 보호예수 주식이 묶여 있다.
금액으로는 약 ***원 어치다.
보호예수가 풀리는 날부터 이들 기업 투자자들은 벤처캐피털의 매도공세에 시달리게 될 공산이 크다.
벤처캐피털 보호예수 규정은 일부 벤처캐피털들이 투자기업을 코스닥에 등록시킨 뒤 지분을 장내에서 대량으로 매각해 주가가 폭락하게 된다는 일반투자자 및 기관투자가들의 지적 때문에 지난해 ‘대주주 지분매각 금지기간’을 본따 신설됐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서는 “일반·기관투자가와 형평에 맞지 않는 조처”라며 이 규정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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