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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건강] 나이스 샷의 비밀
[골프와건강] 나이스 샷의 비밀
  • 장일태/ 세란병원 신경외과
  • 승인 2001.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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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컨트리클럽의 간판선수가 응급실로 급히 후송돼 왔다.
그와는 가끔 필드에서 조우하는 사이였다.
의사인 필자를 의식해서 그랬는지 라운딩을 하면서 목에 통증이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됐나보다.
플레이 도중에 갑자기 사지에 힘이 빠지면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MRI를 찍어보니 목의 디스크가 터지기 직전인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팔다리를 쓰지 못할 수도 있는.

다음날 부랴부랴 수술에 들어갔다.
다행히 생각보다 수술결과가 좋아 거짓말처럼 이틀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만약 수술결과가 나빴다면 이 이야기를 더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한숨 돌린 그 선수는 퇴원 후 첫 라운딩을 꼭 함께 하는 영광을 달라면서 시원하게 웃었다.
인사치레일 수도 있었지만, 지인을 도왔다는 기쁨에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4개월쯤 지났을까.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선수와 우리 병원의 척추전문의팀이 함께 라운딩을 하게 되었다.
그 선수의 실력이야 컨트리클럽 챔피언십을 거머쥔 경력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4개월여의 공백기간이었다.
과연 그가 최상의 퍼팅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의 샷은 하늘을 찌를 듯이 시원스럽게 창공을 갈랐고, 공은 정확히 그린 위에 안착했다.
퍼팅도 신들린 듯 했다.
공은 자석이라도 붙은 양 홀컵으로 빨려들었다.
그는 결국 이날 자신의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스코어는 무려 3언더파. 뜻밖의 결과에 그 선수까지도 의아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우리 척추전문의팀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필자는 그 선수를 치료한 의사로서 내심 쾌재를 불렀다.
라운딩이 끝난 뒤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그 선수의 스코어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의사팀은 그 선수의 고득점 비결을 말로나마 전수받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비결은 너무 싱거웠다.
“목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친 것 뿐입니다.
” 의도가 어쨌든 그야말로 샷의 정석을 꿰뚫는 말이 아닌가. 신바람이 난 그 선수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목뼈가 서로 붙어서 헤드업 걱정도 없더라고요.” 이에 옆에 있던 동료의사 한명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도 굳샷을 하려면 목뼈부터 붙여야 되겠는데요.” (보통 목디스크 수술을 할 때는 뼈를 이식해 목뼈 한마디를 붙여 고정시킨다.
) 실제로 헤드업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다 오히려 목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다.
몸이 경직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공을 주시하면 목 근육은 심하게 수축되어 목디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공을 끝까지 보는 집중력은 가지되, 몸의 동선을 리드미컬하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필자도 이론만 견지하고 있을 뿐, 실제 플레이할 때 리듬과 템포를 제대로 찾지 못해 동작이 끊어지고, 목과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한다.
무릇 골프란 운동은 웬만한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힘을 빼고 물 흐르듯 자연스런 스윙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목 근육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스윙을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스윙을 하다가 갈비뼈까지 부러지는 사람이 있을까. 근육이 갑작스럽게 수축될 때의 힘은 그만큼 대단하다.
그러므로 아마추어라면 스윙 폭을 줄이고, 쇼트게임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몸을 많이 비틀수록 스윙의 궤적이 커지고, 비거리를 늘릴 수 있지만, 그만큼 몸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김미현 같이 체격이 왜소한 프로선수는 샷거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비틀기 타법’(body-turn)을 구사한다.
그럼으로써 콤플렉스를 극복할 뿐아니라, 그것을 강점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프로선수는 과학적인 단련법으로 몸을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와 똑같이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큰 스윙을 자제하고, 팔로만 가볍게 치는 것이 좋다.
물론 비거리는 다소 줄겠지만 정확히 공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이 쇼트게임에 강해지는 비결이다.
어떤 운동이든지 몸에 힘을 준다고 해서 파워가 생기지 않는다.
부드러움 속에서 진정한 강함이 표출된다.
물론 골프가 아무리 몸에 무리를 준다 해도 골프만의 오묘한 매력을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뒷목이 뻐근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도 신주단지 모시듯 열심히 골프채의 광을 내는 그 열정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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