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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리더] 대신증권 CIO 문홍집 전무
[디지털리더] 대신증권 CIO 문홍집 전무
  • 이원재
  • 승인 2001.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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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78년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80년 경북대 공과대학 대학원 졸업(파스칼 컴파일러)
83~85년 금성반도체 컴퓨터사업부문
85~88년 GE코리아 CAD/CAM사업부문 시스템 엔지니어
88~95년 대신정보통신 증권사업부장(증권시스템 개발 및 영업), 대신증권 전산실장
현재 대신증권 사이버영업본부장·전산본부장(CTO)
증권업협회 증권전산위원회 실무위원

“증권은 전자상거래의 꽃” > 대신증권 계열사인 대신정보통신에 입사하던 지난 88년, 문홍집 전무는 주식을 거래해본 경험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금성반도체와 GE코리아를 거친 공학석사 출신 시스템 엔지니어가 주식투자도 해보지 않았으니 기본적 금융지식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처음 입사해 회의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매수’가 어떠니, ‘매도’가 어떠니 하고 증권용어를 마구 늘어놓더군요. 매수라니, 사람을 매수해 공작을 펼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속으로 생각한 일이 있을 정도로 증권에는 까막눈이었어요. > 그가 증권에 무지했던 것만큼 증권사들도 정보화에 무지했다.
그가 증권판에 발을 들였을 때 국내 증시는 사이버거래를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업무전산화조차 제대로 돼 있는 곳이 없었다.
그는 이런 원시적 상태에서 수많은 숙제와 싸워야 했다.
지점마다 창구가 나뉘어 있어 줄을 따로 서야 했습니다.
업무가 통합되지 않아 ‘수익증권 줄’, ‘주식주문 줄’ 식으로 몇개의 줄이 주욱 늘어서 있었던 거죠. 영업창구 직원도 시장이 엄청나게 커진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20여명이나 됐죠. 시세를 고객이 직접 확인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89년 온라인시스템 구축을 시작해 92년까지 다 마쳤습니다.
우선 사내업무전산망과 증권시세정보망을 통합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1단계 작업이었죠. 그때 분산처리시스템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점 영업직원들이 아주 단순한 단말기로 본사 시스템에 접속해 주가를 비롯한 모든 자료를 조회하고 있었습니다.
유닉스나 PC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이걸 서버/클라이언트 시스템으로 바꿨습니다.
각자의 PC에 트레이딩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뒤 필요한 정보만 그때 그때 내려받도록 해 증권사 서버의 부담을 크게 줄인 거죠. 3년 동안 15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 개인투자자의 사이버거래가 합법화되기 8년 전, 당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마치 예언과도 같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사이버거래에 대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서버/클라이언트 시스템은 폭증하는 사이버거래를 수용하면서도 일정한 속도와 역동성을 유지하기에 꼭 들어맞아 결국 업계의 표준이 됐다.
사내업무전산망과 증권시세정보망을 통합한 시스템은 사이버거래 고객들이 대신증권 직원과 똑같은 수준의 증권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게 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단 1원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되는 증권거래시스템 구축을 위해 착수한 다음 작업은 무엇이었을까? 2단계 작업은 독자적 미들웨어 개발이었습니다.
서버의 정보를 전 지점의 단말기로 전달하는 과정을 중개하는 미들웨어를 구입하려고 하니 50억원 이상의 투자비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들인다 해도 증권거래처럼 다양한 사건과 복잡한 거래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죠.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기에 91년 직원들과 함께 미들웨어를 수입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알려줄 수 없어 수정할 때마다 개발자를 불러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결론내리고는 모텔로 돌아가 밤을 새워 100쪽짜리 프로그램 설계도면을 만들었습니다.
직원 3명을 규합해 개발작업에 들어가 4년 만에 미들웨어를 완성했어요. 이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라 할 수 있죠. 여기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한 화면으로 통합할 수 있는 툴을 덧붙였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주식, 수익증권, 선물 등 모든 상품을 한곳에서 거래할 수 있는 ‘종합계좌’를 도입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죠. 96년에는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쏟아지는 리서치 자료들을 모두 HTML로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HTML 작성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해 1시간 정도 추가작업이 필요했죠. 성가신 일이었지만 연구원들이 묵묵히 따라줬습니다.
결국 다른 증권사보다 좀더 빨리 자료를 올릴 수 있게 됐죠. > 97년 사이버거래가 시작될 때, 대신증권은 이런 사전작업 덕분에 남들보다 훨씬 앞선 출발점에 섰다.
하지만 99년 초까지도 사이버거래 비중은 전체의 10%대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에서 사이버거래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온라인증권사 E*트레이드를 인수한 것이 96년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흐름이 올 테니 사이버거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오지 않는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사이버거래 비중이 초기에 폭발적으로 늘지 않자, 이 정도에서 투자를 중단하자는 사람도 많더군요. 99년 5월에야 올 게 왔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때를 ‘메이데이’라고 부릅니다.
대형 증권사들이 사이버거래 수수료를 오프라인 수수료의 절반인 0.25%로 내렸죠. 그리고 그 다음달에는 다시 절반으로. 결국 오프라인 수수료의 4분의 1 가량인 0.13% 수준으로 수수료를 낮췄습니다.
이러면서 사이버거래가 전체 증권거래의 50%를 넘어섰습니다.
대신증권의 경우 지금은 80%가 넘습니다.
정말 폭발적이었죠. 저는 99년 한해 동안 시스템을 8배로 키웠습니다.
2배씩 세번을 키운 셈인데, 한번 결제하고 장비가 들어올 때면 다시 기안을 해야 할 정도였죠. 네번째 시스템 증설 서류에 사인하려는 순간, 주식시장이 고꾸라지면서 거래량이 줄어들었습니다.
> 그는 끊임없이 시스템 구축만 강조했다.
대신증권만의 특별한 마케팅 전략은 없었을까? 마케팅 말입니까? 그건 돈입니다.
한 증권사에서 수수료를 내리면 다른 증권사들도 따라 내립니다.
무선증권거래 단말기를 한 증권사에서 공짜로 나눠주자 모두들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기업문화나 인프라는 다릅니다.
오래 가죠. 새로 온라인 사업에 뛰어든 증권사가 기존 판도를 뒤집으려면 두배 세배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대신증권이 전산인력이 1.5~2배 많은 다른 대형 증권사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비결도 미리 투자했다는 데 있습니다.
> 사이버거래는 단타매매가 극성을 부리고 허수주문과 작전이 판치는 어지러운 증권시장의 원흉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역마다 지점을 두고 영업을 해오던 증권사 입장에서는, 기존 조직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자충수일 수도 있다.
게다가 수수료가 워낙 낮아 증권사의 제살깎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많다.
그에게는 이런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논리가 있을까? 부작용이 많다고요? 워낙 증권시장 규모가 커지고 관심을 많이 끌다보니 부각된 것일 뿐, 실제로는 순작용이 훨씬 큽니다.
정보 유통이 훨씬 자유로워졌고, 불특정 다수가 시장을 움직이게 돼 시장이 안정화됐습니다.
정보가 넘치니까 꼼꼼히 공부하는 개인투자자들에게는 훨씬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됐죠. 영업직원이 사라지느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업 분야는 도구가 바뀌면서 훨씬 광범위해집니다.
메신저로 실시간 정보를 전해주면 10~20명의 고객을 지원하던 영업직원 1명이 100~200명까지 동시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신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의 동시접속자가 5만명입니다.
500명을 수용하는 100개 지점을 절약하는 셈이니 증권사로서는 엄청난 비용절감입니다(현재 전국의 대신증권 지점 수가 100여개다). 이것만 봐도 사이버거래가 증권사에 득이라는 게 입증되지 않습니까? > 엔지니어로서는 아주 낯선 증권판에 와서 반평생을 보낸 그에게 짐짓 물어봤다.
IT기업에서 일했다면 ‘주류’였을 텐데, 증권사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아니냐고. 사이버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증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일선 지점 영업직원을 전방, 전산담당자나 애널리스트, 홍보실 직원을 후선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객들이 직접 대면하는 것은 영업직원이 아니라 홈트레이딩시스템입니다.
그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는 실시간 증권정보입니다.
후선이 전방으로 나서게 된 거죠. 증권사에서 IT는 더이상 후선이 아닙니다.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최전방입니다.
게다가 증권은 전자상거래의 꽃입니다.
증권에서의 전산이 은행에서보다 7배나 더 어렵다는 보고서도 있죠. 현존하는 e마켓플레이스 가운데 이만큼 역동적이고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은 없을 겁니다.
인터넷 혁명의 최첨단에서 일하는 영광을 얻은 셈이죠. 무엇보다 프로그래머에게 가장 보람있는 일은 역시 프로그램을 짜서 많은 고객들에게 직접 선보이는 일 아니겠습니까?
한국 닷컴들에게 고함
“전자상거래는 여전히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3~4년 안에 고객들의 체형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사이버쇼핑몰에서 가상 의상실을 하겠다는 사업가가 나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의 체형과 똑같은 아바타에게 수천가지의 옷을 입혀보고 고를 수 있죠. 아마 그 의상실은 명동이나 동대문시장처럼 북적거릴 겁니다.
” 하지만 그는 그런 황금시대를 진정으로 향유하는 기업은 현재의 닷컴기업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먼저 시작하는 것과 폭발하는 시장을 감당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짧은 기간에 브랜드를 키웠지만, 그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면서 물류시설을 갖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스앤드노블은 어떻습니까? 처음엔 아마존에 밀리는 듯했지만, 큰 돈 투자하지 않고도 온라인쪽을 대등하게 확충하고 있지 않습니까?” 300여개 지점을 거느린 찰스슈왑이 온라인증권사 E*트레이드를 제치고 사이버거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자상거래업체 몇군데를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정말 원시적이더군요. 시장이 폭발할 때 그 폭발력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때가 오면 1천여개 종목에 대한 주문을 하루 50만건까지 처리할 수 있는 곳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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