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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벤처캐피털 '총알'이 없다
[머니] 벤처캐피털 '총알'이 없다
  • 이정환
  • 승인 2000.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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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조합 결성 안되고 정부지원도 유명무실… ‘사실상 개점휴업’ 속출
‘벤처캐피탈 대란설’의 실체는 무엇일까. 올해 안에 상당수 벤처캐피탈이 문을 닫거나 M&A된다는데. 자본금만 까먹고 사실상 껍데기가 된 벤처캐피탈이 수두룩하다는데. 벤처기업의 젖줄이었던 벤처캐피탈, 과연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일까.우선 민간투자조합의 결성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에 결성된 벤처투자조합은 총 101개, 6942억원에 이르는데 이중 71개가 지난 4월 이전에 결성된 것들이다.
벤처캐피탈이 조성한 민간단독조합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한달 동안 23개(1716억원 규모)가 신설되는 등 한참 호황을 맞았으나 5월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5월에는 8개, 6월에는 5개가 신설됐을 뿐이다.
동원창업투자의 장남준 투자관리팀장에 따르면 “기업자금은 씨가 말랐고 일반투자자들은 1억원 미만의 소액투자자들뿐”이라고 한다.
사실상 신규 투자조합의 결성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지명도가 없는 신생 벤처캐피탈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벤처캐피탈 가운데 상당수가 자본금을 소진하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코스닥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장외시장에서는 벤처캐피탈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우량주식들이 헐값에 거래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창업지원자금을 풀어 벤처캐피탈 살리기에 나섰다.
제조업 분야에 60% 이상을 투자하는 것을 조건으로 민간투자조합에 전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18개 투자조합에 출자된 정부 지원자금은 총 1745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청은 벤처캐피탈의 자금난이 계속될 경우 460억원 가량을 추가로 출자해 총 200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결성할 계획이다.
또한 국내에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싱가폴·이스라엘 등의 외국인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출자한 투자조합은 투자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나 부품소재산업, 생명공학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조합이 주를 이룬다.
중기청 벤처진흥과의 김성섭 사무관은 “그동안 인터넷과 정보통신분야에 치중해 있었던 민간투자재원의 편중현상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기반이 취약한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정부지원 실효 없다” 그러나 정부의 발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탈의 자금고갈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의 지원규모가 30% 이하에 불과한데다 제조업 부문에 6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고약한’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나머지 70%를 조달하는 일도 대부분 벤처캐피탈에게 여전히 커다란 부담이다.
특히 제조업에 60% 이상을 투자한다는 조건으로는 민간자금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시장의 관심이 제조업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투자자들이 제조업에 60%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투자조합에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한 것이다.
벤처캐피탈의 반응도 썰렁하기만 하다.
일단 제조업 분야에 노하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유망 제조업체를 발굴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창창업투자의 이태규 책임심사역은 “웬만큼 기술력이 있다는 업체는 이미 자금이 들어가 있고 신규로 발굴하자니 투자위험이 너무 크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무한기술투자의 전형진 팀장은 “정부야 벤처기업 지원하는 셈치고 던지면 그만이지만 투자수익이 목적인 벤처캐피탈로서는 전망없는 신생 제조업체에 무턱대고 따라 들어갈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2개의 제조업 전문 투자조합을 신규로 결성한 무한기술투자는 기존의 중견사업자들의 계열 회사를 선별해 안정적으로 투자한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인지도와 자금력에서 앞서있는 무한기술투자는 비교적 여유가 있지만 다른 벤처캐피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포트폴리오의 원칙을 무시하고 한정된 자금을 제조업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나마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벤처캐피탈은 자금과 포트폴리오에 여유가 있는 몇몇 업체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대란은 없다 하지만 한편 항간의 우려와는 달리 벤처캐피탈 대란설은 설득력이 빈약해 보인다.
벤처캐피탈협회의 이부호 이사는 “신생 벤처캐피탈 가운데 일부가 운전자금의 고갈로 업무공백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떠도는 소문처럼 연쇄부도가 일어난다거나 대규모 M&A가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벤처캐피탈은 보유자산의 평가액 산출이 어려운 관계로 완전히 부도가 나거나 보유지분을 전액 현금화하지 않는 이상 업계간 M&A가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최소 100억원의 자기자본으로 운영되는 벤처캐피탈의 특성상 무리하게 차입금을 들여오지 않는 이상 도산할 위험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코스닥 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기존의 투자이익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고 자금이 물려 있는 벤처캐피탈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올들어 투자조합을 결성한 벤처캐피탈은 전체 140개의 3분의 1수준인 47개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 2는 외부의 자금조달 없이 자기자본을 까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빈익빈부익부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대란까지는 아니라도 진퇴양난의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벤처캐피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배후지원을 약속하면서 제조업에 투자하라고 하지만 그나마도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설령 자금이 있어도 투자할 업체가 마땅치 않다.
이래저래 벤처캐피탈에게는 힘겨운 여름이다.
제조업에 투자하라고?
정부는 제조업 전문 민간벤처투자조합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벤처캐피털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제조업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데다 투자할 업체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중기청은 벤처캐피털의 참여가 예상외로 저조하자 조합의 규정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부품·소재 등 특정 산업에 한정했던 투자목적을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하고 정부출자지분에 대해 목표수익률을 낮추는 한편 인센티브를 강화해주기로 했다.
매력적인 조건이기는 하지만 시중자금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제조업의 태도도 못마땅하기만 하다.
기업공개의 인식이 부족하고 엉터리 IR(기업투자설명회)에 툭하면 100배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정보통신과 인터넷만이 대안이 아니다, 벤처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 균형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말들은 많지만 지금은 섣불리 제조업에 뛰어들기 어려운 시점이다.
벤처캐피털업계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고, 없는 자들은 시장의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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