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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삼양식품 옛 영광 되찾을까?
[비즈니스] 삼양식품 옛 영광 되찾을까?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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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대표 브랜드로 육성 팔 걷어… 틈새시장 공략 점유율 높이기 온힘 '이 맛이 사나이를 울리는구나.' 권투 링으로 변한 식탁에서 탤런트 주현이 라면 한 젓가락을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들이며 황홀한 표정으로 말한다.
언뜻 보면 옛날 농심의 신라면 광고를 복원시킨 듯한 느낌이다.
주현도 바로 신라면을 광고했던 모델이고, 광고 카피도 옛날 그대로다.
하지만 이어지는 양동근의 말로 광고는 기막히게 반전된다.
'그거 수타면인데요.' 삼양식품이 10월부터 새로 선보이기 시작한 ‘수타면’의 TV 광고는 경쟁 타깃이 농심의 ‘신라면’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15년 동안 라면시장의 황제로 군림해온 신라면에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뜻이다.
실제 삼양식품은 ‘수타면’을 새로운 대표선수로 키우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1999년 10월 처음으로 수타면을 선보인 뒤 2년여 동안 줄기차게 마케팅을 멈추지 않는 것만 봐도 정성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올해 9월부터는 ‘수타’를 핵심 브랜드로 하는 하위 브랜드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봉지라면인 ‘수타짜장’과 용기면(사발면)인 ‘해물맛 수타큰컵’, ‘수타김치찌개’, ‘수타육개장’ 등 4종류의 ‘수타면’을 새롭게 출시한 것이다.
사실 삼양식품은 그동안 수많은 라면 브랜드를 만들어냈지만 창업 당시의 삼양라면 이외에는 딱히 대표 상품이 없었다.
39년 동안 브랜드를 지켜온 삼양라면이 대단하긴 하지만, 뒤집어보면 신제품 가운데 소비자들의 머리에 각인시킬 만한 히트작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에 비해 농심은 ‘안성탕면’과 ‘신라면’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라면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구축해왔다.
삼양식품 김봉훈 영업전략팀장은 '앞으로 수타면을 삼양라면에 버금가는 주력 브랜드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야심을 불태운다.
수타면 3개월 만에 히트상품으로 삼양식품에서 수타면에 이렇게 애착을 갖는 것은 그 탄생이 조금 ‘비극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삼양식품은 89년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이른바 ‘공업용 우지’ 사건으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8년을 넘게 지리한 법정싸움을 벌인 끝에 97년 8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곧이어 IMF 위기가 닥친다.
계열사들에 대한 무리한 지급보증이 불씨가 돼 98년 2월 회사가 부도처리된 것이다.
98년 2월부터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한명인 전인장 사장이 지휘봉을 넘겨받으면서 화의신청, 구조조정, 내핍경영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한 대수술이 시작된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하는 데는 획기적인 신제품을 통한 매출 증대만한 게 없다.
수타면은 그렇게 삼양식품의 스러진 영화와, 옛 영광을 재현하자는 삼양식품 직원들의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껴안으며 태어났다.
이 때문인지 ‘수타면’은 삼양식품 직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가 지나야만 라면이 히트상품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런데 ‘수타면’은 시판한 지 3개월만에 히트상품의 반열인 월 30만박스를 훌쩍 넘어섰다.
봉지라면이 히트를 치면서 지난해 10월부터는 용기면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현재도 수타면은 봉지라면과 용기라면을 합쳐 월 40만박스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40년 전통의 브랜드인 삼양라면이 월 50만박스 정도 나가는 것에 비춰보면 수타면이 삼양식품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다.
김봉훈 팀장은 '수타면과 삼양라면이 라면 매출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수타면의 효자노릇 탓인지 전체 라면시장이 99년과 2000년에 연율 0.1%의 저성장을 보인 데 비해 삼양식품은 5~6% 안팎의 비교적 높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LG투자증권 정재화 책임연구원은 '삼양식품의 라면시장 점유율이 99년 10.9%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11.2% 정도로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삼양식품과 오뚜기가 라면시장에서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연말이면 삼양식품의 2위가 굳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삼양식품 관계자들은 수타면의 이런 성공이 새로운 시장접근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타면은 이름에서 보듯이 라면 제품의 두축인 ‘국물 맛’과 ‘면발’ 중 ‘면발’을 핵심 마케팅 전략으로 삼고 있다.
신라면이 이미 ‘매운 맛’으로 라면시장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국물 맛을 강조한 라면은 성공 가능성이 적었다.
기껏해야 신라면의 아류 정도로 평가받을 게 뻔했다.
삼양식품은 이참에 그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스프맛 경쟁에서 벗어나 면발 경쟁으로 방향을 돌리자고 결론을 모은다.
당시 ‘수타 짜장’의 인기가 치솟는 등 ‘면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런 결정을 도왔다.
문제는 그 많은 라면을 손으로 반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면발을 차별화시키냐는 거였다.
김 팀장은 '반죽을 압연할 때 기존 평롤러 대신 굴곡 롤러를 사용해 면대의 결방향이 사방으로 골고루 퍼지게 했다'고 말한다.
칼국수를 밀 때 쫄깃쫄깃한 맛을 내기 위해 여러번 밀대로 미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수타면은 확실히 ‘다른 맛’을 냈다.
하지만 수타면의 성공이 삼양식품의 옛 영광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삼양식품은 갈 길이 멀다.
먼저 67%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농심과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라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분식점은 아직도 신라면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15년 역사의 고참을 물리치기에는 아직 뒷심이 부족한 것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들도 이 점을 인정한다.
김 팀장은 '라면의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대찌개나 김치찌개 등 찌개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물 맛이 안 되면 면발로 승부하라 빠르게 바뀌고 있는 라면시장 흐름에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제 라면시장은 양적으로는 정체상태에 들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1년에 한사람이 소비하는 라면은 82개로 99년 이후 거의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고품질, 고가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위해 새로운 투자를 한다는 게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다소 벅찬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계열사들에 대한 과다한 지급보증과 거의 500%에 이르는 부채비율 등 재무안정성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5~6년 동안 화의채무를 갚아나가는 데 들어가는 과다한 금융비융이 삼양식품의 도약을 붙잡고 있다.
사실 삼양식품이 지난해와 올 상반기 동안 장사를 못한 건 아니었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2041억원, 영업이익은 205억원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998억원의 매출에 9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거의 10%에 이르는 우수한 영업이익률인 것이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61억원, 올해 상반기에는 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번 돈을 그대로 금융비용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증권 김윤정 연구원은 '강원도 원주의 골프장인 파크밸리 매각 등이 순조롭게 진행돼 차입금 규모를 줄이는 게 삼양식품의 최대 과제'라고 말한다.
삼양식품이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큰 산을 넘어 추격의 불을 댕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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