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커버스토리]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하라
[커버스토리]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하라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속되는 위기설에도 ‘불황 버티기’엔 문제없어… 새로운 성장엔진 찾기가 더 큰 과제

국내 최고 그룹 ‘삼성’에도 위기설이 닥쳤다.
세간에 떠돌고 있는 흉흉한 소문의 진상은 이렇다.
IMF 위기에도 삼성을 끄덕없이 떠받쳐줬던 대표적 ‘돈줄’인 전자와 금융그룹,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수익 감소로 휘청이게 되면서 국내외 경기침체의 여파가 어김없이 삼성그룹에도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명실공히 국내 1위의 기업 인지도에다 세계 브랜드 지명도 42위의 대형 그룹 삼성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소식은 누가 듣기에도 의미심장하다.
2000년 한해 동안 삼성이 납입한 세금만 6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가 조세예산의 7.5%에 달하는 액수다.
이런 ‘삼성’이 위기라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상상하기 어렵다.
‘삼성의 위기’는 분명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삼성 위기설의 근거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금융권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올해 3분기에 첫 영업적자가 예상되며, 삼성생명은 저금리에 따른 역마진 손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반도체 경기가 극적으로 회복되거나 초저금리 시대가 쉽사리 걷히지 않을 전망이어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위기설은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린다.



전자, 3분기 영업부진… 생명, 저금리 ‘몸살’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세간에 유포된 두 업체의 위기설이 삼성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심각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3분기에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측은 분명 충격적이다.
그러나 호황기에 큰 수익을 내고 불황기에 개발과 투자에 집중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해 6조원의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동원 가능한 자금이 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황기 ‘버티기’에 성공하면 자금난에 시달리는 경쟁업체들의 감산과 구조조정으로 반도체 가격 반등시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주식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각 보험사별로 역마진 손실액이 수조원 규모에 이른다는 얘기가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생보사 상품별 평균 유지기간이 4년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구제금융 이후 늘어난 고금리 확정이율 상품이 당장의 자금압박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역마진 손실액 또한 실제 확정금리 상품 비율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힘든 상황에서 이론적 계산에 의해 산출한 추정치에 불과하다.
이미 1천여명의 직원 감축에 나섰다지만 올해 상반기에 2천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낸 상황에서 ‘위기’라고 하기엔 성급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삼성 위기설은 그저 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삼성이 진정으로 부닥친 위기는 현재의 불황과 상관없이, 앞으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미래 전략사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성장사를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성의 경영 이미지는 ‘철저한 시나리오에 의한 관리’로 대표된다.
이는 삼성의 초대 경영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현 삼성그룹의 첫삽을 뜬 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상회’란 무역업으로 삼성의 태동을 알린 이 회장은 국내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하고 인재양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경영자로 인식돼왔다.
냉철하고 빈틈없는 조직관리로 내실 위주의 경영을 펼쳐온 이병철 회장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등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재원을 튼실히 확보해 삼성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하나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삼성그룹에 ‘미래산업 중심의 공격경영’이란 이미지를 덧씌운 두 공신은 2세대 경영인인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다.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는 아무도 섣불리 뛰어들려 하지 않았던 ‘반도체’였다.
원만한 경영 승계를 위해 뭔가 주목할 만한 것을 앞세워야 했던 이건희 회장은 ‘히든 카드’로 반도체를 선택했고, 주변의 회의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초기 삼성그룹의 ‘캐시 카우’(cash cow) 노릇을 했던 전주제지, 신세계, 제일합섬 등을 정리하는 대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그룹 구조를 키우고 정착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그의 선택은 정확했고, 첨단산업 중심의 이미지를 내세운 삼성전자는 93년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부문에서 세계 1위의 입지를 굳힌 이래 지금까지 이 아성을 지켜오고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삼성의 성장은 삼성전자의 성장곡선과 같은 궤도를 달려왔다.


하지만 삼성의 승승장구는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자동차 사업 진출이 삼성의 ‘공격경영’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업계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야심차게 출발한 삼성자동차는 외환위기 직후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다.
자동차 사업에 쏟아부은 금액만 5조원이 넘었다.
삼성은 재정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무엇보다 ‘실패 없는 공격경영’이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자동차의 실패로 비틀거리는 삼성의 ‘공격경영 전략’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이재용 현 삼성전자 상무보를 앞세워 추진했던 ‘e삼성’ 전략의 추락이다.
새천년 벽두에 이건희 회장은 신년사에서 21세기를 ‘디지털 혁명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경영 전 부문에 걸쳐 디지털화에 착수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그룹 전체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수익 창구로 ‘인터넷’을 선택했고, 외아들 이재용씨를 그 중심에 뒀다.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기치를 높이 들고 삼성의 대권을 승계했다면, 이재용씨는 정보화의 깃발 아래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삼성의 차기 리더’로 부상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탄생한 e삼성은 국내외 정보기술(IT) 붐이 가라앉으며 너무도 허무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게다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매입을 둘러싼 이재용 상무보의 탈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e삼성을 통해 경영권 승계와 새로운 수익창구 창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삼성쪽에서는 이재용씨의 인터넷 회사 설립에 대해 “우수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벤처투자가 목적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차세대 삼성을 책임질 ‘황태자’ 이재용의 화려한 등장 시나리오는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 같다.
더불어 수익창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던 삼성의 실험도 현시점에선 무산된 상태다.



자동차·e삼성 잇단 실패로 공격경영 주춤
삼성은 현재 ‘삼성=반도체’란 등식에서 벗어나 반도체를 대신할 새로운 황금알을 모색하면서, 현 조직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대규모 투자보다 투자 효율화에 역점을 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시설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등 기존 시스템 내에서의 효율성 제고에 역점을 두라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라인 증설계획을 포기한 것이나 삼성생명이 단행한 조직구조 개편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위기설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에 이르자, 마땅한 수익창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삼성으로서는 일단 인력 감축과 사업 다변화를 통한 비용 절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이른바 ‘관리체제’에 진입한 것이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경영권 이양은 관리와 공격이라는 두 전략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다시 말해 삼성그룹을 재계 1위로 올려놓은 두 동력은 전자와 금융그룹이 아니라, 치밀한 예측과 검토에 의한 공격적 투자 덕분이라는 얘기다.
1세대 경영에서 강조되던 관리의 전략은 2세대인 이건희 회장 대에 와서 반도체와 자동차로 이어지는 공격적인 승부수로 바뀌었다.
결국 삼성의 위기는 ‘전자와 금융’의 위기에서 촉발됐다기보다 ‘관리와 공격경영’의 위기라는 데서 찾는 게 합당하다.


현재 삼성그룹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치밀한 예측’과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하다.
하지만 ‘공격적 투자’를 실현할 만한 출구로 삼성이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직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삼성은 최근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을 완화하기로 한 정부의 방침과 은행법 개정작업에 발맞춰 서울은행 인수에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이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등 기존의 금융 계열사들과 연계한 금융왕국 구축을 ‘공격적 투자’의 새로운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이 금융을 주력 사업분야로 삼기에는 여러가지 법률적 규제장치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반도체 이후의 삼성이 지향해야 할 ‘약속의 땅’을 발견해내지 못하는 한 삼성은 분명 위기는 위기다.
삼성카드
삼성카드의 돋보이는 성장세
삼성그룹의 ‘젖줄’이라 불리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위기 관리체제’에 돌입했다.
삼성으로선 이들을 대신해 새로운 젖줄을 찾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최근 증권가에는 삼성카드가 삼성의 새로운 젖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996년 이후 완만히 성장해오던 삼성카드는 지난해 돌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97년부터 99년까지 600만~700만명선을 넘나들던 삼성카드 회원 수는 지난해 두배 가까이 되는 1100만명으로 늘어났다.
가맹점 수도 1170개로 99년 대비 39.3% 늘어났으며, 올해 6월말 현재 총 자산은 13조6천억원으로 급성장해 신용카드업계 1위에 올랐다.
총 카드여신이나 연체액을 보더라도 삼성카드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금융감독원의 국정조사 보고 자료에 따르면 LG카드, BC카드 등을 포함한 국내 7개 카드사 중 삼성카드의 연체율이 3.7%로 가장 낮았으며, 총 카드여신은 7개 카드사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장세 덕분에 올해 상반기 삼성카드의 당기순이익(충당금 적립 전)은 지난해 상반기 실적의 2배가 조금 넘는 3050억원을 기록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불황을 모르는 황금알 사업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의 새로운 ‘금맥’으로 떠오른 삼성카드의 상장을 둘러싼 루머가 금융가 일각에서 조용히 퍼지고 있다.
삼성카드가 자사의 지분 56.6%를 보유한 삼성전자의 어려움을 도와줄 ‘구세주’로 떠오른 결과, 다른 카드사들과 달리 상장을 의도적으로 늦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기 하락으로 적자설에 시달리는 삼성전자나 잠재적인 역마진 부담을 안고 있는 삼성생명의 입장에선 자금줄 삼성카드가 공개기업화하는 게 반갑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