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1. TFT-LCD, D램만 할까
1. TFT-LCD, D램만 할까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전자, 사업 다변화로 불황 극복 준비… 반도체 경기 회복되도 고성장 기대는 무리
“반도체 산업은 포커판과 같습니다.
계속 잃다가도 한번에 크게 따는 거죠. 결국 현금을 많이 확보해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유리한 겁니다.
” 대우증권 전병서 연구원은 최근 실적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두고 ‘위기’ 운운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강자는 더욱 빛을 발한다.
반도체 시장이 일단 회복세로 돌아서면, 업계 최강인 삼성전자는 ‘불황 버티기’에 실패한 경쟁자들이 거꾸러지면서 발생하는 반사이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D램 업체들의 버티기 전략이 본격화하고 있다.
자금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투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스티브 애플턴 회장은 마이크론의 올해 6~8월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나 줄었다는 발표가 있은 뒤 “경쟁사가 퇴출될 때까지 출혈경쟁을 감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8월말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현금성자산이 16억7천만달러에 이른다며 ‘버티기’에 자신감을 보였다.



불안한 반도체 산업의 미래
그러나 업계 4위인 인피니온은 벌써부터 자금압박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월25일 도이체방크는 분석보고서를 통해 “인피니온이 향후 1~2분기 안에 자금을 조달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증자를 통해 15억달러를 확보했는데도 인피니온은 감산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동원경제연구소 김성인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불황이 계속되면 우선 일본이 D램을 포기하고, 대만 업체들이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에 나서는 등 등 약한 고리가 먼저 흔들릴 것”이라며 “삼성전자, 마이크론, 하이닉스, 인피니온 등 D램 4강 업체 중 하나가 문을 닫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D램 업계의 감산과 구조조정, 퇴출로 인해 공급과잉이 해소되면 반도체 시장 회복은 그만큼 빨라질 것이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욱 짭짤한 수익을 올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는 다른 어떤 기업보다 ‘버티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6조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순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현재 6조~7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5년 198%에 이르던 부채비율도 현재 47%로 대폭 낮아졌다.
올해 들어 두차례 발행한 회사채 1조원은 자금압박 때문이라기보다 낮은 금리를 활용해 이자부담을 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착실히 빚을 갚고, 나머지는 알뜰하게 쥐고 있는 셈이다.


정보통신부문의 약진도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에 비해 유리한 점이다.
지난해 7조7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은 고가 단말기 수출과 중국 시장 진출 등에 힘입어 올해도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부문의 영업이익이 터지기만 하면, 수조원이 오가는 반도체부문의 영업부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 하더라도, D램에만 목을 매는 경쟁업체들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업계 1위의 프리미엄과 막대한 현금보유력을 바탕으로 버티기에 성공, 다시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까. 사실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것은 D램가 하락으로 인한 단기적 수익률 하락이 아니다.
위기설의 진짜 이유는 결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그 자체다.
최근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고성장 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올 들어 마이너스 27%의 성장률을 나타내는 등 90년대 들어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데 비해 총매출 대비 투자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도 이같은 분석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성인 연구원은 “머지 않아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반도체 시장 주기’가 6개월 정도로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 혁신으로 한개 라인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양이 사업초기에 비해 크게 늘었고, 공장을 짓고 라인을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짧아졌기 때문이다.
등락주기가 단축되면 개발·투자비용을 뽑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따라서 순익도 줄어든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지난 9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보고서를 통해 “향후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30~70%에 이르는 고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품목을 다양화하고, 차세대 제품 시장 선점에 주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호황·불황 경험한 백전노장이 없다
결국 삼성전자를 옥죄고 있는 진짜 위기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를 대신할 새로운 효자상품에 대한 비전이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반도체 시장의 잿빛 미래에 대해 삼성전자측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삼성전자는 외환위기와 반도체 시장 불황이 동시에 닥쳤던 지난 1997년 수익성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매출구조를 혁신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38%, 통신부문이 23%, 디지털 미디어부문이 29%을 차지해 반도체 의존도가 비교적 낮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삼성전자가 이번 불황기에 경쟁업체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요인이 됐고, 삼성전자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부문을 중심으로 한 기타 사업부문이 마진이 높은 반도체부문의 수익률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부문에서 D램을 대체할 차세대 주력품목이 마땅치 않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삼성전자측은 틈만 나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로 진출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투자총액 5조7천억원 중에서 메모리 분야에 투자한 액수는 3조4천억원에 달하지만 비메모리 분야에 투자한 액수는 1천억원이 채 안 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지금부터 비메모리 분야에 집중 투자해도 선발 업체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삼성전자가 반도체부문에서 차기 주력품목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지난해 1조2천억원을 벌어들인 TFT-LCD 정도다.


대우증권 전병서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면서 의미심장한 지적을 한다.
지난 20년 동안 삼성전자를 거쳐간 반도체 담당 임원 중에서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어본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삼성전자를 거쳐간 임원들은 불황기가 닥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체되곤 했다”며 “경기 변동에 대한 ‘감’을 익히고 불황기에도 소신있게 투자하려면 불황과 호황을 두루 겪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도체 그 이후에 대한 삼성전자의 복안은 과연 무엇일까. 있기는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왠지 자신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성공한 ‘고급화 전략’
삼성전자의 새로운 돌파구 중 하나는 거대시장 중국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컬러 모니터와 MP3플레이어, 휴대전화 단말기 등을 판매해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올 들는 36억달러 정도로 매출이 신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성과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대부분의 제품을 시장 평균가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고품격 디지털 기업’의 이미지를 심은 것이 주효했던 결과다.
배우 안재욱을 모니터 광고에 활용해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때마침 불어닥친 한류 열풍을 적절히 활용한 것도 매출 신장에 한몫 거들었다.
반도체부문도 본격적인 중국 공략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9일 상하이에 반도체 메모리 판매법인을 설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불황의 늪에 빠진 세계 다른 시장과 달리 중국의 반도체 시장은 올해도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삼성전자는 현지법인을 통해 IBM 등 중국에 진출한 PC 업체와 통신네트워크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최근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세계 최대의 통신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표준을 무엇으로 결정할 것인지 여부다.
중국 신식사업부는 CDMA와 일본이 개발한 WCDMA(비동기 차세대이동통신), 그리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TD-SCDMA(시분할 동기방식)를 두고 한창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우선 내년 초에 있을 CDMA 2차 장비입찰에 주력할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에 있었던 CDMA 1차 장비입찰로 진출한 중국 동부 5개 연안에서의 시범 서비스는 이달 중순부터 시작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