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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삐삐’의 몰락, 열흘 붉은꽃 없다
[IT타임머신] ‘삐삐’의 몰락, 열흘 붉은꽃 없다
  • 유춘희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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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는 용도로 주로 쓰던 무선호출기는 독특한 신호음 때문에 ‘삐삐’라고 불렀다.
90년대 중반 한국 젊은이들은 ‘삐삐 신드롬’에 빠진다.
촌각을 다투는 전문직 종사자의 필수품이던 삐삐는 지금의 휴대전화처럼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연인끼리 차고 다니는 ‘애정용’에서 중고생 자녀에게 강제로 채워주던 ‘과잉보호용’까지 용도가 다양했다.
호주머니나 핸드백에서 울리는 삐삐 소리는 한때 ‘잘 나가던 아이들’의 상징으로 일종의 신분 과시 도구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82년 12월.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전신)이 서울 지역에서 235명을 모아 시작했다.
가입자 대부분은 경찰이나 정보기관 요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가입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92년 제2사업자가 서비스를 시작하기 직전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93년 7월 200만명에 이른다.
100만명을 넘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15개월 만에 2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96년 1000만명을 넘더니 97년에는 1500만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휴대전화 PCS는 삐삐의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다.
발신 전용 시티폰이 나왔을 때도 끄떡하지 않던 삐삐는 휴대전화에 홀린 사람들에게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쌍방향통신의 매력이 무선호출의 영화를 하루 아침에 꺾어버린 것이다.
단말기를 거의 무료로 주다시피 한 3개 PCS 사업자와, 영토를 지키려는 011와 017의 경쟁은 사람들의 입맛을 휴대전화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삐삐가 휴대전화에 패한 것은 사업자의 판단착오 탓이다.
사업자들은 최고 호황기인 97년까지도 휴대전화가 대중화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휴대전화가 삐삐보다 10배나 비싸고, 수신율도 형편없어 삐삐의 아성은 굳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휴대전화업체들은 전화를 공짜로 주었고, 98년 말에는 삐삐의 강점이던 문자메시지 기능까지 첨가했다.
수신율도 95% 이상 좋아졌다.
삐삐나 시티폰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지난 2월27일 무선호출 서비스의 선두주자이자 마지막 보루였던 SK텔레콤이 이 사업을 접었다.
지난해 나래앤컴퍼니·전북이통·제주이통·새한텔레콤 등이 이어달리듯 폐업을 선언해 이제 남은 대형 사업자는 서울이통과 해피텔레콤, 인텍크텔레콤밖에 없다.
이들도 언제 마음이 돌아설지 불안한 상황이다.
무선호출은 서비스 사업자에게는 천덕꾸러기가 됐고 이용자에게는 철지난 서비스로 낙인찍혔다.
무선호출은 통신서비스로서 완전히 의미를 잃었다.
업무 특성상 삐삐가 적합한 의사나 군인, 증권투자자들 사이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삐삐를 고집하는 젊은이들이 없지는 않다.
받기 싫은 전화도 받아야 하는 휴대전화와 달리 음성이나 번호만 전해지기 때문에 구속성이 없으며, 내가 보낸 메모가 남겨졌을까 설레는 기다림의 미학이 삐삐에만 있다는 ‘참으로 독특한’ 이유들이 삐삐의 목숨을 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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