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e비지니스] 인터넷 키오스크는 고철덩어리?
[e비지니스] 인터넷 키오스크는 고철덩어리?
  • 이정환
  • 승인 2001.04.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청난 설비투자 불구 무용지물…색다른 서비스·콘텐츠 절실
길거리에서 ‘웹텔’을 만난 적이 있는가. 동전만 넣으면 공중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800만원짜리 키오스크(공중인터넷 PC). 초박막액정표시장치를 쓴 터치스크린에 특수 강화유리를 덧씌우고 초고속인터넷까지 연결했다.
모니터를 ‘틱틱’ 몇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e메일에 간단한 문서작성까지 가능하다.
케이디네트워크 www.kdnetwork.co.kr는 이 키오스크를 서울 전역에 1천대 가까이 설치했다.
홍보기간이라 지금은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케이디네트워크는 전화비만 달마다 3천만원씩 물고 있다고 한다.


<닷21>은 가장 사용자가 많다는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로비에 나가봤다.
4월4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시간 동안 웹텔을 사용한 사람은 모두 6명. 전화를 쓰는 사람이 네명,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두명이었다.
사용시간은 다 해서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웹텔을 그럴듯한 장식품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무료 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습게도 바로 옆에 놓인 공중전화 앞에는 두세명씩 줄을 서 있었지만 웹텔은 내내 버려져 있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키보드가 없어서 불편해요. 이걸로 어떻게 메일을 보냅니까.” 재미삼아 툭툭 두드려보는 사람은 가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그쳤다.
사용하기 불편해 사용자 외면 케이디네트워크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엄청난 사업을 저질렀을까. 800만원짜리 시스템이 타산을 맞추려면 도대체 무슨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고 어떻게 돈을 벌어들여야 할까. 고작 1분에 몇십원하는 전화비나 인터넷 사용료만으로는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을 텐데.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광고 수익도 크게 기대하지 않아요. 뭔가 색다른 서비스가 필요하겠죠.” 케이디네트워크 장진수 팀장의 설명이다.
케이디네트워크는 10월 무렵에나 그 색다른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어떤 내용의 서비스인지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웹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무료 서비스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시스템의 수명이 길게 잡아 5년이라면 대략 하루에 5천원 이상 수익이 나야 겨우 투자비용을 건질 수 있다.
지금처럼 한시간에 두명 정도가 이용한다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케이디네트워크의 자신감은 500억원의 자본금에서 비롯할지도 모른다.
누가 이들처럼 용감하게 800만원짜리 시스템을 1천대나 깔 수 있는가. “어차피 키오스크는 큰 흐름입니다.
머지 않아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파고들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제대로 사업을 벌일 수 있겠죠.” 케이디네트워크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다.
같은 시간 서울역 매표소 앞. 유가정보통신 www.yougar.co.kr이 만든 키오스크인 ‘인터넷게이트’가 멀뚱하니 서 있다.
인터넷게이트는 멀리서 보면 그냥 캔커피 자판기처럼 보인다.
키보드가 없는 대신 사이트 로고가 그려져 있는 버튼을 누르면 바로 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다.
접속은 편리하지만 마우스 역할을 하는 트랙바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려면 신경을 한참 곤두세워야 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버튼을 눌러 글자를 입력할 수도 있다.
조사 결과 세시간 동안 인터넷게이트를 사용한 사람은 모두 15명. 사용시간은 모두 1분 안팎이었다.
2분 넘게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다들 버튼을 툭 눌러보고 마우스를 조금 움직여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유가정보통신 관계자는 인터넷게이트의 제작원가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특별히 비싼 부품을 사용하지 않은 걸로 봐서 제작원가는 보통 펜티엄PC 수준보다 조금 비싼 300만원 안쪽일 것으로 보인다.
유가정보통신은 41개 전철역에 모두 100대의 인터넷게이트를 설치했다.
유가정보통신은 원래 버튼에 올라 있는 웹사이트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할 계획이었다.
처음 이 사업을 계획했던 98년만 해도 한참 인터넷 사업이 뜨고 있었고 이러한 사업모델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3개월의 홍보기간이 지났는데도 광고 수주로 이어지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냥 무료로 올라 있는 업체들도 많다.
서울 시내 전철역 곳곳에서 고장난 인터넷게이트가 발견된다.
버튼이나 트랙바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예 화면이 뜨지 않는 곳도 있다.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라는 창이 하루 종일 떠 있는 곳도 있다.
특수 목적의 키오스크만 생존할 듯 압구정동 정준헤어에틱에 가면 조은넷 www.joun.net에서 만든 키오스크가 두대 놓여 있다.
일반 PC와 똑같은데 동전을 넣어야 작동이 된다는 점이 다르다.
키보드에 마우스까지 달려 있다.
이용료는 7분에 100원씩인데 머리를 자르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로 인터넷을 이곳저곳 뒤지기에 좋다.
메일을 확인할 수도 있고 배틀넷에 들어가 ‘스타크래프트’를 한판 때릴 수도 있다.
조은넷은 이 150만원짜리 키오스크를 미용실, 편의점, 호텔 등에 24개월 할부로 판매한다.
할부금에 초고속인터넷 사용료와 이런저런 유지보수 비용까지 더하면 한달에 대략 11만원 정도가 든다.
7분에 100원씩이라면 하루 네시간 정도는 써야 타산이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날 세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사용한 사람은 모두 6명, 사용시간은 2시간10분 정도였다.
정준 원장은 한달 수입이 15만원 가량 된다고 밝혔다.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남는 장사다.
뱅뱅사거리 앞 황하사우나에도 조은넷의 키오스크가 들어가 있다.
사우나를 때리고 나와 못다한 회사 업무를 마저 처리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조은넷의 키오스크는 가격이 싼데다 할부 방식을 채택해 쉽게 시장에 파고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컴퓨터를 사는 셈치고 키오스크를 할부로 들여놓는 것이다.
공공장소지만 한데는 아닌 곳,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간단한 업무까지 볼 수 있는 곳에 많이 들어간다.
뉴월드호텔 로비에 가면 팝컴네트 www.popcom.net가 만든 인터넷 화상 면회소가 있다.
팝컴네트는 군대간 아들을 인터넷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국방부와 4년 동안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며칠 전에 e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하는 불편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아들의 검은 얼굴을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볼 수 있다면 썰렁한 전화통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팝컴네트는 1분에 88원씩 요금을 받는다.
키오스크 사용료는 또 별도다.
팝컴네트는 지금까지 800대의 키오스크를 군부대에 집어넣었는데 지역마다 대리점을 모집하는 방법을 썼다.
대리점 사업자가 몇대의 키오스크를 사서 들어오면 면회가 이루어질 때마다 수익을 6:4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팝컴네트로서는 직접 위험부담을 떠안지 않으면서 빠른 시간에 많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초고속인터넷이 들어가지 않은 군부대가 많은데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들이 많아 사용 실적은 많지 않다.
이날 뉴월드호텔에서는 낮시간이라 그런지 세시간 내내 사용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한때 하고 말 장사가 아니니까요. 당장 실적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키오스크가 아니라 특수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키오스크만 살아남게 될 겁니다.
” 박동규 팝컴네트 전략기획팀장의 얘기다.
돈 안되는 키오스크에 가장 앞장서는 쪽은 아마도 관공서들일 것이다.
강남구청은 2천만원짜리 민원서류를 발급해주는 키오스크 62대를 동사무소마다 집어넣었다.
150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설비 투자 비용은 모두 지한정보통신 www.bigcall.com이 댔다.
지한정보통신은 광고를 유치해 타산을 맞출 계획이었지만 기대를 훨씬 밑돈 것으로 알려졌다.
신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등본 따위는 뗄 수 없고 토지대장과 자동차등록원부, 토지이용계획서 등만 된다.
62개 키오스크에서 발급되는 서류는 하루 평균 200장. 기계 한대에 두장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민원인들은 아직도 창구로 직접 찾아가는 걸 더 편리하게 생각한다.
상황이 이러니 광고가 들어올 턱이 없다.
강남구청은 오는 6월까지 3억원을 들여 키오스크에 지문인식시스템을 덧붙일 계획이다.
신분확인이 가능하고 주민등록등본까지 뗄 수 있게 되면 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지만 강남구청의 주장에 따르면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해마다 220만여건에 달하는 민원서류 가운데 절반 이상을 대체하고 220억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 “이제 공중전화를 하는 것처럼 거리와 백화점, 관공서, 공항 등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해 정보고속도로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늘 키오스크의 성장성을 이야기해왔다.
키오스크는 박물관의 도우미 누나와 도서관 사서 누나를 몰아냈고 이제 길거리 공중전화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말한 키오스크 전성시대는 아직도 먼 듯하다.
도우미 누나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키오스크에게 물어보려면 버벅거리는 터치스크린과 한참을 싸워야 한다.
엄청난 비용을 들인 키오스크가 외면받고 고철덩어리로 전락하는 이유다.
이곳저곳에 키오스크가 들어서고 있지만 키오스크로 돈을 벌었다는 회사는 많지 않다.
“일하려면 집이나 회사에서 하지 누가 길거리에서 하겠습니까. 키오스크는 어차피 잠깐 머무르는 1~2분 동안만 필요한 겁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한 거죠. 키오스크는 이를테면 매체입니다.
” 미디어솔루션 www.mediasolution.co.kr 임용재 사장의 이야기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다.
날씬하고 세련된 키오스크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지만 죄다 머릿속을 텅텅 비워놓고 있을 뿐 정작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고철덩어리들을 치워내고 머릿속을 채울 때다.
키오스크, 외형보다 내실을
국내 키오스크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솔루션은 한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확실하지 않은 사업에는 결코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키오스크를 가장 많이 만들어 파는 회사가 키오스크의 사업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겠다는 회사나 기관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만들어서 팔기에도 바쁘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덕분인지 미디어솔루션은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5%에 이른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세배 가까이 늘어난 25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솔루션의 이같은 원칙은 키오스크로 사업을 하겠다는 많은 다른 업체들과 비교된다.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어가면서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가는 결국 제풀에 넘어지기 십상이다.
키오스크는 결국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게을리하면서 외형과 몸집에만 신경을 쓴 업체들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뜯어놓고 봐도 키오스크는 PC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드웨어 가격이래봤자 PC 가격에 케이스나 터치스크린, 출력장치 가격이 더 붙을 뿐이다.
하드웨어 조립이야 누구나 하는 거고 수천만원까지 가격 차이를 불러오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결국 누가 더 편리하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