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경제트랜드] 명분없는 집단소송제 거부 움직임
[경제트랜드] 명분없는 집단소송제 거부 움직임
  • 김상범 기자
  • 승인 2001.10.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4일 논란속에 추진돼온 집단소송제와 관련해 정부가 최종 시안을 마련함으로써,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집단소송제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집단소송제는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분식회계 등 기업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주식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로써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주식투자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거꾸로 기업 입장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는 제도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집단소송제 실시와 관련해 재계와 시민단체가 상반된 주장을 내놓으며 팽팽히 맞서왔고, 이러한 논란 속에 정부는 양쪽의 주장을 조금씩 받아들여 최종 절충안을 내놓았다.
논란의 핵심은 소송대상 기업의 범위와 소송제기 요건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정부의 시안을 보면 허위공시와 분식회계의 경우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만을 소송대상으로 하고, 주가조작의 경우에는 자산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미흡해 보일 수밖에 없는 안이지만, 재계와 야당은 이것에 대해서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기상조론과 규제완화 우선론을 주장하며 강경하게 맞설 태세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 소송남발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오히려 기업규제 완화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도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다.
그러나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다소 아픔이 있더라도 이 참에 투명경영과 소액주주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 건전성과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털어버리는 바람직한 방안이다.
이용호 게이트는 고질적인 우리 기업과 증시의 병폐를 확인시켜준 고질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시안은 오히려 부족한 구석이 더 눈에 띈다.
허위공시나 분식회계의 경우 소송대상을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에만 국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산 2조원 이상이라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84개 기업, 코스닥의 8개 기업만이 대상이 된다.
재벌그룹의 몇몇 계열사 정도가 해당되는 수준이다.
주가조작은 물론 허위공시나 분식회계는 자산규모 2조원 이하의 조그만 기업에서 더 횡행하고 있다.
허위공시에 대한 소송을 기업들의 유가증권 신고서와 사업보고서에만 국한하게 한 것도 지나치게 기업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시공시가 실제 주가를 올리는 작전에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결국 이번 시안은 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소액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이렇듯 미흡한 점들이 지적되는데도, 기업 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재계나 야당, 일부 보수언론의 반발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기업의 활동이 예전에 비해 위축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건전한 형태의 경영활동이라면 위축돼야 마땅하지 않은가? 오래된 관행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겠느냐는 항변도 그렇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아픔을 딛고 고쳐가야 할 것이지, 점진적 시행 운운하며 딴죽을 건다면 문제다.
여하튼 기업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야당은 이 안의 국회 통과를 두고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출자총액 제한제도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등 기업규제 완화를 강력히 고집하면서 기업 개혁의 작은 첫걸음이라 할 집단소송제는 거부하는 것이다.
마치 이들 두 사안을 거래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그다지 명분도 없어 보이는 규제완화 정책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집단소송제마저 재갈을 물리려는 재계나 정치권의 모습에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