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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프로테옴
[테크놀로지] 프로테옴
  • 허원/ 강원대 교수
  • 승인 200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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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치료제 개발 ‘경기장’ 단백질 조합 연구, 질병 원인 밝혀내… 관련 바이오 기업 속속 등장 눈물은 슬플 때만 흘리는 게 아니다.
우리 눈에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양파 껍질을 벗길 때, 하품을 크게 할 때도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온다.
물론 슬픈 장면과 마주치거나 너무 좋은 감정이 복받쳐도 주르륵 눈물이 나온다.
너무 기쁘거나 감동할 때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매우 슬프거나 억울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눈물에는 약간의 염분과 인체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릴 때보다 감정의 변화로 흘리는 눈물에 단백질이 더 많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눈물의 화학적 성분이 눈물을 흘리는 원인에 따라 다르다는 얘기다.
극미량의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토프 질량분석기가 최근에 개발되기 전까지는 눈물이란 과학과는 다소 거리가 먼 소재였다.
그러나 최근 호주의 프로테옴 분석센터는 눈물 속의 단백질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토프 질량분석기를 활용해 여러 종류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눈물을 분석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라크라이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은 정상인에게서는 낮은 비율로만 발견되지만, 반사적으로 흘리는 암 환자의 눈물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로 발견된다.
이처럼 환자와 정상인의 눈물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단백질을 그 특성에 따라 분리해 차이가 나는 단백질을 비교하고, 토프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는 연구분야를 단백질체학 혹은 프로테오믹스라고 부른다.
물론 눈물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간 질환자의 간세포와 정상 간세포의 단백질 분포를 비교해 차이가 나는 단백질을 확인할 수 있다면 질병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제를 발견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게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맛이 있는 연한 쇠고기와 그렇지 못한 질긴 쇠고기의 단백질을 비교해 맛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이 조직이나 세포의 단백질 분포를 비교해 한쪽에는 많이 들어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단백질을 분석하면, 질병의 원인이나 조직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양이나 존재 여부가 차이가 나는 단백질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생물정보학의 도움을 받아 원인 단백질의 후보를 좁혀나가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단백질의 차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질병의 원인이나, 심지어 쇠고기 맛까지 좌우하는 것일까? 생명체의 기본 단위는 세포이고, 세포의 특성은 유전정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세포라도 어떤 세포는 피부가 되고 어떤 세포는 혈액 혹은 뼈가 된다.
식물에서는 잎이 되기도 하고 줄기가 되기도 한다.
유전정보가 해석되어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옷장에 여러 벌의 옷이 있는데, 정장 상·하의와 넥타이를 골라 입거나 혹은 캐주얼한 청바지와 상의를 입으면 같은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백질 분포 세포마다 달라 2000년 초반에 완성된 사람의 유전자 지도에 따르면 3만수천개의 유전자가 유전자 지도상에서 발견되는데, 세포 종류에 따라 어떤 유전자에서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또다른 유전자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아 단백질 분포가 세포마다 달라진다.
이처럼 세포마다 단백질 분포가 각각 다른데, 이같은 서로 다른 단백질 조합을 프로테옴(proteome)이라고 부른다.
프로테옴은 단백질을 의미하는 프로테인(protein)과 유전체를 의미하는 게놈(genome)의 합성어이다.
게놈에 담긴 유전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유전체학(genomics)이라고 하듯, 프로테오믹스(proteomics)는 세포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만들어지는 단백질 조합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에야 프로테옴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극소량의 시료에서 단백질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토프 질량분석기가 개발된 덕분이다.
아울러 단백질의 서열 분석이 가능한 질량분석기도 개발돼 생물정보학과 결합, 과거에는 수개월 이상 걸리던 단백질 분석이 며칠에서 수시간 수준으로 빨라졌다.
현재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항암제, 당뇨병 치료제와 같은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목표를 두고 있다.
과거에 새로운 의약품은 약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화학물질을 합성해 이들의 독성이나 약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개발했다.
이와 같은 전통적 방법은 유기합성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가져왔지만,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1950년대에 설립된 신텍스가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신약 개발을 한 마지막 회사였다.
이후 70년대까지는 기존 의약품을 개선하는 개량신약 개발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던 중 70년 중반에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인터페론이나 인슐린 등 인체 안에서만 만들어지던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됐다.
생물의약품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뒤 20여년 동안 50여종의 단백질 치료제가 개발됐고 그 사이에 암젠, 제넨텍, 바이오젠, 젠자임 같은 미국의 1세대 바이오 기업들이 탄생해 바이오 기술의 잠재력뿐 아니라 상업적 측면에서 투자 가치도 여실히 증명했다.
원하는 유전자를 골라내 마음대로 잘라 붙이고 다른 생명체로 삽입시킬 수 있는 유전공학 기술이야말로 지난 20년 동안 단백질 치료제의 개발을 가능하게 한 ‘돌파 기술’(enabling technology)이었다.
단백질 치료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터페론 같은 세포간 신호전달 담당 단백질은 미국 국립암연구소를 중심으로 암 정복을 위해 투입된 많은 연구 노력의 결과다.
미국 1세대 바이오 기업을 탄생시킨 원천기술은 암 정복을 위한 기초연구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프로테오믹스도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돌파 기술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약은 인체에 투입된 후 부작용이 없이 원하는 목표 단백질에 정확하게 결합해 의도한 생리적 변화나 약리 작용을 수행하고 일정 시간 후에는 완전히 분해돼야 한다.
프로테옴 분석을 통해 과거와 달리 마치 세포 속을 들여다보듯이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단백질 변화를 파악하고 목표 단백질을 찾아내 질병 원인을 단백질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발음이 비슷한 프로테옴은 바로 의약품 개발 경기장이라 할 수 있다.
프로테옴을 전문적으로 분석해주거나 프로테오믹스를 사업 영역으로 새로 출발하는 바이오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벌써 미국의 한 프로테옴 분석회사는 직접 의약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인간 프로테옴 인덱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모델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회사는 사람의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을 찾아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프로테옴 인덱스를 구성해놓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최초로 상업화한 프로테옴 데이터베이스다.
구체적으로는 심장병으로 사망한 한 미국 여성 신체를 구성했던 서로 다른 157개 조직의 프로테옴이다.
여기에는 각 조직의 단백질 분포를 ‘전기영동법’으로 분석한 1만8천개 정도의 유전자와, 11만5천 종류의 단백질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프로테옴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고, 관련 연구실이나 바이오 벤처기업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이미 시작된 프로테옴 경주에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많이 참여해 승부를 겨뤄보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1세대 바이오 기업들이 탄생할 때처럼, 프로테옴 경주를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흘려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용어 설명> 전기영동(電氣泳動:Electrophoresis) : 전기영동은 전기장 안에서 하전된 입자가 양극 또는 음극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이동하는 속도는 입자의 전하량, 크기와 모양, 용액의 pH와 점성도, 용액에 있는 다른 전해질의 농도와 이온의 세기, 지지체의 종류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용액에서 하전된 알맹이의 이동속도는 분자 자체의 성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전기영동법은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 단백질 등 하전된 물질들을 분리하거나 분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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