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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디지털이 만드는 ‘꿈의 궁전’
[특집2] 디지털이 만드는 ‘꿈의 궁전’
  • 임채훈 기자
  • 승인 2001.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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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전기기 통해 생활양식 일대 변화 예상
디지털TV에서 나오는 뉴스가 유상범씨 귓전을 두드린다.
평소 주식에 관심이 많은 유씨는 아침을 나스닥지수와 함께 시작한다.
주식 관련 뉴스는 밤새 저장해두었다가 아침에 한꺼번에 듣는다.
증권 뉴스가 나오는 중간에 중요도가 높은 메일이 도착했다며 ‘딩동’ 소리가 났다.
유씨가 “읽어줘”라고 말하자 뉴스가 잠시 끊긴다.
디지털TV는 또박또박 메일을 읽어준다.
12시까지 맡은 일을 처리하라는 메시지로 직장상사가 보낸 것이다.
갑자기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회사일 힘든 것이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은 영 몸이 좋지 않다.


.①[거실]유씨는 침대 오른쪽에 붙은 원격 생체신호 측정기에 팔을 들이밀었다.
인터넷으로 의료정보 포털에 연결해 실시간으로 건강 이상을 측정해주는 장치다.
“심전도, 심박수, 혈압이 모두 평상시보다 높습니다.
오늘만큼은 술을 먹지 말고 일찍 잠자리에 드십시오. 그리고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게 좋습니다.
필요하시면 주치의에게 진료 예약을 해놓….” 유씨는 신경질적으로 진료기와 인터넷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마누라가 따로 없군.” 마흔 가까운 나이가 되자 몸 생각을 할 겸해서 원격진료기를 비싼 돈 주고 설치했지만 천성이 게으른 유씨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자동으로 주문하는 인터넷 냉장고 “오늘은 또 뭘로 때우나?” 유씨는 냉장고 문부터 열어본다.
텅빈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유씨 얼굴에서 당황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유씨는 냉장고 문에 달린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누르다 유씨는 ‘기본주문’을 선택한다.
버튼 하나만 달랑 누르자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린다.
모니터로 화면을 보니 식료품가게 배달원이다.
냉장고에 없는 음식만 알아서 가져왔다.
유씨는 새삼 생활의 편리함에 감탄한다.
예전에는 사야 할 품목을 하나하나 챙겨서 슈퍼를 찾아야 했다.
때로는 세수하는 것조차 귀찮아 집에서 굶은 적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접은 지 오래다.
냉장고가 바코드를 인식해 없는 물건만 알아서 주문한다.
비용은 온라인계좌를 통해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인터넷에 연결된 냉장고를 통해 다른 품목을 주문할 수도 있다.
배달원은 계산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음식을 문앞에 두고 그냥 가버렸다.
유씨 역시 부스스한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아 배달원이 자리를 뜬 것을 확인한 뒤에 문을 열고 음식을 갖고 들어왔다.
유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껍질이 얇은 햄이며, 돼지고기, 탄산음료 등이 가득하다.
“어라? 우유는 아직 좀 남아 있던데.” 유씨는 생각하지 못했던 우유를 보고 냉장고의 바코드 인식시스템이 버그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
10년 전인 2001년에 산 냉장고라 그런지 바코드를 잘못 읽어 엉뚱한 것을 주문하는 일이 가끔 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유가 있다.
그것도 절반이나! 유씨는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취소 버튼을 눌렀다.
“주문한 것 중 어느 것을 취소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에 유씨는 우유를 눌렀다.
순간 가벼운 분노가 솟는다.
“이런 걸 1천만원이나 주고 샀으니….” 유씨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니터는 “유효기간을 확인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어라” 순간 유씨는 당황했다.
며칠 전에 우유를 사두고 그냥 놔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을 안 냉장고가 우유를 주문했다는 걸 깨달은 유씨는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보다 못한 꼴이라니….” 최신 요리법을 다운받는 전자레인지 유씨는 냉장고가 주문한 음식으로 부대찌개를 해먹을 예정이다.
①[부엌] 터치스크린을 통해 부대찌개를 입력하자 전자레인지는 인터넷 요리 사이트에서 최신 요리법을 다운받았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행하는 부대찌개 요리법은 어떤 것인지, 고추장을 얼마나 넣어야 감칠맛이 나는지 다 설명이 돼 있다.
하지만 막상 요리를 하려 하자 전자레인지가 갑자기 멈췄다.
건강 포털 사이트와 연결해놓은 게 잘못이었다.
“이대로 요리하면 지방을 과다 섭취하게 됩니다.
햄과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간….” 음성합성 기능이 있는 전자레인지에서 그의 건강을 염려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유씨는 바로 스피커를 꺼버린다.
사이트에서 허락하지 않는 한 부대찌개를 먹는 건 불가능하다.
의료 사이트에 가입한 건 애초 그의 생각이 아니었다.
두 아들과 함께 중국에 1년간 출장간 아내 생각이었다.
아내는 유씨가 혼자 지내는 동안 생활이 엉망이 될 것을 염려해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던 것이다.
“기술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군.” 유씨는 매콤한 부대찌개 대신 의료 포털에서 추천한 간단한 풀잎 몇가지로 아침을 때웠다.
유씨는 식기세척기에 아무렇게나 그릇을 넣어둔 뒤 소파에 누워 ②[거실] PDA(휴대용개인단말기)를 꺼냈다.
PDA 화면에서 식기세척기를 선택한 뒤 작동을 누르자 세척기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유씨는 어릴 적 설거지를 하다 밥그릇에 눌러붙은 밥풀을 떼내느라 고생하던 생각이 났다.
식기세척기는 유씨가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꺼낸 시간과 식기세척기를 작동한 시간을 계산해 설거지를 한다.
음식물의 건조 정도에 따라 설거지를 알아서 척척 하는 모습을 보니 꽤 신기하다.
유씨는 이번에는 PDA 화면에서 세탁기를 선택했다.
작동을 누르자 세탁기에서 삐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PDA에서 최신 세탁방법이 나왔다며 다운받을 것을 권한다.
프로그램 용량은 10MB. 이 정도면 2초도 안 걸린다.
유씨는 최신 세탁법을 다운받아 세탁기를 가동시킨다.
유씨는 이번에는 PDA에서 새로 나온 영화와 음악 정보를 검색했다.
조성모 히트곡 모음이 나왔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다.
유씨는 디지털 오디오로 노래를 다운로드받으면서 재생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영화를 내놓은 강제규 감독의 영화를 디지털TV로 내려받았다.
10년 전만 해도 60인치 디지털 벽걸이 TV는 3천만원을 호가해 꿈도 못 꾸었지만 지금은 유씨가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많이 내렸다.
②[거실]PDA로 가전기기를 조절하며 리모컨처럼 갖고 놀다 보니 리모컨 기능이 없던 TV를 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누워서 발가락으로 TV채널을 돌리다 어머니에게 혼나곤 했다.
혼나면서 지금의 PDA와 같은 ‘무선조절기가 빨리 나왔으면’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리모컨이 나왔을 때만 해도 편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모든 가전기기를 무선으로 조절한다.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유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 TV모니터가 밝아졌다.
어머니의 주름살이 도드라져 보인다.
“어디 편찮은 데는 없으세요?” 어머니는 건강이 어떠시냐고 묻는 아들에게 대뜸 “이놈아 눈꼽이라도 떼고 전화해라”며 호통이다.
눈꼽이 보였나 보다.
‘나도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유씨는 어머니의 호통이 정겹기만 하다.
“다음주가 설인데 이번에는 내려오냐?” 아차! 유씨는 바쁘다는 핑계로 설인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화나 자주 해라. 세상이 좋아져 이렇게 얼굴에 묻은 때까지 볼 수 있는데 힘들게 내려올 건 뭐 있누.” 유씨가 망설이는 사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유씨는 어머니가 사라진 모니터를 잠시 멍하니 쳐다본다.
홈오피스로 시간 단축 유씨는 아침에 TV를 통해 들었던 이메일을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12시까지 처리해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 것 같다.
바로바로 이메일을 보내던 도중 유씨는 화장실이 급해졌다.
②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운 듯 그는 키보드를 화장실로 들고가 모니터를 보지 않고 서류를 정리했다.
③[서재] 어떤 이들은 디지털TV가 PC 기능을 다 갖고 있어서 PC 없이 지내기도 하지만 유씨는 PC를 고집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써와서 그런지 PC를 통해 집안 기기를 연결하는 것이 더 편하다.
다른 집에서는 디지털TV를 통해 모든 가전기기를 연결하는 곳도 있다.
아직 표준이 통일되지 않아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유씨는 잘 모르겠다.
게으르기로 소문난 유씨는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한 뒤 ④[서재] 게임기를 집어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같은 게임기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최첨단이었지만 지금 게임기 성능에 비하면 애들 장난감 수준이다.
유씨는 게임기에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갖다댔다.
게임기가 유씨 지문을 인식하자 성인모드로 들어갔다.
유씨는 평소에 좋아하는 여인과 가상 데이트를 즐기는 게임을 선택했다.
순간 어릴 때 형과 함께 음란 비디오를 몰래 보던 생각이 났다.
부모님도 그걸 아셨는지 집을 비울 때면 비디오를 보지 말라고 각별히 당부하시곤 했다.
아내와 아들들이 중국에 가기 전 유씨도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게임기에 지문인식 기능이 추가된 뒤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게임기는 사용자 지문에 따라 실현되는 게임 내용이 다르다.
아이들이 아빠 손으로 게임기를 작동하지 않는 한 음란물에 빠지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귀가할 시간이다.
유씨는 디지털TV를 켠다.
곧바로 아이들이 있는 집안의 디지털 웹카메라와 연결됐다.
아이들을 몰래 감시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부모 마음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유씨는 아내에게 부탁해 아이들 방에 몰래 웹카메라를 설치했다.
10년 전만 해도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를 집에 놔두고 일하다 아이들이 다치는 일이 왕왕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을 찾아보기 힘들다.
재택근무자가 많아진데다 PDA와 웹카메라를 연결해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나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육원에 자녀를 맡긴 부모들이 지켜보기도 한다.
한때 감시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웹카메라 파괴 운동을 벌여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유씨는 하루 중 아이들의 생활을 볼 때가 제일 좋다.
아이들이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유씨는 잠시 차를 몰고 드라이브나 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차에 탄 뒤 혹시라도 현관문과 가스밸브를 안 잠그고 나왔는지 PDA로 확인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내부 가전기기를 망칠지 모르는 크래커를 막기 위해 인터넷 보안회사에 집을 비운다는 연락도 남겨뒀다.
나들이 준비는 다 끝났다.
차를 몰고 나가던 유씨는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쿵하며 앞을 들이받았다.
유씨는 정신을 잃었다.
유씨가 정신을 차려 보니 집이었다.
하지만 최첨단 시설은 다 사라지고 없다.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TV만이 유씨 앞에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꿈이었나?’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상한 우유만 냄새를 풍기며 남아 있다.
먹을 거라곤 라면뿐이다.
다른 걸 사러 나가기도 귀찮아 그걸로 아침을 때웠다.
문을 여니 조간신문이 놓여 있다.
1면 머릿기사 제목이 눈길을 잡아끈다.
“10년 후 꿈의 홈네트워킹이 실현된다.
①유선표준: 유선으로 홈네트워킹을 구현하는 대표적 기술로는 기존 전화선을 이용한 전화선모뎀 기술(HomePNA·Home Phoneline Networking Alliance), PC와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인 IEEE1394, 전력선을 이용한 전력선통신 기술 등이 있다.
HomePNA는 기존 구리전화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이 편리하다.
하지만 아직은 전송속도가 1Mbps 수준이다.
미국의 애플이 처음 제안한 IEEE1394는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100Mbps~1Gbps의 빠른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다.
전력선통신 기술은 모든 가전기기에 연결돼 있는 전력선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산업자원부는 2004년까지 200억원을 투입해 10Mbps 이상의 전력선통신 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②무선표준: 무선으로 여러 가전기기를 연결하는 기술로는 HomeRF(Home Radio Frequency)와 블루투스(Bluetooth)가 있다.
HomeRF는 2.4GHz 대역폭을 기반으로 다양한 가전제품을 무선으로 연결한다.
블루투스는 10m 이내 거리에서 다양한 장비를 선 없이 연결하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 블루투스칩 가격이 5달러까지 떨어지면 이 기술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③미들웨어: 크게 IEEE1394를 기본으로 하는 HAVi(Home Audio Video Interoperability)와 MS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UPnP(Universial Plug and Play)로 나뉜다.
일본의 소니가 강력히 지원하는 HAVi는 IEEE1394에서 가전기기를 제어하기 위한 표준이다.
윈도우2000 PC를 이용해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표준인 UPnP는 인텔, 컴팩 등이 지지한다.
④인터넷 게임기: 소니는 게임기 시장에서 고전적 수익모델인 ‘면도날 전략’(Razor&Blade;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의 판매전략으로 내구재인 면도기보다 소모품인 면도날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남기는 전략)에서 벗어나 디지털 가전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지형도를 구축하려고 한다.
특히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2 기술을 디지털 가전시장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해 ‘플레이스테이션 산업’을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MS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2001)에 인텔 733MHz 프로세서, 8GB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이 장착된 엑스박스(X-box)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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