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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전기자극 / 난치병 ‘뚝딱’, 고통은 ‘뚝’
[테크놀로지] 전기자극 / 난치병 ‘뚝딱’, 고통은 ‘뚝’
  •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 승인 2001.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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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청각장애 치료 등에 효과… 시한부 환자에 마약 대신 사용도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라는 공상과학 소설에는 미래 사람들이 ‘소마’라는 마약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마다 이 마약을 먹고 슬픔과 외로움을 잊는다.
인간은 그렇게 감정을 털어내고 살아간다.
50년 뒤 <쥬라기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은 <터널맨>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을 내놓는다.
이 책에는 간질 환자의 뇌에 전기자극 장치를 달아 치료하는 장면이 있다.
간질이 일어날 때마다 뇌에 전기자극을 줘 간질을 치료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작 간질은 치료했는데 환자가 전기자극에 흥분을 느껴 일부러 간질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환자가 전기자극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소설이라고 웃고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마약이 ‘약물’에 한정됐지만 미래에는 ‘전기’가 새로운 마약으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소설가가 때로는 과학자보다 미래를 더 잘 꿰뚫어볼 수 있다.
이미 전기자극은 치료용으로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정형외과다.
근육이 지나치게 뭉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전기자극을 줘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근육 세포나 신경을 조절하는 것은 이온인데, 전기자극은 이온을 활성화시켜 근육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페이스 메이커’로 불리는 인공심장 박동기도 전기자극을 이용해 죽은 심장을 살린다.
심장에서는 아주 약한 초기 전류가 만들어진다.
이 전류가 심장 세포를 자극하고, 심장이 뛰게 된다.
심장 박동기는 심장병 환자의 몸 속에서 심장 대신 초기 전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 난치병 중 하나인 파킨슨병을 전기자극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돼,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앓고 있다는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뇌질환 중 하나로, 이 병에 걸리면 손발을 떨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 병은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다.
전기자극을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법은 1999년 미국 식품의약안전청(FDA)의 승인까지 얻었으며,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브란스병원 등 몇몇 대학병원에서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 방법은 뇌의 깊은 부분에 전기자극을 주는 것이다.
세포가 고장나면 엉뚱한 짓을 저질러 병이 나게 하는데, 전기자극으로 파킨슨병과 관련된 세포를 기절시켜 파킨슨병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을 다시 듣게 하는 데도 전기자극이 사용된다.
귀 안에 있는 청각 세포가 죽으면 귀가 멀게 된다.
그러나 전기자극으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일부 청각 세포를 자극하면, 세포의 기능이 강화돼 죽은 청각 세포 대신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치료법은 아니지만 과거 볼타라는 과학자는 자신의 귀에 전극을 꽂고 전기를 흘려보낸 적이 있다.
전기자극을 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볼타는 실험 뒤에 ‘물 끓는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전압의 단위인 ‘볼트’는 바로 이 ‘엽기 과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전기자극은 아직까지 치료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전기자극을 마치 마약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쥐의 뇌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을 주면 쥐가 흥분한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는 호스피스에서는 환자의 고통이 너무 심해지면 마약의 일종인 모르핀을 주사해 고통을 덜어준다.
과학자들은 부작용이 있는 마약 대신 뇌에 전기자극을 주는 방법으로도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우 환자들은 전기자극이 주는 흥분에 취해 일부러 더 아파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반 사람들도 ‘전기 마약’을 남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약단속 경찰이 용의자의 팔목에서 주사 자국을 검사하는 대신 머리에서 전기자극 바늘 자국을 찾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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