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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자동차 부품시장, 시한부 호황?
[비즈니스] 자동차 부품시장, 시한부 호황?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1.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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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수출 증가로 즐거운 비명… 기술경쟁력 없는 업체, 구조조정 한파 닥칠 듯 자동차가 반도체를 제치고 9월부터 대미국 수출 1위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이젠 구문이다.
반도체라는 첨단 이미지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자동차가 다시 옛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수출 호조로 가장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은 당연히 완성차 회사들이다.
이 가운데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대우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영광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9월까지 현대자동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북미 시장 판매량인 24만5천여대를 웃도는 26만1천여대를 기록했다.
형제지간인 기아차도 이미 16만5천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한해 판매실적인 11만9800대보다 더 많은 수치다.
게다가 미국 테러사태 여파에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판매량은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두 회사의 9월 미국 판매량은 각각 44%와 25%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내로라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죽을 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내수시장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자동차 9월 내수판매는 지난해에 비해 2% 늘었다.
10월 내수판매 실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미국 테러사건과 경기침체에도 고가 제품인 자동차 판매가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1997~98년에 묵혔던 대체수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지만, 어찌됐든 자동차 회사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앞에 나서서 이런 성장세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뒤에서 은근히 표정관리를 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
바로 자동차 부품업체들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출과 내수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회사들의 성적이 거울처럼 반영되므로 매출이 덩달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덕을 보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가 수출되면 애프터서비스용 부품도 따라나간다.
따라서 현대모비스는 자동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73%에 이른다.
두 회사의 애프터서비스용 부품만 대줘도 끄떡없는 셈이다.
현대모비스의 3분기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반기 실적만 봐도 눈부신 성장을 알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상반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9.6%나 늘어난 1조4074억원에 이른다.
영업이익도 104.3% 증가한 1743억원이었다.
현대모비스의 한 관계자는 '3분기 성장세도 상반기보다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현대모비스, 현대차 있음에 ‘든든’ 물론 현대모비스의 이같은 성장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가 지나치게 밀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해외 현지화를 할 때는 금융과 애프터서비스가 함께 나간다.
그런데 실제로 애프터서비스 부품은 2년 정도 지난 뒤에나 사용하게 된다.
필요한 부품의 양보다 너무 많이 나가고 있으며, 그게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형이 잘나가면서 아우가 덕을 보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동반 호황을 누리는 부품업체들은 당연히 현대차와 기아차에 납품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다.
한라공조, 한국프랜지, 세종공업 등이 그런 회사들이다.
이들 회사들은 대개는 예전부터 현대자동차와 친인척 관계로 ‘동맹’을 맺었거나, 현재 맺고 있다.
이밖에 SJM이나 삼립산업 등 기술력 있고, 직수출 비중이 높은 회사들도 현대자동차의 수출 호조가 즐겁기만 하다.
실제 소음과 진동을 감소시켜주는 벨로우즈를 생산하는 SJM의 영업팀 이기창 차장은 '현대차의 수출용 부품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20~30% 정도 늘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품업체들이 정확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밝히기를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다.
부품업체들은 현대차에 젖줄을 대고 있다.
만약에 이익이 너무 많이 남는다면 현대차에서 단가를 인하하라는 압력이 들어올 게 뻔하다.
실제로 완성차업체들과 부품업체들은 매년초 단가조정을 하기 때문에 이제 몸을 사릴 때가 된 것이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완성차업체들이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올초부터 원가절감 압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이 때문에 대부분의 반기보고서나 분기보고서도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업종들이 경기침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부품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단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부품업체에 구조조정 회오리가 불어닥칠 것이고 예언한다.
기술경쟁력은 없으면서도 인맥으로 완성차업체에만 매달려온 부품업체들은 된서리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현대차와 기아차가 본격적으로 생산과정 통합이나 차종재편 작업을 하면 부품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예컨대 두 회사가 부품공유를 하게 되면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회사와 기아차에 납품하는 부품회사가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종연구원 이동원 연구원은 '현대기아차가 본격적으로 부품 통합을 하면 몇몇 부품 회사들에게 품질과 가격 경쟁을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더이상 완성차업체들이 설계도까지 ‘던져주면서’ 가르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외국 대형 부품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빨라지고 있는 점도 변수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부품업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외국자본이 인수했거나 합작사로 전환됐다.
포드와 비스티온은 한라공조와 덕양산업의 지분을 각각 70%, 51% 인수했으며, GM의 델파이도 대우기전을 인수해 한국델파이를 출범시켰다.
일본의 덴소는 풍성전기의 지분 40%를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했다.
메이저 부품업체들이 들어오면서 국내 부품업체들은 생존지형을 다시 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GM 대우차 인수, 큰 변수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GM이 대우차를 인수한 것이다.
대우차가 내년 상반기쯤 군산공장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하면 우선 대우차 납품 비중이 큰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우차 납품업체들 가운데 기술경쟁력은 없이 전속 납품관계를 유지해온 몇몇 회사들은 문을 닫을 것이란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신영증권 조용준 팀장은 '전반적으로 부품업계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400~500개에 이르는 1차 벤더들이 200개 안팎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물론 기술력이 있고 시장지배적인 부품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다.
한라공조, SJM, 삼립산업처럼 기술력을 바탕으로 직수출을 많이 하는 회사들은 부품업계 재편이 되레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장충린 부장은 '당장의 단꿈에 젖기보다는 기술력 향상을 통해 세계 메이저 완성차 회사에 직수출하는 것만이 국내 부품업체들의 살길'이라고 잘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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