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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온 몸으로 ‘나’를 증명하기
[특집] 온 몸으로 ‘나’를 증명하기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1.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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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홍채, 얼굴, 음성 등 다양한 분야 발달… 테러사태 이후 수요 크게 늘어

샌드라 불럭이 주연한 <네트>는 정보화가 고도로 진전된 사회에서 일어날 상황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에서 샌드라 불럭은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국가기밀 정보를 접한 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정보가 다른 사람과 뒤바뀌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는 내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샌드라 불럭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트>와 같은 극단적 상황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우가 벌써 일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암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금융거래를 거절당하는 경우는 이제 흔한 일이다.
하나의 카드에 모든 정보를 담아 사용자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스마트카드의 움직임도 그리 미덥지 못하다.
그 카드를 잃어버려 누군가 사용할 수 있다고 상상하면 더 아찔하기 때문이다.


만일 샌드라 불럭이 자신의 지문을 담은 아이디 카드를 하나쯤 가지고 있고 엄지손가락을 살짝 눌러 자신이 아이디 카드에 있는 사람과 같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면, 영화 속의 암담한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생체인식기술(biometrics)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의 생리학적 특성이나 행동의 특징을 기반으로 신원을 인식하는 것이라 암호를 기억해야 하는 불편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문, 홍채, 얼굴 모양, 손 모양, 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생체인식 방법이 출입통제 시스템, 도어록과 같은 물리적 보안에서부터 온라인 인증, 근태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특히 금융, 전자상거래 등이 급성장함에 따라 보안·인증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생체인식 보안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로 주목받게 되었다.
요즘은 미국 테러사태의 영향으로 공항 등 많은 곳에서 도입을 검토하는 등 수요가 크게 늘었다.



기본은 ‘패턴인식’에서 출발
생체인식은 모두 ‘패턴인식’에 의한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각 신체부위의 특징을 잡은 뒤 그 점의 위치와 속성을 추출해 비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체인식 기술의 핵심은 세가지로 나뉜다.
생체의 특징점을 받아들이는 센서 기술, 이 특징점을 인식하고 비교하는 일을 담당하는 알고리즘, 그리고 이것을 솔루션이나 서비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기술이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알고리즘이다.


'우리나라 알고리즘 경쟁력은 세계 최고와 동등한 수준은 된다.
90% 가까이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센서 기술은 지문에서는 중요하지만 얼굴인식이나 음성인식에서는 필요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앞선 부분은 응용 애플리케이션 기술인데, 실제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기술이다.
'

지문인식 전문업체인 시큐아이티 기술개발연구소장인 인하대 김학일 교수는 우리나라의 현재 기술수준은 외국과 견줄 때 거의 격차가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생체인식 방법 가운데 가장 많이 상품화되고 시장규모도 큰 것은 지문인식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범죄수사에 이용돼온 지문인식은 전체 생체인식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간편하면서도 비용이 저렴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상품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일단 오차율이 낮아 신뢰도가 높아야 하고 사용자의 거부감도 적어야 하고 가격경쟁력도 있어야 하는 등 여러가지 요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할 때 아직까지는 지문이 가장 상품화하기 쉬운 분야라는 평이다.


영화에 많이 등장하곤 하는 홍채인식은 정확성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60~70여가지의 인자를 가지고 비교를 하는 지문에 비해 266가지 인자를 가지고 있어 비교할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채인식 전문업체인 세넥스테크놀로지 한동호 주임연구원의 설명이다.


다른 생체인식 시스템에 비해 오인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어 고도의 보안을 요구하는 곳에서 주로 쓰인다.
그러나 조명과 같은 주위 환경이나 초점을 맞추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쉽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기기 안에 눈을 판별해 줌을 하는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크기가 크고, 10만원대로 자리잡은 지문인식 입력기에 비해 300만원 이상의 고가품이라는 점은 아직 걸림돌이다.


음성인식은 전화를 이용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 실용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자주 변할 수 있어 에러율이 높다.
아직 녹음된 소리와 실제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얼굴인식은 사용자 편의성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인정받는다.
데이터도 지문 등에 비해 적어 인식속도도 빠르다.
인식률이 80~90%밖에 되지 않지만 수사시 범인 색출이나 영상 모니터링 분야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카지노 같은 곳에서 사기도박사를 잡아내는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손바닥 크기, 손가락 모양 등으로 개인을 판별하는 장문인식은 지문을 쓸 수 없을 때 쓰이는 대체 수단이다.
수술실이나 공사장 같은 산업현장, 또는 전쟁 상황에서처럼 피치못할 사정으로 정교한 지문 채취가 쉽지 않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이밖에 키보드를 치는 습관, 정맥, 서명, 체취, DNA 등 여러가지 생체인식 기법이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지만 지문인식에도 단점은 있다.
생체인식의 오차율은 다른 사람을 나로 잘못 인식하는 타인인식률과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본인거부율 두가지로 나눈다.
이 두 오차율은 반비례 관계에 가깝다.
타인인식률을 낮추면 본인거부율이 높아지고, 본인거부율을 낮추다 보면 타인인식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거부율보다는 타인인식률이 더 위험하기 때문에 이 오차를 줄이는 기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지문인식의 타인인식률은 0.001~0.0001%, 본인거부율은 0.1~0.01% 정도다.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인식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론적인 수치가 항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무리 인식률이 높은 기기라도 꼭 잘 안 돼는 사람이 있다.
사용자의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사용자들이 불편을 느끼곤 한다.
” 김학일 교수는 아직도 30명 가운데 한두명 정도는 지문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지문을 누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거부감을 줄이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
범죄 수사에 이용돼온 전력 때문에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오해를 종종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시장과 다르지 않게 우리나라에서도 지문인식 분야가 가장 많이 발달돼 있지만,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전부터 연구소, 대학 등에서 연구해오다 본격적으로 제품이 소개되기 시작한 게 98년,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60여개가 넘는 업체들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존 모듈을 가져다 응용 기기를 만드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문인식 기술의 핵심인 알고리즘을 자체 기술로 가지고 있는 곳은 니트젠 www.nitgen.com, 휴노테크놀로지 www.hunno.com, 시큐아이티 www.secuit.com, 시크롭 www.cecrop.com, 패스21 www.pass21c.co.kr 등 대여섯 곳밖에 없다.
홍채쪽도 사정은 비슷해, 알고리즘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곳은 세넥스테크놀로지 www.senextech.com, 아이리텍 www.iritech.com, 알파엔지니어링
www.assco.co.kr 등 몇곳 되지 않는다.
홍채인식은 특히 미국 이리디안사가 원천기술 특허를 대부분 가지고 있어 이 특허를 피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LG전자에서 내놓은 홍채인식 시스템도 이리디안의 특허기술을 라이선스해 개발한 제품이다.



멀티 생체인식 연구 활발
지문인식 시스템은 크게 광학식 방식과 반도체식 방식이 있다.
카메라와 유사하게 프리즘, 렌즈센서, 보드로 구성된 광학식은 해상도가 높지만 크기를 소형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반도체식은 반도체에서 직접 지문을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라 크기를 칩 정도까지 줄일 수 있다.
반면 실리콘 보호막으로 노출돼 있어 내구성이 약한 게 단점이다.
각기 장단점에 따라 응용분야도 조금 다르다.
조금 크지만 튼튼한 광학식은 출입통제 시스템이나 도어록 같은 외부 노출이 큰 물리적 보안 분야에 쓰인다.
반도체식은 소형이기 때문에 PDA, 휴대전화 등 모바일 기기에 많이 쓰인다.
반도체식은 양산을 하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앞으로 시장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현재 광학식 센서로 받아들인 지문데이터와 반도체 센서가 받아들인 지문데이터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은행에서 광학식을 통해 지문인증을 하고, B은행에서 반도체식을 통해 지문인증을 한다면 한 사용자가 두 은행과 모두 거래를 하기 위해선 각각의 센서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광학식 센서를 통해 받아들인 지문데이터를 반도체식 알고리즘으로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표준화 문제가 떠오른다.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업체에서도 현재는 어느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가에 따라 각 방식의 알고리즘을 가진 업체와 함께 작업을 해야 하지만, 표준이 정착되면 표준대로 제품을 만들면 되기 때문에 응용 분야도 넓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물리적 보안 분야가 시장이 컸지만 앞으로 점점 온라인 인증 등 정보기술(IT) 관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는 면에서도 표준은 중요하다.
'현재 선진국 시장은 IT 접목 기술에 의한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고, 그 외에선 물리적 보안시장이 크다.
하지만 대박은 PKI 기술과의 접목 등 IT 분야에서 터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표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휴노테크놀로지 전략기획팀 오의섭 과장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시큐아이티에선 조금 다른 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예 모든 센서에서 받아들인 데이터를 해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쯤엔 성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생체인식 시장을 크게 확대하기 위해선 스마트카드나 운전면허증에 지문인식을 삽입하는 등의 국가 주도 대규모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본적으로 인프라 확보가 필수적인 사업이라 사용자와 일대일로 승부해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방대한 지문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기술이 발달할 수 있는 기본 토양도 마련돼 있어 유리하다.


한가지 생체인식 방법으로 인증을 할 때 생기는 불편함과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멀티 생체 인식에 의한 방법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지문과 얼굴인식, 얼굴인식과 홍채인식 등 한가지 방법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 다른 방법을 대체할 수 있게 해 편의성을 높이거나, 두가지 방식을 한꺼번에 쓰도록 해 보안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간단한 사실에서 출발한 생체인식 기술의 발전은 온 몸으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성큼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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