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문화] 남대문시장 닮은 경매사이트
[문화] 남대문시장 닮은 경매사이트
  • 이경숙
  • 승인 2001.04.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휴일 자정,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임경진(29·가명)씨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경매사이트의 공동구매 상품으로 ‘간척지 무농약 그린 음악쌀’이 올라온 것이다.
‘전남 강진군 간척지에서 풍물놀이 음악을 들려주면서 농약 없이 키운 쌀이라고? 음, 전통 재래식 된장 1kg도 주니까 총 4만7천원어치를 2만9900원에 사는 거네. 오케이!’ 매일 야근을 하느라 쌀을 살 시간이 없었던 독신자 임씨는 바닥이 드러난 쌀통을 채울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해진다.
음악쌀 옆을 보니 700원짜리 파래김이 올라와 있다.
윤기가 자르르한 게 흰 쌀밥에 얹어먹으면 그만일 것 같다.
임씨의 입안에 침이 고인다.
클릭! 화장품에서 쥐포까지, 상품 다양 알뜰살림꾼들이 경매사이트로 모여들고 있다.
경매사이트들은 지난해 말부터 회원증가율이 부쩍 늘었다면서 신바람을 내고 있다.
옥션 www.auction.co.kr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원 수가 131만명에서 278만명으로 부쩍 많아지더니 현재엔 325만명까지 늘었단다.
12월 회원 수가 80만명이던 와와 www.waawaa.com 역시 지난해 말부터 월 가입자가 8만, 9만명씩 늘더니 이젠 100만명 고지가 눈앞에 있단다.
셀피아 www.sellpia.com도 지난해 6월엔 50만명, 올해 3월엔 80만명으로 늘었다가 이쎄일 www.sellpia.com과 이셀피아로 합병한 후 130만명으로 성장했다.
특히 여성회원 증가가 도드라진다.
옥션의 여성회원 비율은 99년 4분기 19%에서 일년 후 37%로 18%포인트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 이용자 중 여성비율은 33%에서 43%로 10%포인트가 늘어났다.
경매사이트의 여성 증가세가 더 거세다.
다른 경매사이트들의 추세도 비슷하다.
와와의 여성회원 비율은 지난해 6월 30%에서 올해 3월엔 45%로 늘어났다.
쇼핑몰보다 구매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워 접근을 꺼리던 여성이용자들이 경매사이트에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
거래품목도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엔 패션의류는 물론 우표, 녹차김치, 쥐포까지 오간다.
경매사이트 초창기인 99년 옥션의 인기품목을 보면 소프트웨어(1만5천건), 영상물(1만1900건) 컴퓨터 부품과 카드(1만1700건), 차량관리용품(6천건)으로 주로 컴퓨터 관련 제품들이었다.
최근 들어선 생활용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화장품이 5만5800여건으로 2위, 통신기기가 2만7700여건으로 4위, 액세서리가 2만6천여건으로 5위, 생활가전과 여성의류가 가각 2만5천여건으로 6, 7위를 차지한다.
우표·인지나 생활가구, 음반도 1만6천~2만여건이 거래되고 있다.
여전히 컴퓨터 관련 제품(6만2500건)과 소트프웨어(3만6800건)의 아성은 깨지지 않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게시판에는 생활 속의 아기자기한 사연들이 올라온다.
몬토커(montoker)라는 이용자는 지금 막 경매의 재미를 깨달았단다.
“만화책과 두어벌의 옷을 내다판 것만으로 40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난 양의 만화책을 팔았다.
와! 정말 놀랐다.
지금은 안 입는 옷들과 신발들을 무더기로 내놓았다.
다음에는 엄마와 이모의 옷가지들을 팔 생각이다.
아~ 재벌이 될 것 같다.
” 공구(공동구매)로 쥐포를 샀다는 투시스터즈(2sisters)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만족해한다.
“두근두근. 솔직히 2만7천원이면 쥐포치고는 비싸기에 걱정을 좀 했다.
그리고 배달이 되었다.
서류봉투에 찍찍 글씨를 갈겨쓴 포장이었지만 맛은 대만족! 배달된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3개밖에 안 남았다.
개인냉장고가 없으니 동생들을 못 먹게 할 수도 없고….또 쥐포 공구 내주세요.” 경매사이트를 찾는 이들의 욕구는 점점더 실생활과 밀접한 것으로 옮겨간다.
경매사이트들의 컨셉은 자연스럽게 ‘생활경매’로 잡혀간다.
옥션은 ‘옥션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는 모토를 내걸고 생활용품 공동구매부터 부동산·자동차 경매까지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있다.
이셀피아는 다음, 라이코스 등 18개 포털업체와 동양매직 등 11개 제조업체와 네트워크 경매를 진행하면서 공동구매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와와도 5월부터 공동구매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C2C, B2C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경매사이트와 기존 쇼핑몰, 공동구매 사이트의 경쟁은 더 숨가빠졌다.
와와 최성진 기획주임은 C2C 중심의 경매사이트가 B2C까지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C2C는 어차피 회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거래이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한테서 추가 매출을 일으키려면 B2C나 B2B를 해야죠.” 와와는 올 하반기에 기업소모성자재(MRO) B2B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무법자들을 경계하라 소비자들은 경매사이트, 인터넷 쇼핑몰, 공동구매 사이트를 가리지 않고 오가면서 가격과 품질을 비교한다.
경매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온다.
“지금 이 사이트에서 공구하고 있는 텐티오 칫솔살균기는 1만98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가격검색을 해보니 인터파크에서 1만9천원에 판매하고 있더군요. 공구니까 당연히 싸겠거니 하지 마시고 꼭 가격을 비교해보세요.”(yunghkim) 오프라인에서는 800원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도 온라인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챙긴다.
가격 비교가 쉽기 때문이다.
100원, 200원의 차이로 성패가 갈라지는 경매사이트에선 이용자들이 가격차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매사이트 운영자들을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건 무법자들의 등장이다.
매일 서너개씩 경매물품을 구입한다는 휴이104(hui104)는 얼마 전 가격조작자로 보이는 일당에게 바가지 요금을 썼다.
‘시중가 8만6천원’이라는 란제리를 5만원에 낙찰받고 즐거워했는데 다른 포털사이트에선 3만원선에서 낙찰가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건을 받아보니 도저히 고가의 란제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럽고 질이 낮았다.
“시중에서 2만원이면 살 물건이에요. 여러분도 경매가격 올리기에 절대 속지 마세요.” 휴이104는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운영자들은 나날이 교묘해지는 무법자들의 수법에 혀를 내두른다.
가장 적나라한 불법음란물은 엉뚱하게 컴퓨터 판매 코너에서 나오고, 비아그라는 생활용품 코너에서 적발된다.
자기가 내논 물품을 자기가 사서 카드대금을 현금으로 받는 소위 ‘카드깡’은 더욱 찾아내기가 힘들다.
까드깡에 시달리던 옥션 마케팅실 최상기 과장은 나름대로 비법을 터득했다.
우선 카드깡 사기는 경매진행 기간이 짧다.
보통 5~7일 걸리는 과정을 3일 만에 끝낸다.
또 컴퓨터 등 규모가 큰 거래에서 많이 발생한다.
한번에 끝난 입찰도 의심해볼 만하다.
카드깡 혐의가 있는 거래는 바로 조사한다.
판매-구매내역을 점검하고 택배회사가 배송했는지 확인한다.
까드깡으로 판명되면 ID를 삭제하거나 경찰에 넘긴다.
“그래도 까드깡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발생 거래만도 수만건인데요.” 옥션은 ‘무법자’ 단속을 위해 10여명의 외부직원을 채용했다.
‘무법자’들에 시달리다 지친 운영자들한테는 언론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불법 거래를 지적하는 언론보도가 오히려 불법 거래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까드깡 사기꾼이 구속되었을 때 부산지역의 한 일간지가 그의 수법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날 경매사이트들에는 부산, 경남 지역에서 올린 거래 건수가 폭증했다.
신문기사를 읽고 모방범죄를 계획한 것이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까드깡 혐의자를 골라내느라 또 한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시장점유율이 수익 결정 경매사이트들의 이런 불평이 다른 닷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많이 모아놓은 포털사이트들은 이들의 지갑을 열지 못해 고민하고, 과도한 가격경쟁중인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은 팔아도 이득이 남지 않아 고민한다.
반면 경매사이트의 수익모델은 꽤 탄탄한 편이다.
미국의 대표적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은 아직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경매사이트 이베이는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신영증권 남옥진 연구원은 분석보고서에서 “경매사이트는 쇼핑몰과는 달리 재고나 배송 부담이 거의 없고 전산 인프라 투자 비용이 적게 든다”고 설명한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의 수익을 보면 상품원가가 90%, 물류비용이 3~15%,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와 리스크 비용이 2~6%를 차지한다.
잘 하면 5%, 잘 못하면 -11%의 영업이익률이 나온다.
인터넷 경매에선 이 모든 비용을 판매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운영자는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
옥션은 판매자가 물품을 등록할 때 100원, 200원의 수수료를 받고 낙찰에 성공하면 또다시 200원 내지 낙찰가의 3.5%의 수수료를 받는다.
셀피아는 1.5~2.5%, 이쎄일과 와와는 2~2.5%의 낙찰수수료를 걷는다.
그렇지만 모든 경매사이트들이 다 행복한 조건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경매는 시장집중 효과가 다른 인터넷 비즈니스에 비해 크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이트에 등록되는 경매상품이 늘어나고 낙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 덕에 미국의 이베이나 한국의 옥션은 70%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사이트는 유지가 어렵다.
4월 초엔 유력한 주자였던 삼성옥션이 문을 닫았다.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제 시장은 우월한 강자인 옥션, 막상막하의 2위 세력인 이셀피아와 와와 3자 구도로 재편됐다.
이합집산이 활발한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구도가 내일 아침에 어떻게 다시 재편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경매사이트 운영자들은 발 뻗고 잔다.
내일의 전망을 꿈꿀 수 있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