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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원에 부는 '차세대 이동통신' 바람
[중국] 중원에 부는 '차세대 이동통신' 바람
  • 이문기
  • 승인 2000.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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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 표준 놓고 치열한 삼파전…복수 표준으로 공존의 길 모색중 피비린내가 중원을 진동하고 있다.
거대한 중원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세계 무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중원의 지배자였던 유럽 무사, 최고수 자리를 내주고 호시탐탐 역전의 기회를 엿보던 미국 무사, 그리고 소림사를 수성하기 위한 중국 무사까지각오가 매섭다.
무사들이 손에 들고 있는 비장의 무기는 그동안 공들여갈고 닦은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표준 방식이다.
12억이라는 거대한 인구, 1천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 때문에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은 ‘차세대 금광’으로 통한다.
중국 시장에서 표준을 차지하기 위해 세계 통신업계들은 출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재 중원에선 비동기방식인 유럽의 광역코드분할다중방식(W-CDMA), 동기방식인 미국식의 CDMA2000, 그리고 뒤늦게 중국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시분할코드분할동시다중접속(TD-SCDMA) 등 세가지 방식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을 잡으면 세계를 지배한다 중국이 어떤 표준을 선택하느냐는 곧바로 세계 통신시장의 판세를 좌지우지할 만큼 파괴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우전부(정보통신부)는 94년 제2세대 이동통신시장의 국제 표준을 유럽식인 범유럽표준방식(GSM)으로 채택했다.
최대 통신회사인 중국전신이 범유럽표준방식을 채택,중국 단말기 시장은 에릭슨, 노키아, 지멘스 등 유럽쪽이 거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 단말기 시장 역시 여기에 힘입어 유럽쪽으로 전세가 기울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시스템이라고 평가받던 일본의 독자적인 디지털이동전화(PDC) 방식은 국제적인 표준경쟁에서 실패했다.
일본은 단말기 시장에서도 몰락의 쓴맛을 맛보아야 했다.
도시바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겨우 3.3%에 불과하다.
중국 시장을 놓친 미국 퀄컴 역시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밀릴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의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5500만명이며 앞으로 매년 1500만명 이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가입자수가 내년이면 일본을 추월하고 2004년이면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패배자는 또다시 새로운 표준이 등장해 자리잡을 때까지 몇년을 와신상담하며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삼파전의 한 축인 중국이 ‘토종’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95년부터 거액을 쏟아부으며 표준 개발에 몰두해왔다.
당시 신식산업부 전신과학기술연구원 조우환 원장은 미국과 유럽의 통신시장을 돌아보고 온 다음 중국식 표준 개발을 선언했다.
중국 시장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자체 개발한 표준도 어느 정도 먹혀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독자적 표준방식 TD-SCDMA는 암중모색 중 독일 지멘스 중국 지사 리완린 사장이 97년 중국식 국제표준 개발에 적극적인 지원자로 나서면서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멘스는 열세에 놓여 있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04년까지 15억달러 이상의 투자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가운데 10억달러가 중국 투자에 할당돼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의 중국판 표준인 TD-SCDMA은 중국 신식산업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의 다탕전신(사장 조우환)과 중국 시장에서의 열세를 역전시키려는 독일 지멘스의 합작품인 셈이다.
중국의 TD-SCDMA 방식은 지난해 11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로부터 국제표준 자격을 획득했다.
삼파전 가운데 가장 대군을 형성하고 있는 W-CDMA 방식은 현재 유럽과 중국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범유럽표준방식을 발전시킨 것이다.
세계 최대의 기술력과 설비를 갖추고 있는 스웨덴의 에릭슨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일본의 NTT도코모도 비동기방식인 W-CDMA 방식 편을 들고 있어 무적을 자랑한다.
세번째 축인 미국의 퀄컴은 한국을 압박하는 한편, 자신들이 개발한 동기방식(CDMA) 방식을 중국쪽에 밀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후발주자인 중국판 TD-SCDMA 방식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두말할나위 없이 중국정부다.
하지만 중국 통신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간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정부의 지원만으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W-CDMA나 CDMA 방식에 비해 기술과 설비 그리고 실용화 수준이 너무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회사들도 중국판 표준 방식의 이런 ‘아픈’ 부분을 건드리며 공세를 강화한다.
게다가 중국 통신시장은 이미 독점체제가 아니다.
중국전신, 중국이동, 그리고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연통이 치열한 시장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TD-SCDMA 표준만을 지지할 수 없는 형국이다.
책임부서인 중국 신식산업부는 표준 채택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신식산업부 우지촨 부장은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은 국제적인 표준 채택이 진행된 다음에 발표한다”는 기본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미리 발표해 봤자 이득이 없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3월 이후에야 정부의 공식입장이 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중국표준과 유럽표준, 공존의 길을 찾자” 현재로선 중국 정부가 중국판 표준을 단일표준으로 채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시장경쟁의 한복판에서 결전을 벌이고 있는 국내외 통신회사나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이 약한 TD-SCDMA를 지지해 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년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중국판 표준을 개발했던 것은 무모한 도박이었던 것일까. 단일표준이 아닌 복수표준 채택에 그 해답이 있다.
중국이동 기술부문 책임자인 리무어팡과 에릭슨 중국지사 장시셩 부사장은 “최종적으로 중국판 표준과 유럽식 표준은 충분히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TD-SCDMA를 ‘적군’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TD-SCDMA 개발을 주도한 중국 전신과학원의 리스허 박사도 “우리들의 목표는 중국 무선통신 시장의 60~80%를 차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위험부담이 큰 단일표준보다는 복수표준을 선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칼자루를 쥔 중국 정부는 어떤 ‘초식’을 펼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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