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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수 CEO들의 생존비법
2. 장수 CEO들의 생존비법
  • 이원재
  • 승인 2001.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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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고비, 철저한 직업정신·전문성·친화력·합리성 등으로 견뎌내 전세계에 경기악화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자금시장 경색을 우려하고 있다.
당연히 실적악화 기업이 속출한다.
주가도 바닥을 긴다.
여기다 주주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실적악화 경영자는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도 생긴다.
불황기에 기업소유주가 아닌 전문경영인 CEO들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월별 결산을 마칠 때마다 지금까지 경영인으로서 쌓아온 위치가 ‘바람 앞의 등불’ 처지라고 느끼 며 섬뜩해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경기악화는 한번 오고는 다시 오지 않는 게 아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숙명이다.
그런데도 몇번의 불황기를 거칠 만큼 오랫동안 CEO 자리에서 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CEO 시장의 승리자’들이 있다.
오너 중심 기업지배 체제에서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준 이들은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관련 업계나 대중들에게 자신의 철학과 강점을 널리 알리는 홍보맨이기도 하다.
허태학 사장, 서비스 전도사로 자리매김 햇수로 9년째 삼성에버랜드 CEO를 맡고 있는 허태학 사장은 스스로를 ‘서비스 전도사’라고 부른다.
그는 서비스 산업에서 국내 최고 경력을 자랑한다.
지난 69년에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해 31년간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에서 서비스 외길을 걷고 있다.
물론 ‘서비스 기업 경영에서는 허 사장이 국내 최고’라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된 것은 이런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허 사장의 직업인생은 새로운 서비스 사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채워져 있다.
중앙개발 기획실에 입사해 바로 호텔신라 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됐던 허 사장은 82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배우고 돌아온 뒤 호텔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맡았다.
면세점 개장,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급식사업권 수주, 외식사업 개시 등 새로운 사업에는 모두 손을 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3년 에버랜드 대표이사가 된 뒤에도 여러번 ‘사고’를 쳤다.
97년 고 이병철 회장이 직접 지었다는 ‘용인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꾸고 세계적 테마파크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여름철 비수기를 메우려고 만든 캐리비언 베이는 개장 2년 만에 입장객 200만명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제 에버랜드를 ‘사이버 테마파크’로 만드는 야심찬 일까지 꾸미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확신을 가지면 강하게 밀어붙였다.
허 사장은 다른 많은 재벌기업 경영자들과 달리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직원들에게는 끊임없이 ‘서비스 정신’을 주입했다.
중앙서비스아카데미를 세워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바꾸는 교육도 꾸준히 이어갔다.
외부강연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찾아가 자신의 서비스 철학을 전파했다.
인터넷에 꾸민 개인 홈페이지는 한국 경영자 가운데 최상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자신의 프로필에서 인생관, 취미, 성장과정, 발언록까지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성재갑 부회장, 전문성·친화력 돋보여 89년 럭키석유화학에서 시작해 햇수로 13년째 CEO 생활을 해오고 있는 LGCI(Chem Investment) 성재갑 부회장은 화학공학과를 나와 화학회사에서만 평생을 보낸 화학전문가다.
공학전공이면서도 나이나 경륜에서 LG그룹에서는 가장 원로급에 속하는 경영인이다.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러운 경영스타일이 전형적인 LG형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받는다.
화학 분야의 전문성과 LG그룹 문화와의 친화력이 성 부회장을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고 CEO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한 뒷심이 됐다.
철저한 자기관리 습관과 컴퓨터 같은 기억력이 성 부회장의 전문성을 경영자적 자질로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지금까지 아침 8시 이후에 출근한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한다.
여기에다 직원들의 생일에서부터 한번 만난 현장 인부의 말까지 모두 기억해낸다.
“이름을 불러줘야만 아랫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낀다”는 철학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성실함도 특성이다.
성 부회장은 이제 전문 분야인 화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LG화학에서 화학과 생활건강 부문을 분사시키고 남은 화학 분야 지주회사 LGCI의 대표이사로서 생명과학 등 전략 신산업과 유망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의 전공을 끝까지 지키면서 첨단경영에까지 도전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김승정 부회장, 합리적 분석력이 강점 9년째 SK글로벌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승정 부회장은 기획 분야를 오래 맡으면서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사례다.
그래서인지 경영스타일도 항상 합리적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참모형이라는 평가가 많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지시나 명령을 하기보다는 격의없는 토론을 통한 설득과 합의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기획통답게 조정하고 융화시키는 데 큰 강점을 갖는다.
그런 꼼꼼함 덕인지 SK글로벌은 IMF 직후에도 다른 재벌그룹과는 달리 자금문제에 따른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잔재주의 화려함’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튼튼함’을 기업경영의 모토로 삼고 있다.
여기에다 업계에서 마당발로 통할 정도로 사회 각 분야에 지인들을 두고 있어 외부에서 문제해결 실마리를 얻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벤처기업은 오너 직접경영 체제인 경우가 많지만, 기술자가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일도 적지 않게 생기고 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다른 기업에서 최고경영자 경험을 해본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
큰사람컴퓨터 김지문 대표가 이런 경우다.
김 대표는 한국IBM에서 기획관리부장, 영업본부이사 등의 요직을 거친 뒤, 97년 한국사이베이스 대표이사, 2000년 초 코스모브리지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지난해 10월 큰사람컴퓨터로 영입됐다.
연달아 3군데 기업에서 대표이사만 역임하고 있는 셈이니, 가히 ‘직업적 CEO’라고 할 만하다.
정보통신과 외국계 기업의 생리를 함께 알고 있으면서 조직관리 경험이 있다는 점이 해외사업을 노리고 있는 큰사람컴퓨터의 요구와 맞아떨어졌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이나 옥션 이금룡 사장도 기업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경영하는 전문경영인 CEO축에 들 만하다.
인터넷·벤처 업계에서는 상당한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도 벤처도 역사가 짧아서인지, 전문경영인 수요에 견줘 공급 풀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의 부가가치를 키워가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 CEO 보수, 미국의 7분의 1 지난해 한국 최고경영자들의 연간보수는 2억1500여만원이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다국적 인사조직 컨설팅 업체 타워스페린은 최근 세계 26개 국가들의 CEO 연간보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19만4421달러(2억152만원, 지난해 4월 환율 1107원 기준)로 중국, 태국, 대만에 이어 네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CEO가 140만3899달러로 가장 높았고, 아르헨티나가 86만704달러, 캐나다가 75만2228달러, 영국이 71만9665달러로 그뒤를 이었다. 일본은 54만5233달러로 14위 수준이었다. 생산직 노동자와의 임금비교에서도 역시 한국이 11배로 가장 낮았고, 미국이 32배로 가장 높았다. 타워스페린 한국법인 박광서 사장은 “한국 CEO들의 몸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CEO들의 몸값을 정하는 평가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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